1983년 레빈과 레바인은 이타카 시 지역 신문에 작은 광고를 내고 자신들의 꿈에 대해 함께 논의해 줄 사람들을 모았다. 50명이 모였다. ‘사이언센터’의 첫 운영 위원회가 여기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해가 지나기 전 빈 건물 1층에 전시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금방 건물주는 임대료를 낼 임대인을 찾았고 사이언센터는 쫒겨나야 했다. 올챙이와 리트머스 종이를 다시 포장하고 짐수레는 빈 가게를 찾을 때까지 다시 거리를 떠돌았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지만 사이언센터도 결국 자신의 안식처를 찾는 데 성공했다. 이타카 시민이자 혁신적인 공원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건축 디자이너 밥 레더스가 사이언센터를 위한 건물을 설계해 주었고, 지역 기업의 기부금으로 폐쇄된 시립 주차장 부지를 매입할 자금도 마련했다. (중략)
건물을 짓기 전 그 부지에 남아 있던 오래된 양수 시설들을 철거해야 했다. 이 일은 코넬 대학교의 동아리 하나가 맡아 주었다. 그들은 안전모와 큰 쇠망치를 들고 와 아주 즐겁게 그 시설을 부쉈다. 그들은 “보통 이런 짓 하면 혼나거든요.” 라고 말했다. 이틀 만에 그들은 200톤 넘는 폐자재를 짐수레로 치웠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우려하던 바는 모두 사라졌고 미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진솔한 모습만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을 만든 이들의 전통은 원래 협력이었다. 벽돌공, 의사, 목수, 대학 교수, 배관공, 농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팔을 걷어 붙이고 과학관을 짓는 데 동참했다.
“공사가 쉬는 날 없이 1주일 내내 진행되도록 공사 일정을 잡았다.” 라고 트라우트먼은 말한다. “그래서 누구든 언제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할 일이 부여되었다. 경험 많은 자원자들은 계단을 만들었고 바닥과 타일을 깔았다. 그리고 창문을 끼웠다. 다른 이들은 페인트 칠을 하고 못질을 하고 자재를 날랐다.”
약 2,200명의 마을 사람들이 4만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꺼이 헌납했다. 전체 공사의 약 10퍼센트는 경범죄를 저지르고 투옥된 사람들이 맡았다. 그들도 감옥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지역을 위해 무언가 하는것을 더 좋아했다.
10개월 후 이타카 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민이 직접 만든 과학관’을 보유하게 되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p.51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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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선생님 이런부분 읽다보면 느끼는게, 진짜 사람 감성 자극 하는 법을 통달하신분이 아닌가 싶네요. 개인적으로 이런거 보면, 속된말로 뽕차서 감탄하게됩니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표현은 아직도 들을때마다 마음이 울림
그 표현도 정말 좋죠. 그 이후로 나오는 말들도 정말 인상깊구요.
이걸 과학자가 썼다고...? 농담 아니라 세문단 읽을때까진 러시아 은기 소설인줄 알았음
이과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