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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1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2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3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4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5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6 (1부 完)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7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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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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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발의 정석

(2016)


골 때리는 표지와 골 때리는 소재, 골 때리는 내용과 골 때리는 결말... 정말 이렇게까지 골 때리는 책은 처음임. 감탄과 탄식이 절로 나옴.


줄거리... 보통 단편집은 주된 감성을, 장편은 줄거리 요약을 쓰며 평의 운을 떼는데 이건... 줄거리 소개를 안 하고 싶은데... 안 하면 진행이 안 될 것 같음... 하... 꽉 잡으셈. 갑니다.


전립선염 진단을 받은 마흔여섯의 기러기 아빠 ‘이 부장’은 기구를 통한 마사지가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의사의 말에 집에서 스스로 전립선 마사지를 하기 시작한다. 짙은 자괴감과 불쾌한 통증도 잠시, 난생처음 엄청난 전율과 쾌감을 경험하게 된 이 부장. 그러나 쾌감으로 인해 개운해진 일상도 잠시, 이번엔 혼란스러움을 겪는 이 부장. 공부는 수학의 정석을 따랐으면 됐는데, 이러한 생경한 감각에는 대체 어떠한 정석을 따라야 하는 걸까?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반추하며 그렇게 중년 남성의 자기 개발의 정석이 시작된다.


내가 살다 살다 중년 아재가 느끼는 드라이 오르가슴에 대한 책을 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처음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음.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왜 도서관에서 이 책과 눈이 마주쳤을까... 왜 하필 그때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이 책의 소개 글이 떠올랐을까...


책 전반적으로 뭐라고 해야 하지... 숭함. 책 자체가 아주 숭하기 짝이 없음. 역하거나 추잡스러운 것과는 조금 다름. 굳이 비교하자면 천명관의 ‘고래’가 ‘우웩’이었다면 이건 ‘우욱’이라고 해야 하나... 읽는 내내 이 부장 못지않게 나도 혼란스러웠음.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그 안에 가득 담긴 위트와 삶에 대한 은은한 통찰이 한층 더 열 받게 함. 웃고 있는 내가 싫어짐.


일단 문장이 굉장히 유쾌하고 매끄러움. 좋은 의미로 가벼워서 마치 시트콤을 줄글로 읽고 있는 것 같음. 단문과 장문을 넘나드는 힘도 좋고 이야기 구성이나 흐름도 좋음. (왠지 계속 타 작가들과 비교하게 되는데) 장강명에서 르포성 작법을 빼고 대신 위트를 있는 대로 잔뜩 집어넣은 느낌임. 뇌에 힘 살짝 풀고 읽어나가면 본인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올 거임. 그리고... 그... 특정 기분에 대한... 묘사를 잘함. 필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음... 후...


다만 아저씨가 쓴 아저씨가 주인공이어서 그런가, 당연히 여기는 2차 접대나 여성들의 몸을 훑는 시선 등 곳곳에 ‘불편한’ 요소가 많음. 문제는 백번 이해해서 넣을 수 있다 쳐도 그게 과연 극 자체를 위한 장치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임.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없어야 극의 분위기가 더 살아나고 주인공의 심정이 카타르시스적으로 더 돋보였을 것 같은데 굉장히 아쉬움. 삶의 공허함이나 남성성에 대한 고뇌 등 주인공의 내면 묘사를 너무 낡은 방법으로만 하니 이입에 강한 장벽이 생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많음.


내용을 보면 주인공은 (작은 성기와 소원한 부부 관계로 인한) 자신감 결핍, (과연 자신이, 가족이 ‘잘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이렇듯 텅 빈 듯한 삶에 대한) 공허함이 큰 인물임. 그걸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주인공에게 두 가지 방안을 주는데, 하나는 아네로스(전립선 마시지기, 평자 주)와 오르가슴, 다른 하나는 아내의 진심 어린 걱정임.


물론 좀 더 근본에 가까운 해결책은 가족인 것으로 표현되지만 혼자 느끼는 격렬한 쾌감 역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나타남. 이는 여기서 오르가슴이 단순한 감정이 아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함으로써 발현되는 정신적 충만감’을 뜻하기 때문임. 혼자서 무얼 하며 보내야 할지 모르던 이가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몰입하여 공과 무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는 순간이, 인생의 공허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임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음.


너무나 고전적이지만 너무나 정답인 ‘가족’에 대한 요소도 빠지지 않음. 이 부장은 거듭되는 아내의 안부 전화로 자신이 명확히 기댈 곳이 있다는 것,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가슴 뭉클함을 느낌. 완벽한 타인이자 완벽한 가족인 배우자의 사랑 역시 인생을 버틸 수 있는 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줌. 결국 자기 개발의 길라잡이는 긍정을 향한 명상과 행복을 향한 사랑이었음.


꿈보다 해몽 아니냐고?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해... 이 책에서 가장 큰 단점을 하나 꼽으라면 다름 아닌 결말인데, 이렇게 해몽으로라도 좋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 만들어 놓고 단 두 줄로 모든 걸 와장창 깨버림. 충분히 예상가는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끔찍한 결말이라고 생각함. 책을 덮자마자 모든 내용을 잊고 싶어짐. 다시 한번 드는 의문. 나는 이걸... 대체 왜 읽기 시작한 걸까. 이 부장이 아네로스를 쓰는 대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괜한 생각인 것 같다...


정리하자... 아무튼 매력과 재미의 한계가 명확하지만 실소가 터져 나오는 유쾌함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가 인상적이었음. 마지막으로 단점 하나 더. 이 부장이 방 안에서 몰래 그 짓(?)을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은 대중교통이나 도서관이 아닌 방구석에서 몰래 읽을 수밖에 없었다.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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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3)


사랑과 애정, 원망과 증오에 대한 경험을 차분하고도 격렬하게 노래하는 이야기들이 담긴 단편집.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최은영만의 솔직하고 유약한 감성은 여전함.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내게 무해한 사람’, ‘애쓰지 않아도’를 읽을 때만큼 피곤하지는 않았음. 가슴 답답한 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덜 지침.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의 주제나 집필 ‘목적’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도 그러함. 최은영의 책을 이렇게 쉽고 빠르게 읽은 적은 처음임.


우선, 친구(학생) 서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음. ‘쇼코의 미소’ - ‘그 여름’ - ‘모래로 지은 집’ - ‘애쓰지 않아도’의 계보를 이을 만한 작품이 없음. 동료나 지인 사이는 있지만 중고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 이야기는 없음. 이게 이렇게 몇 줄에나 걸쳐 할 말인가 싶다만... 하나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놀라서 그럼. 벗어난 건지 빠져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쓸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로 보이긴 함. 없으니 괜히 서운하다고 하면... 한 대 맞으려나.


또한 이별에서도 드디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췄다고 생각함. 그토록 ‘설득력 부족’이라고 말했던 이유는, 인물들이 치열하게 대화하고 다투는 장면이 드물었기 때문임. 그래서 정말, 정말 솔직히 격하게 말해서 그동안의 이별엔딩은 ‘지 혼자 삔또 상해서 손절 치는’ 것으로까지 보였음. 그 안에 담긴 감성은 차치하고 인물의 생각과 행동이 가슴 저릴 만큼 너무나 유약해서 분명히 보이는 강단을 섬세함과 예민함이라는 이름의 감성이 다 가려버렸다고 생각함. 그도 그럴 것이, 책을 덮고 곰곰이 복기해 보면 최은영의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인물의 독백이지 누군가와의 대화는 아니었음. 그 대화도 항상 주인공은 이미 마음 정리를 다 끝내놓고 시작하기에 독자는 흐름을 예측할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서는 계획된 허무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음. 하지만 이번에는 (플롯이 회상 형식인 것은 소름 돋을 정도로 그대로고 치열한 대립까지도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상대와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넘어 자신과 상대의 눈에 비친 각기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써서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는 데 성공함. 그렇기에 구조나 흐름이 한층 부드러워져 피곤함은 덜하고 감정 몰입에도 쉬워짐. 물론 이 피곤함은 당위성에 대한 언급이지 내용 자체만 보면 힘들긴 함.


집필 ‘목적’에 굳이 따옴표 표시를 계속 하는 이유는 소재나 주제와 연관 지을 수 있음. 이 책뿐 아니라 최은영의 소설은 모두 애증, 상처, 차별에 대한 내용이 주였음. 솔직함과 유약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상처와 회복의 정서는 그 안에 고요히 스며들어 있기도 했고 갑작스레 튀어나오기도 했음. 주목할 점은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경우인데, 그럴 때는 꼭 인물에 맞췄던 초점을 사회를 향해 (힘을 주어) 바꿔왔음. 그리고 그 조준의 정도와 빈도가 점점 짙어져 왔고. 결국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했던) 것은, 인물 간의 관계와 더불어 성차별이나 가부장제 등 현실의 병폐에 맞서고 의식적이면서 무의식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이해와 존중’의 가치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됨. 쉽게 말하면, 최은영이라는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페미니즘에 대한 자신만의 논조를 강화해 가고 있다, 임. 초장부터 쉽게 말하지 않고 빙 돌려 말한 이유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쉽고 간편한 단어여서 단순하게 쓸 수 있는 만큼 그 안에 담긴 다양성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임. 아무튼 나는 그러한 점을 글의 ‘목적’이 점점 뚜렷하고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표현한 것.


실제로 단편집 구성을 보면 전작들에서는 친구 서사, 즉 우정과 사랑을 매개로 한 내면의 파동을 다룬 작품을 첫 번째에 배치하고 표제작으로 선정한 것에 반해, 이번에는 ‘거시적’ 사회 문제가 주 소재인 작품들을 선두에 올려 두었음. 정치, 사회의 일면을 글에 담는 건 ‘쇼미’ 때부터 해온 일이지만 요인으로서의 비중을 더욱 높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몫’은 참여 문학으로까지 보이기도 함. 특히나 몫에서 ‘이것은 일개 여성의 문제가 아닌 더 큰 억압의 문제다’라고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가 선언하듯 외치는데, 주류 세력이 ‘시류에 맞지 않다’며 무시하려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다루어야만 한다고 포효하는 것 같았음. 이는 모든 소재를 통칭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과도 대칭이 됨. 즉,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미시적인 사연으로 나동그라질 수 있을 사안들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이게끔 부단히 노력했다고 할 수 있음. 가히 이번 단편집이 최은영 문학의 제2 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따라서 최은영의 글을 두고 ‘남자만을 가해자로 그린다’는 불평은 사실... 해봤자 큰 의미가 없음(정세랑, 장류진 등도 그러한데 ‘밝은 밤’ 때부터 유독 최은영한테만 이러는 것도 조금 웃기지만). 아마 최은영은 계속 이런 글을 써나갈 것임. 다만 오히려 갈수록 남성보다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 더 상투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게 단점이 아닐까 싶음. 극 속 인물들의 관계에서 벗어나 현실의 보편적 실태로 확대 해석이 가능한 점을 세밀하게 노려서, 그것만을 너무 노려서 여성 인물들의 모습이 너무 뻔하고 중복적으로 보임. 모든 단편이 한 사람의 다중 우주처럼 보일 정도. 거기다 주요 시대 배경이 반 세대 정도 이전이고 주된 인물들의 연령대가 중장년이라는 점에서 여타 작가들보다 동시대성이 약함. 그것까지 문제란 건 아니지만 친구 서사에서는 학창 시절을 놓지 않으면서(그때도 배경은 8090이긴 하지만) ‘목적’성의 글에서는 작가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의 인물만을 그리는 건 어느 정도 한계라고 생각함.


또한 아쉬운 점은 내가 이 작가를 좋아했던 이유가 약해졌다는 점임. 인물의 내밀한 밑바닥 자의식을 보여주는, 공감성 수치에 가까운 그 울렁이는 감성이 많이 줄어듦을 느꼈음. ‘넓고 깊어진 시선’과 ‘축축한 울림’이 다른 속도로 달려 나가서 그런 것 같음. 그렇게 생긴 공백을 황급히 고발의 감성으로만 메우니 기대와는 다른 문장을 많이 만남. 가슴 아픈 상황을 촘촘히 보여주는 것은 점점 능해지나 어째선지 마음을 울리는 예민함은 줄어들어 읽을수록 과연 이 모든 이야기가 정말 ‘회복하는 이야기’가 맞나 싶어짐. 자극 나열을 즐기는 것으로까지 보이는데 이는 나의 오독이길 바람.


해설에 대해서도 짚고 싶은데, 최은영의 문학을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위태롭고도 안전하고도 편협한 세계로 만드는 것 같아 별로였음. 이런 내용일수록 모두를 향해 독해되도록 설명하는 것이 해설의 존재 의의가 아닐까. 굳이 그렇게까지 단단한 울타리를 쳐줄 필요가 있나 싶음. 개인 평론이면 몰라도 책 뒤에 해설로 붙일 만한 글은 아니었다고 봄.


정리하자면 여러모로 노련함이 돋보이지만 그에 비례해 아쉬운 점도 따라온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음.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면 당연히 읽어보겠지만 궁금증 우선순위에서는 밀릴 것 같다는 말을 끝으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평 마침.


추천작: 몫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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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 파쇄

(2013) / (2023)


40여 년간 살인 청부업에 종사해 온 65세 여성 ‘조각’의 이야기임. 굳이 나이와 성별을 밝힌 이유는, 그것이 이 책의 정체성이기 때문.


생소한 단어를 활용한 특유의 만연체는 호불호 갈릴 수 있으나 명확한 매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함. 여러모로 젊은 작가 중에서 읽는 맛 하나만큼은 제일임. 다만 문장 내 연결에 조금 이질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만연체와 매끄러움이 동시에 일어나기가 어렵긴 하지만 유난히 곳곳에 덜컹거림이 있음. 세련됨과 투박함이 공존함. 추가로 ‘아가미’에서 인물들 말투가 두어 가지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6화 참조), 여기서는 말투보다도 화법이 다들 엇비슷해 보임.


갖가지 비유로 점철된 엄숙함과 달리 결과만 놓고 보면 중심이 약해 보이는 것도 눈에 띄는 지점임. 의미보다 구성을 먼저 신경 써서 문장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이 약함. 겨우 이거 말하려고 이렇게 표현했나 싶은 곳이 많음. 전반적으로 치명적인 척이 과함. 집중을 유도하는 기법이라고 하면 할 말 없긴 하지만. 대신에 그만큼 상상력을 많이 자극함. 스쳐 지나갈 작은 문장 하나도 허투루 표현하지 않아 분량에 비해 독해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됨. 그러한 장단점이 결합하여 내용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생생하게 출력되는 것이 강력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음. 힘들여 쓴 문장이 책으로서의 문장 자체가 아닌 영상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이 작가에게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러함.


너무 자잘하긴 한데, 챕터를 끊는 지점이 애매한 것도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음. 이야기를 토막 내고 재배치하는 솜씨가 떨어진다고 느껴짐. ‘위저드 베이커리’나 아가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점인데... 덜컹거리는 만연체와 더불어서 책 전체가 동그란 바퀴가 아닌 네모난 바퀴로 덜그럭거리며 나아가는 느낌임. 바퀴가 네모면 앞으로 못 가는 거 아님? 주 동력원인, 주인공이 초로의 여성 킬러라는 특이한 설정과 스산한 분위기가 어찌 됐든 이야기를 멱살 잡고 끌어 나가긴 함. 계속 읽어 나가게 하는 묘한 힘이 있음.


‘새로운 여성 서사’라는 소개 문구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잘 가지 않음. 얼핏 보면 그냥 아저씨 킬러의 성별 변환 버전임. 하지만 그 간단한 시도를 그동안 누구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획득함. 단순히 죽고 죽이는 이야기에서 사랑과 관심과 노쇠와 체념과 복수가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새로이 돌아감. 하지만 그만큼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점이 많아 마냥 새롭진 않음. 인물, 특히 주인공의 행동 계기가 약한 것도 단점인데, 전체적인 서사보다 개개인의 사연에 더 집중했음에도 그 사연조차 결정적인 순간은 암시와 비유로만 때우니 얘기를 하다 마는 느낌이 강함. 그렇기에 더욱 문장에 공을 들인 것이 아닐까... 싶음. 순간적인 덜컹거림이 빈약한 서사를 가리기 위한 의도로 보일 정도임. 정말 딱 60대, 여성, 킬러라는 세 가지 키워드만이 책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음.


속편인 ‘파쇄’는... 은둔 고수가 제자 키우는 소년만화 보는 것 같았음. 단편도 아닌 그야말로 한 에피소드에 불과해서 굉장히 얇고 별거 없음(근데 이걸 양장이랍시고 만원 넘게 받아먹는 출판사는 과연 양심이 있는가? 물론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봤지만). 그래도 소녀 시절의 주인공이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인물에게 느끼는 애증을 굉장히 감각적이고 농밀하게 잘 표현함.


근데 그러니 어째선지 영화 ‘신세계’가 생각났음. 재미도 있고 감정선도 좋은데 그래봤자 너네는 조폭이잖아... 하는 감성임. 마땅한 이유 없이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사람 기르는 합숙 훈련에서 대체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음. ‘파과’에 퍼져있는 기묘한 아이러니가 여기서 극대화됨. 차라리 은인이긴 하나 그러한 이를 따라 살인을 해나가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나 고뇌를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음. 유료로 업로드된 완결 웹툰 외전 보는 느낌임. 봤던 작품이라 궁금해서 결제했지만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인 내용이라 김빠지는. 파과가 인생 작품이 아닌 이상 크게 추천할 이유가 없음.


내용보다는 작가의 말이 더 인상 깊었는데, 첫 번째는 ‘여성은 노년에 접어들면 이중고의 약자가 된다’는 표현임.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하나... 이게 이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음. 여성 노인으로서 겪는 이중고의 설움을 나는 파과에서 찾지 못했음. 그래서 어쩌라고... 는 너무 심한 말일까. 두 번째는 ‘파과는 진정한 여성 서사가 아니’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는 점임. 주인공이 마지막에 네일아트를 받는다는 것, 아이를 구하는 행위가 모성애를 표한다는 것, 주인공의 마음이 이성을 향해 움직인다는 것 등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이러한 점들은 오히려 주인공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일에 마음이 동한다는 뜻으로,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함. 지나치게 고전적 여성성 하나로만 확대 해석하여 본질을 흐리는 지적으로 보임. 이런 게 표면적인 페미니즘 하나에만 집착하는 검열이라고 생각함. 새삼 여작가들도 고생 많다 싶다. 파쇄의 내용과는 별개로 수록된 작가의 말까지가 이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같음.


아무튼, 설정에 비해 서사가 아쉽지만 독특함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음. 이미상이 ‘여성 서사’에서 한 발짝 나아간 ‘대안’이라면(8화, 이미상 – ‘이중 작가 초롱’ 참조), 구병모는 색다른 ‘대체재’라고 할 수 있음. 장르계가 아닌 정말 리얼리즘을 다룰 때 어떨지 궁금해짐.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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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담

(2023)


하드 SF를 지향하지만 마냥 어렵지 않은 개념과 설명, 놀랍도록 뛰어난 가독성,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적 고찰까지. 공상 과학이란 과학을 토대로 철학의 이야기를 설득해 나가는 것이라는 (나만의) 기준에 부합하는 책을 국문학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존재론적 사유로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사랑과 화합이라는 결론에서는 웰스의 ‘타임머신’과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음. 그렇다고 있는 주접 없는 주접 다 끌어다 쓸 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젊은 국문학 중에선 단연 최고였음.


전체를 먼저 보면, 이 책은 작가가 2005년에 완성한 1, 2부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23년에 쓴 3부를 엮어 낸 책임. 작가는 ‘이 세 편은 각기 다른 이야기이고 세 편을 쓴 사람 각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 점이 잘 보임. 이유는 굉장히 간단함. 세 이야기 중 유독 1부만이 독자적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임. 그와 달리 2부는 1부의 마무리를 단순한 마무리라고 매듭지을 수 없다고 보는 욕심에 쓴 글로, 3부는 2부로 인해 흐트러진 구조의 완결성을 위해 덧붙인 글로 보임. 재미있는 건 그렇게 1부의 ‘확장 팩’으로 느껴지는 2, 3부가 결코 날림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급발진으로 보일 수 있는 2부도, 황급한 마무리로 보일 수 있는 3부도 인물의 내면을 통해 질문과 주제를 잘 따라가 보면 전체적인 서사가 충분히 납득이 됨. 필력 자체가 좋음. 더 재미있는 건, 이러한 점을 작가가 부제와 더불어 후기에서 직접 실토한다는 점임. 이렇게 집필 이유를 솔직하게 밝히는 작가는 처음 봄. 책을 읽으며 느낀, 가벼이 넘길 만한 의문이지만 결코 가벼이 넘어가지 않는 의문(2부와 3부를 정말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쓴 것이 맞나)이 작가가 시간을 두고 써냈다는 말로 비로소 해소됨. 결국 이 책은 작가가 과거 자신이 구상하고 쓴 글에 인생을 살아가며 터득한 생각과 가치를 덧붙여서 완성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음. 연작이라고 하지만 장편으로 보이는 이유임.


로봇이 논하는 창조론과 진화론. 이미 이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놀라웠음. SF 애독자라면 식상할 수 있겠으나 독서끈 짧은 내 입장에선 ‘올 게 왔구나’ 싶었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생물의 정의와 자아에 대한 토론,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올 수 있는가)’라는 원초적인 의문, ‘우리는 누구를 왜 숭배하는가(해야만 하는가)’를 넘어 ‘우리는 우리를 이롭게 하기 위해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을 없앨 수 있는가’와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우리를 없앨 수 있는가’로 확장되어 ‘상생의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로 귀결되는 질문. 책이 던지는 질문만으로 가슴 두근거리기는 참으로 오랜만임. 무엇보다 연속되는 질문 중 어느 하나 꺼지거나 잊히지 않게 계속 타오르게끔 조절하는 힘이 좋음. 거대한 자연의 순환처럼 어쩌면 이 모든 게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흐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소름이 돋음.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철학적 고찰이 과학적 서술과 놀랍도록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게 가장 큰 장점임. 한마디로 SF와 철학을 다루지만 어렵지 않고 편안함. 과학은 쉽게, 배경은 자연스럽게, 인물은 자세하게, 내면은 섬세하게 그림. 문장이든 서사든 괜히 꼬아대고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 글 자체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음. 기교가 없는 것과는 다른 얘기임.


로봇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역전 세계관 속에서 작은 부분 하나하나, 마치 이스터 에그처럼 위트 넘치게 치환한 것도 좋고 1, 2부 집필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도 먹힐 정도로 환경 문제를 다루는 시각도 날카로움. 여러모로 철저히 로봇의 관점으로 인간이 흥미를 느끼게끔 설정을 잘 풀어냈다고 할 수 있음.


그러나 아쉬운 점으로는 세계관이 재미있고 흥미로우나 탄탄하다고는 느끼지 못한 점인데, 로봇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장’에 대해서는 언급이 부족하기 때문임. 공장 자체는 과연 자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해서 기존 모델을 단종하거나 새로운 모델의 로봇을 만들어 내는 건 누구의 소관인지 등 인류 멸망 후 로봇 탄생의 절대적 존재에 대해서는 필수 요소 말고는 말을 아끼는 것 같아 (아주 살짝) 아쉬웠음.


문장도 하나 짚고 넘어가면, 어째선지 잘 읽다가 갑자기 눈에서 튕겨 나오는 문장이 있음. 가독성 좋다며? 응 좋아... 근데 소거법으로 발라 봤을 때, 과학적 서술과 철학적 사유와 배경 설명과 인물 간 대화와 인물 내면 묘사를 뺀 나머지, 정말 중요한 모든 걸 다 제외하고 남은 몇 안 되는 부스러기 같은 문장은... 좀 엉성함. 다른 어려운 거 다 잘 넘어가 놓고 굉장히 뜬금없는 곳에서 턱 막힘. 중요한 거 아니면 걍 넘어가지 너무 나노 단위로 까는 거 아님? 그렇긴 한데... 이게 1, 2부에만 있으면 복간 중 순간적인 수정으로 생긴 작은 구멍 정도로 생각하겠는데, 3부에서도 그런 게 있음. 그래서 어쩌라고? 아니 그냥 그렇다고... 좋은 만큼 아쉬운 게 더 크게 느껴져서 그럼...


또한 가장 늦게 집필한 3부가 조금 늘어지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 이는 작가의 확신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음. 유달리 길게 느껴지는 설득이 단지 독자뿐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 자신까지도 설득하려는 것처럼 보임. 하지만 1부가 창조, 2부가 파괴, 3부가 상생의 주제로 이루어져 잘 짜인 이 구조가 실은 창조에서 멈췄을 수도, 파괴에서 멈췄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도 반드시 필요한 구성이었음. 나는 이 이야기를 태생부터 함께하지 않았음에도 작가가 3부까지 써 주어 고마움. 순간과 영원 사이의 간극을 사랑으로 이어 상생으로 나아가 주어서.


끝까지 스스로의 의문에 맞서며 썼다는 것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만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과 같은데, 이야기와 작가가 서로 영향을 받으며 함께 서로를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 자체를 하나의 ‘생물’로 여기고 다가가는 섬세한 접근과 과감한 필치가 매력적인 책이었음. 찾아 읽어야만 하는 또 다른 작가를 만나게 되어 기쁨.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 장류진, 하유지, 정지향, 박민정, 김현,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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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새벽의 방문자들

(2017) / (2019)


페미니즘 테마 단편집. 앤솔러지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같은 주제의 책들이라 묶어서 평함. ‘현남 오빠에게’는 재작년쯤 읽었는데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기 전에 한 번 더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재독함.


이 두 권을 어떻게 평해야 할지 참 고민 많았는데... 두 책을 같이 얘기하자니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살짝 다름. 확실히 ‘현오’는 여성들이 겪어온 일상에, ‘새방자’는 여성들이 겪어온 범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음. 그 안에 크고 작은 변주야 있지만. 그렇다고 따로 얘기하자니 결국에는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되어 나누는 의미가 없음. 단편 각각 평하자니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짧게 써보자니 줄거리 요약밖에 안 될 것 같고... 열세 편을 망라하자니... 눈앞이 아득함.


일단 나눠서 조금 얘기해 보면, 현오에서는 여성들이 겪어온 일상 속 아픔을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함. 흔히 생각하는 2030회사원여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나이나 직업, 시선 등을 작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겹치지 않게, 최대한 넓게 골고루 보여줌. 일차원적인 경험 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들 노력한 것 같음.


조남주는 ‘82년생 김지영’에서부터 시작된 장기인 파편 나열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최은영은 친구 외 관계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 답답한 먹먹함으로 가슴을 깊게 찌름. 김이설(초면)은 아들과 딸을 둔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모순적인 감정을 잘 보여주었고, 최정화(초면2)는 회색빛 연출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구현함. 손보미(초면3)는 여성 느와르라는 전혀 다른 소재를 감각적으로 탁월하게 풀어냈고, 구병모는 판타지적 요소를 현실에 섬뜩하게 녹여내는 실력이 좋음. 김성중(초면4)은 인간 외 존재를 등장시켜 SF 분위기로 주제를 풀어가는 실력이 인상적이었음.


다들 마냥 독특해 보이려 애쓰지 않으면서 본인들만의 색깔을 잘 녹여내지 않았나 싶음. 다만 그렇다 보니... 조금 사리는 것 같다는 면도 없지 않음. 본인의 단독 작품에서 보일 법한 ‘진심 모드’가 아닌 것 같음. 그렇다고 판 깔렸겠다 에라 모르겠다 한바탕 놀아보자 하는 ‘즐겜 모드’도 아님. 어째선지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더 나아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임. 출간 연도와 그 당시 사회 시선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게 아니라 더욱 아쉬움.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나온 책의 시작으로는 훌륭하지 않나 싶음.


다음으로 새방자에서는 앞서 말했듯 일상보다는 범죄가 더 직접적인 소재로 나타남. 처음 보는 작가들도 많아서 원래 스타일이 어떤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오 때보다 좀 더 옅고 묽은 느낌의 작품이 많음.


살펴보면, 장류진은 특유의 신랄함을 무기로 여성이 느낄 수 있는 공포를 가볍고도 무겁게 잘 표현했고, 하유지(초면5, 이하 모든 작가 죄 초면)는 ‘고구마’와 ‘사이다’ 사이에서 사이다 역시 고구마에 편입되어 있는 현실을 잘 꼬집음. 정지향은 미성년자와 성인의 불공정하고 불균등한 연애를 착취의 시선으로 잘 포착했고, 박민정은 ‘정치적 올바름’에 가려진 무시의 시선에 말라가는 인물을 잘 보여주었음. 김현은 남성 동성애자를 회색 지대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같은 남성들의 무지를 반 발짝 멀리서 보여주었고, 김현진은 모호한 서술을 통해 여성의 욕망을 재치 있게 표현함.


색다른 주제들을 통해 조금 더 신랄하고 조금 더 유쾌해졌지만... 솔직히 질적으로 현오보다 떨어진다고 느낌. 현오보다 2년이나 늦게 나온 책인데도 불구하고 범죄라는 소재를 대두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발전도 없음. 오히려 퇴보한 느낌임. 처음에는 신진 작가를 위한 창구로 활용한 건가 싶었는데 작가들 연혁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님. 진짜 출간에 의의를 두는 동아리 문예집 수준인 글도 많음. 쥐어짜면 해석할 거리는 나오겠다만, 우선 드러나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가볍고 볼품없어서 깜짝 놀람. 줄 세우는 거 안 좋아하는데... 그만큼 많이 아쉬웠음.


그러나 이 두 책을 결코 따로 해석할 수 없기에 하나로 본 관점에서는 놀랍다고 말할 수밖에 없음. 작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냄.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겹치는 이야기가 단 하나도 없다는 거임. 비슷하다고 할 만한 것도 없음. 그만큼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아래에 이토록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낌.


사실 이렇게 평을 남기는 게 상당히 죄스러운데, 이 책들은 태생부터가 ‘평가’ 받기 위해 쓰인 게 아니기 때문임. 이 거대한 앤솔러지는 문학의 탈을 쓰고 공감을 저격한 하나의 사회고발서이자, 뜻있는 자는 함께 모이라는 놀자 판과 같음. 그런 곳에 굳이 끼어들어서 흠 이건 좀 그렇네, 하며 젠체하는 내 자신이 스스로 창피함. 그러나 모르기에 더욱 다가가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이야기에, 공감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강한 어조 속에서, 한번 들어 보라고, 나직하게 한마디 덧붙이는 회유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고 믿음. 모르는 ‘척’ 그만하고 한번쯤은 들어 보라고. 듣고 판단하라고.


사실 나에겐 공감보다는 납득의 면이 더 큰 소설들이었음. 하지만 이러한 간접 체험으로 나는 절대 겪지 못할 일들을 알게 되는 것, 나로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그로 인해 내가 몰랐던 세상을 이해하고 나의 무지를 깨달아 나 자신을 더욱 넓혀가는 것. 이것이 독서의, 참으로 진실한 순기능이라고 생각함.


추천작: 어느 하나를 딱 집어 추천할 수 없음. 그저 궁금하면 읽고, 궁금하지 않으면 읽지 마시라. 단, 잊지 말아 주시길. 이 두 권은 하나와도 같다는 사실을. 그리고 약속해 주시길. 읽는다면 어느 한 권이 아닌 두 권 모두 읽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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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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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2021)


2화에서 평했던 ‘우리의 노래는 이미’를 쓴 시인이자 ‘루나’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카투니스트의 에세이. 그러고 보니 2화에서 ‘루나파크’라고 언급했는데, 루나파크는 그 옛날 일상툰을 그려 올리던 홈페이지 이름이고 예명은 루나가 맞음. 그러나 나는 그냥 편의상 루나파크라고 부름. 마치 ‘마린블루스’의 성게군이 ‘마조 앤 새디’를 그렸어도 나는 그를 마린블루스라고 부르는 것처럼(심지어 ‘성게군’이라고도 안 함).


뭔데 너만 아는 얘기함? 내가 이 작가의 팬이고 오래 봐왔다는 걸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은 수작이었음... 언급한 ‘그 옛날’은 정말 2000년대 초반을 말하는데 그 시절엔 성게군도 홈페이지에 마린블루스를 그려 올렸고 ‘낢이야기’도 홈페이지에 연재를 했었지... 그런 시절이 있었다우...


그 시절 얘기... 조금만 더 들어주실라우...? 내가 고등학생 때였지... 루나파크의 첫 에세이집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를 생일 선물로 받은 나는 한껏 기대감을 안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웬걸, 기대와는 다른 흐름과 문장에 읽고 덮고를 반복하다 끝내 무표정으로 책을 덮었음. 우선, 문장이 지저분함. 이는 카피라이터라는 작가의 원 직업 때문에 그럴 텐데, 만화에서는 짤막하게 곁들여진 압축적인 표현들이 매력적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에세이라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글을 진행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온갖 수사로 범벅되어 있어 쉽게 지침. 그런데 작가는 그런 본인이 굉장히 위트 있다고 생각하며 쓴 것 같았음. 실상은 두어 문장 만에 읽어나갈 힘을 뺏기니 맛을 느낄 틈이 없었는데. 두 번째는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만큼, 글 진행이 예측됐음. 정말 초반 한 단락만 읽으면 이 챕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됐다고... 심지어 마지막 문장을 맞힌 적도 있음. 그러니 정말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딴 책 얘기를 뭐 그리 오래 함? 첫 에세이집이 나오고 십여 년이 지나 발간한 이 책이... 아무런 변화 없이 똑같아서 그럼(두 번째 에세이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만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여기서 깜짝 tmi! 이 책은 루나파크의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세월도 많이 흘렀겠다, 신문에서 연재도 했던 글 모음이겠다, 조금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도록 일관성 있음.


말 그대로 ‘말’에 대한 글 모음집임. 말 혹은 표현과 더불어 자기 생각이나 이야기를 짧게 풀어나감. 근데 그 방식이... 굉장히 진부합니다... 네... 저 위에 했던 말 그대로임. 온갖 수사로 범벅되어 있어 단정하지 못한데 본인은 그걸 굉장히 위트 있다고 생각할 거 같음... 너무 악플처럼 보이니 작법에 대한 호불호는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미안해요, 루나파크.


너 팬 맞음? 만화는 신간(‘루나의 전세역전’: 이거 나는 연재할 때 봤는데 사회인 필독서다 꼭 봐라그러고보니왜안샀지이글쓰면서바로구매갈김) 빼고 다 있다고... 닳도록 읽었다고... 홈페이지 아직도 즐겨찾기에 있다고... 어쨌든, 오히려 나는 이번 책으로 내가 작가의 만화는 좋아할지언정 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와 나의 근본적인 차이를 찾아낼 수 있었음.


그건 바로 ‘외로움’임. 이걸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싶음. 이 작가는 뼛속 깊은 외로움을 간직한 사람임.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사라짐으로써 남아 있는 사람들이 슬퍼할 것을 염려한다면, 이 사람은 누군가가 사라짐으로써 외로워 슬퍼할 자신을 생각할 사람임. 나는 심심하면 심심했지, 외로움은 모르는 사람이라 애초에 공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음.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다른데, 작가는 어느 구절에서 “나는 나를 사랑할 힘이 부족해서 누군가가 ‘사랑해’라고 말해줘야 스스로를 사랑할 에너지가 생긴다”라고 했음. 나 자신을 향한 애정에 타인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조차 못 해본 나로서는... 이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문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릴 때는 내가 아직 어려서 이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 못 하는구나 했는데 아니었어... 애초에 우린 다른 사람이었음을... 그런데도 왜 나는 당신의 만화를 좋아했던 걸까요. 왜 지금도 기다리는 걸까요.


이러한 점들이 만화에 없는 건 아님. 다만 그림이라는 중화제가 없다 보니 글에서 더욱 증폭되는 것 같음. 그리고 나는 그걸 글을 통해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힘들다는 걸 (이제야) 깨달음.


그래도 어느 정도 결이 맞는다면 웃으면서 읽을 거임. 실제로 나도 마냥 무표정이 아니라 웃었던 글귀도 많았고 먹먹해졌던 글귀도 많았음.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해, 예민하고 감수성 넘치는 시선이 작가만의 위트를 따라 흥미롭게 펼쳐져 있음. 조심히 꺼내 툭 보여주는 솔직함이 좋음. 기본적인 센스가 있는 작가임.


어쩌다 보니 나의 루나파크 덕질 회고록이자 참회록이 된 것 같은데... 아무튼 루나파크만의 감성이 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만은 분명함. 그것만은 확실함. 우울함에 쉽게 매몰되는 듯하면서도 굳세게 마음먹고 다시 일어나는 그 단단한 유약함에서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있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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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1

이번에는 쉽고 재밌게 읽은 책들이 많았는데 유독 감상을 쓰는 건 힘들었네요... 정말 머리 쥐어뜯으면서 썼습니다. 그리고 글이 어째선지 점점 길어지는데, 저도 짧게 쓰려고 하는데도 이러네요.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근데 갈수록 그게 표현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글을 올리고서도 몇 번 수정을 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여담 2

삼일절 기념으로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추천해 드립니다.


여담 3

다른 게 아니고, 제가 네2버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홍보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블로그 검색에 글 제목 치시면 나올 거예요. 아직 별건 없습니다. 문제시 이 문구는 지우겠습니다.


여담 4

이 글까지 2부를 3화 진행하는 동안 새로운 작가보다는 기존에 읽었던 작가들을 더 읽은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책을 더 많이 읽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