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살결에

  한층

  바람이 차고


  눈을 떠도

  눈을 떠도


  틔끌이

  날려오는 날


  봄보다도

  먼저

  3월 1일이

  온다


  불행한

  동포의

  머리 우에

  자유 대신

  '남조선

  민주의원'의

  깃발이

  늘어진


  외국관서의

  지붕 우

  조국의 하늘이

  각각으로

  나려앉는

  서울


  우리는

  흘린 피의

  더운 느낌과

  가득하였던

  만세소리의

  기억과 더불어

  인민의 자유와

  민주 조선의 깃발을

  가슴에 품고


  눈을 떠도

  눈을 떠도


  틔끌이

  날려오는 날


  봄보다도

  일찍 오는

  3월 1일 앞에

  섰다.


- 『찬가』(1947)






『찬가』 제2부에 수록된 15편은 해방 직후의 소작으로 어느 모로는 임화의 본령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들이다. 특정 계기에 씌어진 행사시가 많고 뜻을 헤아리며 되풀이 음미하기보다는 소리내어 낭독하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격문시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긴박성과 선동성이 역력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시적 긴장과 서정적 울림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으로 「기빨을 내리자」 「손을 들자」 「3월 1일이 온다」 등을 들 수 있다.


성질상 격문시는 밀도 있는 정치한 언어 구사나 깊이 있는 사고를 지향하지 않는다. 간결성과 직접성 그리고 가쁜 호흡을 특색으로 하는데 해방 직후 한동안 좌파 시인들이 크게 의존하고 활용하였던 시 형식이다. 오장환 같은 기성시인이 더러 활용하기도 하고 유진오, 최석두 같은 신인들이 크게 의존하였다. 임화 시의 직간접 영향이었다고 생각된다. 훨씬 뒷날 신동엽이 「금강」에서 간헐적으로 선용한 경우에도 우리는 임화 시의 영향을 간취할 수 있다. 우리 현대시에 임화가 기여한 것은 간결한 시행의 격문시를 통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임화가 해방 이전의 경향파 시인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시인이라는 통념은 근거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임화 시 고유의 견고한 성취보다도 여타 시인들의 상대적 취약성에 힘입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임화 시편은 감정의 노도질풍이 절제되지 않은 전언 위주의 장광설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의미에서 그에겐 '백조'파의 정통적 후계자라는 면모조차 있다. '백조'파의 무잡하고 원색적인 감격과 우울에 사회주의 지향이라는 구체적 모티프를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후기의 임화가 개발하고 선용한 간결 직절한 시행은 한국 현대시에 대한 중요한 기여이기는 하나 밀도 없이 전개되어 가쁜 숨결의 수다로 떨어진 혐의가 짙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오빠와 화로」, 『현해탄』 속의 몇 편, 「3월 1일이 온다」를 비롯한 몇 편의 격문시는 20세기 한국의 중요한 시편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유종호, 『다시 읽는 한국 시인』




위의 인용의 마지막 문장 때문에 개인적으로 임화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위의 시가 되었음. 화자가 좌익 지지자이지만 편향의 냄새가 옅게 느껴지는 것도 이 시의 한 묘미라고 할 수 있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