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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분명 ‘코끼리의 발자국은 커서 다른 모든 짐승의 발자국이 다 그 속에 들어가듯, 모든 가르침은 다 사성제에 거두어진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야신경의 용수는 “무고집멸도” 라며 공사상을 강조 하는걸 처음에 들었을 때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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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철교수의 선과악 유무에 관한 훌륭한 답변 시간이 되시는 분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주인공은 금각을 직접 마주하기 전 아버지로부터 “금각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말을 듣고 절대적인 미의 금각이 마음에 단단히 새겨져 버린것이다. 

이 절대적인 미는 우이코에게 투영되고, 우이코를 주인공이 막아서니 “별꼴을 다 보겠네. 말더듬인 주제에.” 라며 비웃는다. 상상속의 우이코와 실제 우이코의 괴리감은 주인공이 그녀의 죽음을 간절히 바란 이유가 아니였을까? 그녀의 죽음으로인해 아이러니 하게도 내면의 우이코는 불멸하게 되고, 중요한 순간마다 계속 금각과 함께 떠오르고 집착하게 된다. 

우이코의 죽음때는 내면의 세계에서 간접적으로 바라기만 했지만 후반부 금각사에 불을 지르며 외부의 세계에서 행위자로 다시 태어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羅漢)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서야 비로소 해탈을 얻을 것이로다. 사물에 구애받지 초탈(超脫)해야 자재할 것이다.”

불교는 집착을 괴로움이라 했다. 주인공은 그 집착을 외부의 금각을 소멸시키며 극복하고자 했는데 내부의 금각만 소멸시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 경험을 비춰봤을 때 다른대상으로 집착이 이어졌을거라 생각한다. 그게 깨닫지 못한 범부중생의 삶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