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6년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것 같은 <한국미술>이라는 저널에 실린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은 한국어로 출간된 같은 부류의 책 중 가장 선구적인 책들에 속하고 가장 많이 읽힌, 특히 예술/미술 관련 대학 교재나 참고서로 가장 많이 읽힌 책들에 속한다. 내가 재직하고 있을 당시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번역자인 박이소는 생각날 때마다 요절에 대한 안타까움의 감정이 치솟는 박이소(박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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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 앤 스타니제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현실문화연구-

이 책의 원 제목은 Believing is Seeing이다. 얼핏 믿는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다라는 선언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믿는 것을 본다는 것이 오히려 그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책이 미술에 관한 책이고 보면 그 제목은 결국 미술이라고 보는 것은 미술이라고 믿는 것이다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상식적인 명제다. 그러나 때로 가장 단순한 진실은 가장 무시되는 진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단순한 진실일수록 인간의 삶이라는 것의 양상 전체를 걸고넘어지는 진실일 가능성이 큰 반면 사회라는 것 속에는 그렇게 걸고넘어지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이유들을 한보따리씩 짊어지고 있는 세력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상 이런 기본적인 진실을 우리 미술계는, 특히 미술교육 쪽은 별로 주목해 본 일이 없다.

오늘날 미술은 일상생활의 맥락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특별한 어떤 것'이라는 믿음으로 존재한다. 우선 저자는 그 믿음이 비교적 최근, 즉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어떤 사물들을 바로 그렇게 믿어지는 미술작품으로 인정하고 유통시키고 평가하는 관행이 제도로 굳어진 과정의 산물임을 밝힌다. 미술은 특정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고 근대 이후 사회에 국한된 사회제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라스코 동굴에서 작업했던 '화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찬양할 때 우리는 당사자들에게는 아주 낮설었을 어휘를 그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미술에 관한 모든 담론은 바로 미술의 이러한 역사적 및 제도적 성격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이어 저자는 미술의 성립이 자본주의 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이루어진 소유주의적 개인주의 탄생과 연루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새로운 의미와 지시대상을 지니게 되기까지 미술이라는 낱말이 걸어왔던 행로를 살펴보며 이러한 미술의 이론적 짝으로 등장했던 근대미학의 핵심적 관념들, 즉 사회의 구속을 뛰어넘어 활동하는 천재로서의 미술가라든가 공통적 이상으로서의 취미라든가 순수하게 미적인 개념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든가 하는 관념들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아카데미의 화상-비평가 제도로의 대체라든가 미술관의 등장 역시 근대적인 미술 개념의 성립을 뒤따른 현상임을 밝히며 미술계에서 작용하는 남성중심주의적 관념들 및 관행들을 예로 들어 하나의 사회제도로서의 미술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들은 모더니즘 미술의 논리라든가 아방가르드, 대중문화, 매체를 다루고 있는 장들이다. 저자는 근대세계를 위한 보편적 언어를 창조한다는 미명 하에 미술작품으로부터 재현을 추방했던 추상미술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미술의 등장을 근대의 선형적인 발전 논리의 반영으로 이해하며 아방가르드의 등장이나 추상미술의 새로운 경향들을 그러한 원래의 모더니즘 논리의 모순이라는 맥락 속에 삽입한다. 물론 미술의 제도적 한계와 이데올로기적 신비화를 타파하려 했던 아방가르드 운동의 시도 또한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대중문화와 순수미술이 하나의 대분할인 동시에 필연적 공생관계에 있음을 강조하는 가운데 추상미술이나 아방가르드 운동이 대중문화 영역에서 새로운 매체들이 보여주었던 기술적 가능성들에 자극받았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실패했고 자본주의 시장 속에 포섭된 제도로서의 순수미술과 그 신화는 여전히 굳건히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무슨 비관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 개별적이거나 소집단적인 차원에서나마 '아방가르드적' 실천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실천은 대중문화 영역에서의 아방가르드적 실천의 현실성과 가능성이라는 든든한 백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긍정적 가능성에 대한 강조는 신선하다는 느낌과 성급하다는 느낌을 동시에 주지만 어느 쪽으로 기울든 미술이 대중문화와 교차하거나 결합하는 강력한 하위문화로 존재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토를 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술이 하위문화는 물론이고 아직 '문화'도 아닌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공감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말이다.

이 책은 미술은 오로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변화하는 믿음과 제도의 형태로만 존재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한계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 하에 근대 이후 미술에 대한 상투적 믿음들과 그 믿음들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반영하는 제도들의 형성과 의미에 대한 비판적 탐구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지배적인 믿음들과 제도들 등에 대한 도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과 그 도전의 가능성에 대한 해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순진하게' 강의되는 <미술의 이해>류의 강좌들에 대해 이 책보다 더 건전한 교정책은 없을 듯싶다. 저자는 별다른 부연설명이나 구체적 정의 없이 넘어가지만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지성 수준을 놓고보면 결코 선이해되어 있는 것으로 전제해서는 안될 개념들 및 현상들에 대해 역자가 '강력한' 주를 달아놓은 것은 이 책을 더욱 탐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