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때문에 얘기가 많은데 논쟁이나 논란은 아니고 그만큼 다양한 견해가 가능하다는 뜻일 거임.


나는 그 책 읽는데 정말 힘들었음.


뭐 엄밀한 논거도 별로 없고 비약도 심하고 개념도 애매하고.


게슈탈트 전환이라는 유비를 통약불가능성에 그렇게 써먹어도 되는 건지, 과학의 개념과 명제(이론)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 맞나 싶어서 짜증났고, 패러다임(이라는 애매한 개념)을 들이미는데 이게 일반화될 수 있는 건지 정당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의심이 들었거든. 그래서 읽다가 스트레스 엄청 받음.


나중에 다른 책들 읽으며 우틀안이라고 생각함.


쿤의 제자이자 동료인 헤일브론은, 쿤의 그림은 마치 점묘화 같아서 멀리서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가까이 갈수록 그 형태가 뭉개진다고 말한 적 있음. 쿤이 말한 정상과학-패러다임 변환에 관한 이야기나 통약불가능성 등이 다 그러함. 다른 과학 분야에 잘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생물학사의 대가인 도브잔스키는 생물학에 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건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했음) 통약불가능성은 두루뭉실한 해석학적 이론으로라면 모를까 실제로 과학의 새로운 이론 체계가 등장했을 때 둘의 관계에 대해 적용해서 발전시키기엔 뭔가 많이 부족한 유비임. 개념과 측정량, 데이터와 이론 사이의 관계는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파이어아벤트가 쿤을 비판하며 등장한 지점도 거기였음.


그러니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고전은 맞는데, 처음부터 시비 걸 거리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팠던 거임. 정말이지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기기 힘든 경우가 많았음. 왜 책을 이 따위로 쓰는가 싶어서.


나같은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고전의 가치가 객관적인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생각함. 어떤 사람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좋은 고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쿤의 책처럼 처음부터 시비걸 곳이 너무 많아서 그 책 역시 읽느라 너무 힘들었음. 어떻게 이런 책이 고전으로 취급받지 싶어서.


과거의 책들이 사실적 오류를 갖고 있다고 다 그렇게 읽기 불편한 건 아니었음. 다만 핵심적인 내용에서 그렇게 시비 걸 약점이 있으면 고전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생각한다'는 책읽기의 힘을 못 느끼기 쉽다는 것임. 그리고 그 약점을 발견하는 건 개인의 독해력에 따라 다른 거고.


그러니 누가 고전 비판해도 화 안 내도 될 거 같음. 비판받거나 폄하당할 구석이 없는 고전은 없음. 칸트를 안 읽고 현대 철학을 이해한다는 건 개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칸트 씨발 새끼 왜 책을 이렇게 썼냐는 얘기에는 반박을 할 필요가 없는 거라는 얘기임. 베르그손도 칸트 대신 메이에르손이 근대 철학의 종합이었다면 철학의 발전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갔을 거라고 말한 적 있음. 같은 맥락에서 칸트 씨발 씨발 거리는 훌륭한 독해력의 소유자일지 어떻게 알겠음.


고전이라는 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이지만, 어떤 누군가는 뭐 이런 산에 왜 올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PS

영화 공부할 때 "시민 케인" 보고 저게 왜 걸작이냐 의문 가지는 사람 의외로 많음. 그런데 그걸 설명해주는 것도 참 어려움. 왜냐면 이건 영화라서 보는 것과 이해가 하나가 돼야지, 볼 때 느낌은 전혀 없는데 머리로 걸작인 이유 설명해줘봤자 모름. 


그런데 정반대로 이미 자기 스타일이 확고한 감독 지망생이라면 "시민 케인" 보면서 시큰둥할 수 있음.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감흥 별로 없어, 그런 식으로. 나는 저런 식으로 만들지 않을 거야, 그런 거지. 


문제는 영화 쥐뿔도 모르는데 그렇게 자기 스타일과 취향이 있는 경우임. 그건 무식해서 못 느낀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자기 취향이 이미 훌륭하게 자리잡았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음. 


책도 그런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