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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흉년은 박완서 쌤의 대표작인 <나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는 다르게 자전적 소설이 아닙니다.

소설의 화자는 지대풍 집안의 막내 딸인 지수연으로 그녀의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됩니다. 한국전쟁 이후,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급격하게 부를 쌓은 졸부 집안이 어떻게 몰락하는가, 를 통해 1970년대의 사회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설 속의 '나', 지수연은 자신의 가족들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특히나 황금만능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 엄마에 대한 감정은 애증보단 증오에 가까울 때가 더 많다고 보일 정도입니다. 여기서 완서쌤 작품의 특징인 딸과 엄마의 대립이 잘 나타납니다.

하지만 지수연의 비판적인 시각은 딱 가족까지입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혼란스럽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길을 사회로 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데모하는 학생들을 보며 혀를 찹니다. 이 당시엔 여성의 사회생활이 남성에 비해 떨어지기에 그녀의 문제 인식은 대부분이 가정 안에만 머뭅니다.

이렇게 보듯 지수연은 이중적인 인물입니다. 엄마를 싫어하면서도 엄마의 돈이 주는 안락함엔 착실히 길들여져 있습니다.
가족에게 벗어나기 위한 자립을 꿈꾸지만,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걷어차기도 하며 내 젊음이 낭비되지 않을 '아름다운 자립'만을 꿈꿉니다.

결국 그렇게 꿈꾸던 자립은 '남매 쌍둥이는 상피 붙는다.' 즉, 자신의 쌍둥이 오빠인 지수빈과 근친상간을 한 게 아니냐는 오해로 가정에서 버림 받으며 이루어집니다.

도시의 흉년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무언갈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에겐 파괴성이 있다. 같은 예수쟁이라도 가끔은 신이 없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좋고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신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좋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무언갈 맹목적으로 좇고 있습니다.

돈을 좇는 엄마,

잃어버린 남성성을 좇는 아버지,

가정에서의 해방을 좇는 오빠,

아름다운 자립을 좇는 나.

그들의 맹목적으로 좇기만 하다가 서로를 파괴시키고 가정의 몰락을 앞당깁니다.

가정이 몰락한 뒤, 나는 어떠한 사건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내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예감을 느끼고, 그 예감은 보석처럼 빛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것들을 포기하고 남자와의 결혼을 택합니다. 계속해서 자립을 좇던 나에게  잘된 일일지,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결말에 "세상엔 잘못된 일과 잘된 일이 있는 게 아닌 슬픈 일과 기쁜 일로 나눌 수 있을 뿐"이라는 작중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에서 지수연은 단 한 번도 주체적인 인생을 산 적이 없다는 게 저에게는 슬픈 일로 다가왔습니다.

도시의 흉년은 3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입니다. 페이지로 따지면 10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입니다만,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에 지루할 틈없이 재밌게 읽었습니다.

최대한 스포 없이 쓰려고 글이 중구난방이지만 아주 재밌는 책이니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꼭 일거보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