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장르에서 거유 미소녀의 기능적 유용성과 구조적 한계에 관하여 - 아라크니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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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 풍 미소녀 고독(蠱毒) - 아라크니드>

"가족? 우정? 동기? 개연성? 메시지? 교훈? 전쟁반대? 인류 평등?

그런 거 할 시간에 우리의 존 윅은 최소 35명을 죽입니다."

리뷰만화 부기영화의 존윅에 대한 리뷰를 옮기며 시작해보자.


멋있는 남자가 등장해서 스타일리쉬 하게 사람을 죽이는 영화는 그 자체로 흡족하다.

거기에 숨겨진 거대 조직과 출생의 비밀 같은 멋진 설정이 더해진다면 더 재밌다.

앞뒤가 좀 안 맞고 전달되는 철학 등이 없어도 말이다.


아라크니드도 이와 비슷하다.

곤충맛 설정 토핑을 좀 많이 뿌려 놓은 미소녀가 스타일리쉬하게 사람을 죽이는 만화이다.


거유 미소녀를 한 명 상상해보라.

이 소녀가 아파하면서도 사람들을 죽여간다.

교훈이나 메세지는 없다. 난교와 배빵, 본디지와 스쿨미즈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 당신이 이걸 본다는 걸 모른 다는 전제 하에,

좀 보고 싶지 않은가?


미소녀 액션 만화는 그거면 충분하다.

아, 참고로 주인공은 거미의 능력과 유사한 전투 스타일을 가졌고

적들은 다른 곤충을 모방한 능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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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장르와 망가적 미소녀의 시너지>

액션 장르의 전형적인 남성 주인공을 일본 만화적으로 표현한 미소녀로 대신 할 경우,

얻어지는 뚜렷한 유용함이 있다.


첫째로 자연스럽게 BDSM 페티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적에게 구속되어 얻어맞는 것은 폭력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을 거유 미소녀가 당할 경우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곧바로 가학적 페티쉬의 시바리(Shibari)본디지-배빵 료나물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아라크니드도 이 점을 십분 활용했다. 거미줄은 당연히 미소녀를 묶는다.


반대인 가학을 행하는 여성 페티쉬에서도 동일하다.

잭 리처가 적을 때리는 것은 폭력적 쾌감을 일으키지만

미소녀가 근육남을 때리고 묶고 매도를 행하는 것은 약간 다른 방향의 쾌감을 일으킨다.

당연히 아라크니드는 이 점도 십분활용하여 남자를 묶고 괴롭히는 여자가 등장한다



두번째로 학교라는 페티쉬 맥락을 제공한다.

미소녀는 소녀인 만큼 중-고등학생이어야 한다.

학생은 학교를 가기 마련이고 학교에는 페티쉬가 가득하다.


여선생, 여선생에 간호사를 더한 보건선생, 여고생, 선배, 후배라는 타이틀 페티쉬

일본 학교의 경우 세일러복, 스쿨미즈, 브루마와 같은 복장 페티쉬

교실 안, 옥상, 체육관 창고 같은 장소 페티쉬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장소]에서 [복장]입은 [타이틀]을 메차쿠차"

라는 문장에 학교와 연관된 무엇을 자리에 채워넣어도 그럴듯하다.

"방과 후 빈 교실에서, 교복 입은 담임 여교사를 메차쿠차"


더 나아가 메차쿠차 대신 BDSM적 페티쉬를 자극 하는 폭력적 행위를 넣는다면?

조금 더 자극적이다.

이렇게 학교와 BDSM이라는 페티쉬의 보물창고 두 개를 합쳐서 PPAP 해버린 것이 바로.

미소녀 액션 망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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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의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있는가>

미소녀 액션 망가는 액션과 페티쉬를 통하여 자극을 극대화 한다.

그와 동시에 휴먼 드라마와 고도의 플롯 등의 문학적 쾌감은 작가가 적극적으로 포기하거나,

그러한 것을 작품에 녹이려 시도 한다고 해도 많은 경우 독자의 안중에 없게 된다.

휴머니즘과 드라마, 고도의 플롯이나 철학을 기대하는 독자를 위해선 다른 좋은 선택지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배제하고 장르의 본질적 쾌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미소녀 액션 망가는 불닭볶음면이나 디진다 매운 돈까스와 같은 장르이다.

이 장르의 핵심은 자극이다. 매운 맛이다.

충분한 단백질이나 항산화물질 같은 영양소등을 찾기 위해 먹는게 아니다.

입에 넣고 씹자마자, 눈에 그림이 들어오자마자 느껴지기 시작하는 자극.

그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인간의 감각기관은 적응하며, 역치는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새롭고, 강한 자극이 계속해서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면 독자는 떨어져 나간다.

높아지는 역치에도 자극을 주기 위해선 새로운 인물과 상황, 장치가 요구된다.


아라크니드는 자극 인플레이션의 대응책으로 두 가지 주요한 방법을 사용한다

1. 새로운 곤충인간을 등장시킨다

2.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관계가 "사실은 이러했다"라는 반전을 밝힌다

이 두가지가 유효했는가?


초중반까지는 그래보였으나,

중후반에 이르면서 매운맛이 좀 부족하고 아이디어가 진부해보인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며 작품을 불필요하게 끄는 느낌이 든다.

독자의 자극 역치의 상승 속도가, 작품의 자극의 상승속도를 앞지르기 때문일 것이다.

단행본 열권이 넘는 분량의 장편 만화에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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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액션과 페티쉬라는 일본식 미소녀 액션 망가의 왕도에 곤충이라는 소재를 섞어 흥미롭고 자극적이게 시작한다.

다만 자극 인플레이션이라는 장르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뒷부분이 아쉬운 작품이다.

후속작이 두 개 있는데 한계를 극복하였는가는 안봐서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