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진이나 그림은 언제나 매혹적입니다. 거울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2중의 의미를 갖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황홀해하는 그녀의 모습과 거울에 비쳐졌을 그녀를 황홀케하는 모습 자체(거울상)를 볼수 있기 때문 입니다. 여기에 제3의 시선을 도입할 수 있겠는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재한 자리에서의 응시의 차원입니다.
심리학의 '거울 단계 이론'에서 유아는 거울의 이미지를 통해 자아를 획득한다고 합니다. 거울을 보기 전에 유아는 파편화되어 있는 자신의 신체만을 알수 있을 따름이고 거울을 통해서만이 전체적인 자신의 모습을 인지 할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거울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거울을 비춰보는 자의 상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거울 속의 투영된 상은 나의 왼쪽과 오른쪽을 뒤바꾼 이미지이기 때문 입니다. 혹여 온전하고 고스란히 투영되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의 모습을 이미지적 상상적으로 통합된 형상을 유지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가시적으로 통합된 거울의 이미지로부터 자아는 소외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거울 단계의 이미지는 상상적이라는 면에서 다양하게 변용될 수 있습니다. 다시 쿠르베의 그림으로 돌아가서 소녀는 거울을 보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소녀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는 나의 어떠한 점에 반한 것일까' 혹은 '나로부터 무엇을 욕망하는 것일까'를 떠올려 보겠지요. 곧 거울의 이미지를 통해 타자의 시선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의 한장면은 이러한 거울단계의 상상적인 이미지가 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영화 속의 창녀는 거울을 들여다 봅니다. 표면적인 차원에서 여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 거울 뒤로는 자신을 창녀로 만든 남자가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곧 거울을 바라보는 창녀의 시선과 거울 뒤의 남자의 시선이 겹쳐 집니다. 해서 여자가 거울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여자가 자신을 본다는 의미와 함께 남자를 응시를 경유한 질문이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아일랜드 소녀의 모델은 조안나 히퍼넌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쿠르베의 제자격인 휘슬러의 모델이기도 했는데 이후 휘슬러를 떠나 쿠르베의 뮤즈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런 에피소드는 이상한 방식으로 그림에 활기를 불어 넣는 느낌입니다. 마치 '나쁜 남자'에서 거울 뒤에 숨어있는 조재현의 시선처럼 쿠르베의 시선이 거울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소녀의 시선과 겹쳐 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재한 쿠르베의 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봅니다.
한가지 더 이 그림이 재미있었던 까닭은 거울 속의 이미지가 그림 속에서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 속에서 반사되는 이미지가 쿠르베의 시선이라면 우리는 그림을 통해서 이미 그 거울의 이미지를 보는 것일 겁니다. 쿠르베는 '거울을 바라보는 소녀'의 이미지를 여러점 그렸지만 이 그림만은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쿠르베는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을 그 소녀처럼 이 그림 자체를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담아 놓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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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독갤에 거울단계 이론이 과학적으로 논파 되었기 때문에 심리학은 무쓸모에 개소리라는 게시글을 읽고 거울단계와 관련한 짧은 글을 써봤습니다. 물론 서툴게 이론을 구성한 비과학적인 글이지만 뇌과학, 인지과학 혹은 인지심리학과는 다른 영역에서 심리학적 유산은 여전히 나름의 쓸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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