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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직 완독을 한 것은 아니기에 결말에 따라 평이 바뀔 수도 있긴 하지만(가능성은 낮다 생각), 현재까지로서는 하루키 소설들 중 별로라는 평 들어도 할 말 없을 거라 생각함.

힘 빠지는 나르시시스틱한 문체, 바로 앞 표현처럼 오글거리는 영어 형용사 독음 남발, 진짜 왜 단편을 늘렸냐 싶을 정도로 비어버린 서사와 전개 등 문제야 많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전혀 하루키스럽지 않다는 거임 그러니까 하루키의 매력을 느낄 부분들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

그렇다면 하루키 소설들의 매력이란? 내가 하루키 읽어본게 1q84(중도하차)랑 노르웨이의 숲 밖에 없긴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 “두 세계”가 포인트라 생각함.

실제 주인공들이 딛고 서 있는 세계 말고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환상이든 공상이든 여러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두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확실하고

경우에 따라 이쪽으로 저쪽으로 빨려들어가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기묘함이 하루키 소설들의 매력이 아닐까 싶음

두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하루키는 상당히 모호하고 흐릿한 방식을 제시함.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세계에 대한 묘사는 깔끔하게 해내지만 어떤 논리나 타당한 근거에 대해서는 항상 설명이 부족함. 그냥 그렇기에 그렇다의 반복이지

하지만 이런 모호한 세계의 존재가 주는 효과는 판매부수가 입증하듯 엄청나지.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미없이 그저 존재할 뿐인 어떤 두 세계에 매료되었고 빠져들었으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맞부딪히며 현실의 문제라 생각했던 것들을 하루키는 깔끔하게 다른 세계로 넘겨버리고 그에 따른 고요함과 상실을 지속적으로 부각함.

따라서 독자는 모든 요소를 한 세계 안에 집어넣고 그 안에서 답을 찾는 빡빡한 다른 소설들보다 하루키의 여유 가득하고 비어있는 듯한 세계를 선호하는 거고

1q84를 보면 초반부 육교(?, 다리? 기억이 잘 안나네)를 넘어서면서 두 세계가 존재한다고 아예 못 박아둔 거로 기억함. 따라서 상당히 무거운 소재를 다룸에도 특유의 꿈 같은 분위기는 유지되고, 마치 아무리 무거운 뉴스라도 그저 화면 너머로 바라볼 뿐인 다수의 독자들에게 공감 아닌 공감을 주지

노르웨이의 숲은 환상성이 거세된 소설이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상실에 대한 특유의 감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함. 이때는 오히려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각자의 갈등과 고민은 본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어짐.

따라서 관계와 섹스는 가벼워지고 두 여자를 동시에 만나는데에 대해 아무 죄책감이 없고,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인간 개개인은 아무와도 만나지 못하는 순간 길을 잃은 듯 방황하게 되는 거고…

하루키는 세계 속 고민과 갈등을 의도적으로 분해하고 분류하여 한쪽으로, 다른쪽으로 몰아주며 생기는 효과에 집중했던 것 같음. 마치 만화를 읽는데 흑백과 컬러가 한 컷 안에서부터 이리저리 나뉘며 표현되는 연출처럼

자, 그런 도시벽은? 이런 세계의 분리가 너무 약하게 나타남. 두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계속 보여주지만 세계는 주인공의 발언에 따라 존재성만 미약하게 가지지 그게 분리는 되는지, 그래서 미학적인 의미와 정보는 주는지, 두 세계인만큼 나뉘기는 하는지 알 수가 없음.

알 수가 없다는게 그만큼 모호하고 환성적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식으로 썼어! 글에 밀도와 입체감이 전현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인 거고

그러니 재미도, 하루키 특유의 감성도 알기 힘들고 읽는 동안 내가 왜 읽지 생각이 정말정말 많이 들지… 하여간 이거 완독하고 얼른 세끝하원이나 읽어야겠다. 그건 좀 낫게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