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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왼쪽 얼굴은 거대하게 부풀어있다. 샘의 얼굴은 선천적으로 기형이었다. 혹은 샘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괴롭혔다. 혹의 크기는 샘의 고통만큼 거대했다. 엄마 뱃속에서도, 걸음마를 띌 때도, 사물함 앞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 대도, 관심 있는 여자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도 거대한 혹은 말 그대로 때려야 땔 수 없는 자기 존재의 일부였다. 왼쪽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얼굴, 그것이 샘의 정체성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괴롭혀왔던 혹은 이제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그의 바람은 잘생겨지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평범해지는 것이다.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평범과 보편은 같은 말일까? 샘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감정은 보편적이다. 샘의 거대한 혹은 내면의 보편을 가둔 채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혹이 부풀어 오를수록 평범을 향한 샘의 마음도 커졌다. 신체의 기형은 삶의 기형을 유발하는가? 이 기형은 극복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삶은 포기되어야 하는가? 혹의 크기는 그가 삶을 부정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샘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 혹의 크기를 줄이고자 한다. 톰 홀먼은 샘의 이야기에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를 향해, 그리고 샘을 도우려는 의사들의 이야기로 시선을 옮긴다.
그들의 삶은 영웅적이다. 완벽히 갈고 닦은 수술 실력 위에서 작동하는 환자를 위한 마음이 그들을 수술대로 이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다. 구할 수 없는 삶은 존재하고, 집으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새벽에 호출을 받으면 병원으로 돌아와 환자의 상태를 보아야 한다. 그들은 샘을 돕기로 결정한다.
수술이 결정되고 부모는 보험 유지를 위해 샘을 병원에 둔 채 직장에 출근한다. 사람들은 이미 유명 인사가 된 샘의 이야기를 듣고 매일같이 그들을 응원한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다. 반복되는 업무와 반복되는 응원에 애써 괜찮다고만 답할 뿐이다. 샘의 부모는 그저 평범하게 아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톰 홀먼은 삶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보편이 나타나는 점들을 본다. 가면 뒤에 있는 소년도 학교를 다녔고, 거대한 혹을 달고 태어난 아들을 둔 부모도 잔소리를 한다. 모두가 포기했던 수술을 감행하며 샘을 도운 이 특별한 의사들도 출근할 때까지 잘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다. 평범한 삶이란 특수와 보편 사이에 놓여있었다. 끊임없이 보편을 추적하는 시선의 궤적은 어느 순간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감정적 중력에 따라 세심하게 선별되고 배열된 사실들은 하나의 궤적을 그리며 독자들 마음에 보편적 가치라는 별자리를 새긴다.
이 궤적은 샘의 의지를 따라간다. 이 별자리는 삶을 긍정하고자 하는 샘의 의지를 상징한다. 신체의 기형은 삶의 기형을 유발하고 있었다. 극복될 수 없는 기형은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샘은 포기하지 않는다. 샘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재활 중 만난 여자아이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쪽지를 건네고, 응원의 손짓을 보냈던 샘의 모습처럼, 톰 홀먼도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삶의 기형은 사라지지 않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2001년, 톰 홀먼은 얼굴에 거대한 혹을 달고 태어난 소년의 이야기 <가면 뒤의 소년, SAM>으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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