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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헬드 기법 (영상의 의도적 흔들림)
페이크 다큐 (카메라로 찍고 있는 듯한)
종렬형 컷의 도열을 통한 형식 파괴
그러나 실패, 그 이유는
컷의(만화:정보가 담긴 사각형) 연속에 의해,
독자의 프레임 지각知覺이 반복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한
의식을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너츠 같은 만화가
측면과 앵글이 고정되며
최대한 단순한 그림체인 건
(횡 이동만 보여주는 4컷 동화 같은 만화)
그런 이유에서다.
(또한 보다시피)
(대화중심의 만화이기 때문에, 사각형보다는)
(텍스트나 말풍선에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프레임(컷/사각형)이라는 반복된 부호에,
강한 자극 마저 주면 (극화체, 디테일한 그림등 등)
독자의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만화와 다르게
영화는
같은 프레임에 수많은 정보가
독자에게 쏟아져 오더라도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정보와 빛도 있고
스크린은 외곽이 암실과 연계되어
프레임이 강조되지 않는
거터의 역할(밖은 다 검은)을 해
(우리의 눈이 시야 외의 검은 사각은 의식하지 않는 효과)
(아래그림은, 실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경험을{위의효과})
(시각적으로 사용해, 과거로 독자를 이입시키는 기법)
사각형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화에서 단발성 아닌데도
'지나치게 실행' 하게 되면 (암실기법조차도)
'반복된 사각형 때문'에
해석하기 위한 집중력이 쓸데없이 낭비된다.
(참조자료/조에트로프 아트)
(같은 공간에 {시점을 고정해야 작동}하는 예술)
영화는 시간이 한 화면에 고정되어 흐르는
직렬형 미디어지만
만화는 다수의 컷으로 구성되어
시간이 빈공간:거터를 넘는 (상상의 구역)
병렬형 미디어다.
의식을 하기 싫어도,
만화의 컷이 그대로면
눈에 의해 위치가 재정렬되고
그럴때마다
사각형은 [정보의 병목] 을 일으킨다.
핸드헬드, 페이크 다큐식 진행(여기까진 괜찮지만),
그리고 컷의 반복은
어디까지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는 룰)
주어질 때
작동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후지모토 타츠키는,
만화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치명적인 실수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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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컷의 크기는
곧 시공간의 크기이고
시공간의 크기는
이벤트의 중요도를 암시하기도 한다.
"같은 이벤트의 질량"이 암시되게 되면
내부의 정보는
컷의 부피에 맞게
자극적이라도 수축되거나
빈약하더라고 팽창해버린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대중 만화가 정보의 대비를 통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줘야하는
(만화 만이 아닌 음악, 그림, 영상 또한)
기본적인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주의라는 명목으로
자연스런 흥미의 메커니즘 파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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