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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송영택 역이고,

좋아서 현기증날 수도 있지만

길어서 현기증날 수도 있음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이정도는 되네..



그러므로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충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생명이 솟아나는 깊은 밑바닥을 찾아보십시오. 그 원천에서 당신은, 창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답을, 그것이 들려오는 그대로의 의미를 밝히려고는 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가 될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당신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외부에서 올지도 모르는 보수에 대해서는 절대로 개의치 말며, 그 운명을, 운명의 무게와 위대함을 참고 견디십시오. 왜냐하면 창작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하나의 세계여야 하며,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또 자신이 연관된 자연 속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마음속을 파헤쳐 들어가서 깊은 대답을 찾으십시오. 만약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만약 당신이 이 진지한 물음에 굳세고도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할 수가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의 생활을 이 필연성에 따라 구축하십시오.




당신의 생활은 가장 하잘것없는, 가장 사소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 절박감의 표시가 되고 증명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는 자연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때에는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연애시를 쓰셔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잘 알려진 평범한 형식은 피하십시오. 이것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훌륭하고 부분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 옛날부터 많이 있는 곳에서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내려면, 위대하고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발전을 통하여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성장을 이루어가시라고 충고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바깥으로 눈을 돌려, 아마도 당신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당신의 가장 내면적인 감정만이 대답할 수 있을 물음에 대하여 바깥에서 대답을 기대하는 것만큼, 당신의 발전을 크게 해치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부탁해둡니다만, 심미적이거나 비평적인 것은 되도록 읽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은 생명이 없는 경화된 상태에서 화석화한 무감각한 당파적 견해든가, 아니면 오늘은 이 견해가, 내일은 그 반대 견해가 승리한다는 식의 재치 있는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술 작품은 무한히 고독한 것으로서, 비평으로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논쟁이나 비평이나 해설에 대해서는 언제나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의 감정을 옳다고 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옳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의 내적 생명의 자연스러운 성장이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신을 전과는 다른 인식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판단이 조용하고 안정되게 발전하도록 두십시오. 그것은 모든 진보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며, 무엇에 의해서도 강제당하거나 촉진되는 것이 아닙니다. 달이 찰 때까지 잉태하였다가 낳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모든 인상, 모든 감정의 싹을 완전히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어두운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오성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완성하여 깊은 겸손과 인내로 새로운 분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이것만이 예술가의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해에서도, 창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는 시간으로 재는 법이 없습니다. 해(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10년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가란 계산하거나 세는 것이 아니고, 수목처럼 성숙하는 것입니다. 수목은 그 수액의 흐름을 재촉하지 않고, 봄날의 폭풍우 속에 유유히 서서 혹시 여름이 안 오는가 하고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여름은 꼭 옵니다. 그러나 여름은 마치 눈앞에 영원이 있는 듯 아무 근심도 없이 조용히 드넓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심 강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옵니다. 저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배우고, 그 괴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내야말로 전부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때 당신의 고독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기뻐하십시오. 크지 않은 고독이란 대체 무엇일까(하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고독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크고, 쉽게 견뎌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에게, 이 고독을 무엇인가 아주 평범하고 값싼 결합과 교환하고 싶은 때가 오는 법입니다. 누구든 상관없이 가까이에 있는 사람, 아무리 시시한 사람과의 하잘것없는 외양적 일치하고라도 교환하고 싶은 때가 오는 법입니다······. 그러나 대개 그때야말로 고독이 성장하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의 성장은 마치 소년의 성장과 같아서 고통이 따르고, 봄이 시작될 때처럼 서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고독, 커다란 내면적 고독뿐입니다. 자신에게로 침잠하여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 적에, 어른들이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에 (그러나 그것은 어른들이 아주 바쁘게 보이고,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하는 일을 무엇 하나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만) 얽매여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우리가 고독했듯이 그렇게 고독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당신 내부에 지닌 세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 생각을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든 당신의 미래에 대한 동경이든, 아무튼 오직 당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에 유의하고 그것을 당신의 신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보다 우위에 두십시오. 당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신의 전적인 사랑에 상당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든 그 일과 관계되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지위를 밝히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너무나 많은 노력을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자신 속에 조형하고 형성하는 가능성을, 특히 행복하고 순수한 삶의 본래적인 자세로서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향하여 자신이 뻗어가게 하십시오. 그러나 오는 것은 깊은 신뢰감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만약 그것이 당신의 의지에서, 당신 내부의 어떤 필요에서 온다면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내부의 그 무엇이 당신의 고독에서 빠져나오려 한다고 해서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소망을 당신이 차분하게 유유히 도구처럼 사용하기만 한다면, 당신의 고독을 드넓은 땅에 펼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습의 힘을 빌려서 모든 것을 안이한 방향으로, 안이한 중에서도 가장 안이한 방향으로 해결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이것에 의지합니다. 자연계의 모든 것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또 몸을 지킵니다. 그리고 스스로 독자적인 것이 되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떠한 저항을 받더라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만, 우리가 어려운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확신입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어렵다는 것은 그 일에 힘쓸 더 많은 이유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긴 시일을 거쳐 인생의 깊숙한 내부에 이르는 고독입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보다 고양되고 보다 심화된 고독을 의미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개방하고 바쳐서 다른 사람과 결합하는 것이 아닙니다(정화되지 않은 미완성의, 아직 질서를 갖지 못한 자의 결합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성숙하려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이 되려는, 세계가 되려는,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 그 자신이 세계가 되려는 숭고한 동기입니다. 개개인에 대한 크고 엄청난 요구입니다. 한 개인을 선택하여 광대한 것으로 초빙해 가는 그 무엇입니다. “과제로서 자기 자신을 만든다. 밤낮 없이 귀를 기울이고 망치질한다”는 의미에서만,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랑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을 개방하고 바치는 것과 모든 종류의 결합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그들은 아직도 긴긴 세월을 비축하고 모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궁극의 것입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외부에서 인간의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도 차츰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이 자기 내부에 사는 동안에 그것을 흡수하고 자기 자신으로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것을 그것으로 인식할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낯설어 그저 놀라고 당황할 뿐, 그것이 분명 지금 처음으로 자신의 내부로 들어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비슷한 것을 전에는 자신의 내부에서 본 적이 없다고 그들은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넘었다고 여겨지는 이상한 상상이나 기묘한 감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그것이 미칠 수 있는 만큼 넓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전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는 가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필경 우리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용기입니다. 우리가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가장 기묘한 것, 가장 기이한 것, 가장 해명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용감해야 합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이런 의미에서는 소심했던 것이 인생에 무한한 화禍를 미쳤습니다.




인간관계가 말할 수 없이 단조롭고 구태의연하게 임기응변으로 되풀이되는 것은 태만 때문만이 아닙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새로운, 헤아릴 수 없는 체험에 대한 공포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서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아무리 난해한 그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계를 생동하는 것으로서 체험할 수가 있고, 자신도 자신의 존재를 남김없이 퍼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개개인의 존재라는 것을 크든 작든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할 때 대개의 사람은 자기 공간의 한구석만을, 즉 창가의 한 장소라든가 그들이 왔다 갔다 하는 좁다란 하나의 장소만을 알고 있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일종의 안정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대해 불신감을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세계는 우리를 거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계에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포입니다. 심연이 있다면 그 심연은 우리의 것입니다. 만약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려운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 권하는 저 원칙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운다면, 지금껏 가장 낯선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가장 친근하고 가장 충실한 것이 될 것입니다.




병이란 하나의 유기체가 이질물異質物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유기체가 병에 걸리는 데 협력하고 병을 완전히 거쳐서 탈출하는 데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유기체의 진보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관찰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에게서 일어나는 일에서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저 일어나는 그대로 버려두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지금 당신이 당하는 모든 일에 당연히 관련되어 있는 당신의 과거를 질책의 눈으로(즉 도덕적인 판단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감정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집중시키고 고양하는 감정은 모두가 순수하고, 당신의 본질을 일면만 파악하여 당신을 왜곡하는 감정은 불순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어린 시절을 앞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좋습니다. 당신을 지금까지의 최고의 시간보다 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 옳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피 전체 속에 있다면, 그것이 도취와 혼탁이 아니며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기쁨이라면, 어떠한 고양高揚도 좋은 것입니다.




견디기에 충분한 인내와, 믿기에 충분한 순진성을 당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십사 희망합니다. 어려운 것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고독에 대해서 더욱더 깊은 신뢰감을 가져달라는 희망입니다. 또 인생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인생은 옳은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고 당신의 회의도 당신이 그것을 훈련한다면 하나의 좋은 특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것이 되고, 비판력이 되어야 합니다. 회의가 당신의 그 무엇을 해치려고 할 때마다, 회의에게 왜 그것이 싫은지를 물으십시오. 증명을 요구하여 잘 음미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마도 회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는 것을, 또한 회의가 무리한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논거를 요구하십시오. 그때그때 신중하게, 철저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파괴자였던 회의가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의 하나가 될 날이, 아마도 당신의 삶을 구축하는 모든 자 가운데 가장 현명한 자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오히려 이 이해를, 이 이해했음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이 체험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오직 당신만이 증명할 수 있을 뿐, 다른 아무리 세심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면 벌써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변화하는 어느 한순간에 당신을 고정시키는 위험에 빠지고, 이 새로운 처지를 모든 방향에 걸쳐서 본의와는 달리 당신에게 측량시키는 자유를 파괴하는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행복한 운명이 소망을 들어주는 순간에 자기를 한층 깊게, 한층 진지하게 인식하는 수가 매우 드뭅니다. 그럴 때에 대부분 사람에게는 자기의 이전 고독의 성과가 우울한 오류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행복의 현혹으로 몸을 던지고, 자기 내부의 진실의 윤곽을 망각하고 부정해버립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의 준비는 더욱 철저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거기서 인식한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고난과 거의 모든 통찰은 지금 분명히 빛나는 수납과 반영하는 증여의 위대한 광휘 속에, 그 한가운데에 옮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당신의 행복은 그처럼 순수한 권리와 보증을, 그처럼 깊은 안전을 얻고 있습니다(그래서 당신은 그 행복 속에서 비로소 자기를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과하다고 여겨졌을지 모를 혼수를 새로운 정화淨化 속으로 야무지고 성실하게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언제나 어떤 운명의 형태를 받아들이려고 한다든가, 혹은 어떤 완성된 미래의 갑자기 열린 형식 속으로 흘러 들어가려는 유동적인 마음가짐을 당신이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을 너무 비굴하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복종의 극단적인 가능성 배후에는 절실하고, 내향적이면서도 대담한 굴복의 상수常數가 있다는 것을 차츰 느끼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의 형식을 충족시키려는 이 대담한 행위가 바로 인생이 아니라면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형식도 언젠가는 그 사람의 어깨에 의하여 파괴되고, 사람은 자유로이 새로운 변신을 하면서, 마법의 힘으로 같은 세계에 인도된 모든 존재와 친숙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