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읽는 방법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고 나도 일정 부분 동감하는 바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시를 읽는 방법'은 곧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음
다시 말해서 시를 읽기 위해서는 읽는 방법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걸 버려야 한다는 거지.
특히 한국 현대시를 읽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적절한 설명은 찾지 못하겠다
단순 시론(거창하게 말해서 시론이지만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도 포함이다)을 적용한다고 해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론을 완벽히 적용한 시가 곧 궁극의 시인 것도 아님. 물론 어느 수준에 이르기까지 도움은 되겠지만.
시를 즐기려면 먼저 어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함.
꽃 피는 계절이니 벚꽃을 예로 들면, 우리는 벚꽃을 보거나 상상할 때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임.
누군가는 대학교 새내기 때를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 져서 거리에 너저분한 벚꽃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벚꽃'이라는 단어 자체에서는 무엇을 느낄 수 있나?
시인이 표현하려는 건 '벚꽃'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나 벚꽃에 대한 산문 형식의 감상이 아니라 벚꽃을 보고 느낀 감정 그 자체임.
그렇기 때문에 ex1)벚꽃을 봤다. 막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떠올랐다 라는 문장이 아닌
ex2)거리마다 올가미에 매달린 소년들이 손짓했다 내게는 신발이 없다
같은 문장을 시에서 볼 수 있는 거임
다시 말해서 ex2 같은 구절을 통해 우리가 시를 향유하는 방법은 그 구절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저 구절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작가는 무엇을 느꼈는지를 유추해보는 거지.
그렇기에 시 읽기에서 어감에 주의하는 건,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뎌진 언어 감각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내가 ex2에서 쓴 '올가미'와 '소년'은 서로 대조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이지. 그리고 '내게는 신발이 없다'는 진술은 비일상적인 표현으로, 그런 표현을 쓴 의도와는 별개로 이질감을 느끼게끔 했다.
(왜 이질감이 중요하냐면 그것도 일종의 감, 즉 느낌이기 때문이다. 내가 저 표현을 쓴 목적은 꽃을 보고 들뜬 기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 누군가는 빈곤하던 시절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즉 작가의 목적, 그러니까 관념과 별개로 언어를 통해 어떤 느낌을 전달했다면 그 시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결국 시란 어려운 게 아니고, 색깔을 예로 들자면, 파란색을 보고 시원한 기분, 혹은 우울한 기분을 느낄 줄 아는 이라면, 시 역시 같은 방법을 적용해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파란색을 보고 파란색이 뭔지 해석하려는 사람은 없다!(물론 예술을 향유하려는 사람 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는 걍 느끼는 거야요~ 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