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떠들지만


남자들이 지은 집에서

남자들이 설치한 전기 수도 시설을 이용하며

남자들이 설치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남자들이 개발한 냉장고, TV를 사용하며

남자들이 운전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차별받은 여성'에 대해 떠들고 싶다면


40~60년대생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80~90년대생 여성의 삶을 운운하며 차별을 논한다.



젊은 여성은 사회적 정책적 각종 혜택

여성할당제를 비롯한 여성 전용 정책으로 인해


또래의 20~30 남자들에 비해 좋은 출발선을 차지하고 있다.


 /'20대'대기업 입사자/ /'20대' 고시 합격자/ 등

같은 세대끼리 통계를 내서 비교하면


전혀 20~30 여성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음에도

그들은 통계를 낼 때 40~60대들까지 포함시켜 통계를 낸다.


당연히 40~60대 여성들 중에 정치인, CEO, 고위공직자가 많을 리가 없다.


20~30 여성들은 이 통계만을 가지고 아주 교활한 주장을 한다.

"자, 우리가 이만큼 차별을 받으니 우리에게 이에 상응하는 혜택을 달라!"


차별은 40~60대 여성이 받은 건데, 20~30 여성들은 이 혜택을 자신이 받겠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례는 명절의 경우로 비유할 수도 있다.


아버지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어머니는 힘들게 차례상을 차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냄져들 극혐.' 이라며 속으로 분노가 부글부글 끓지만

정작 자신은 소파에 앉아 TV만 본다.


그러고 나서 저녁에는 아빠가 준 용돈으로 햄버거를 사먹는다.


이게 20대 페미니스트의 본질이다.



그들은 군대도 안 가고, 여성할당제, 여성 전용 정책 등 각종 혜택을 누리는데

"우리는 차별받는 존재입니다! 혜택을 주세요!"라며 집요하게 혜택을 요구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피해의식'이 있어서, 무지의 어둠속에서 피해의식이라는 전등만 켜주면

전등 밑으로 득달같이 달려드는 하루살이 같은 짓을 일삼는다. 


그래서 그들의 '피해의식'을 교묘히 이용해 '미트코인' 장사를 하는 자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l여자라서 힘들어l


이런 주장, 논조를 펼치면 그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런 말을 내뱉은 지식인은 대중적 지식인이 된다.

'감정적 공감'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실상 젊은 여성들이 젊은 남성들에 비해

정책적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게 전혀 아니고


어떤 분야에서는 오히려 강세를 나타내기도 한다라고 말해주면


일견 '이성적'으로는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쩐지

자신에게 유리한 포지션은 될 것 같지 않아서


끝끝내 "우리는 피해받고 차별받는 존재입니다."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뭘 어떻게 바꿀 건가?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사람도 남자

철강을 수출하는 사람도 남자

건설 현장에서 빌딩을 건설하는 사람도 남자

해외여행을 나갈 때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도 남자


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너희들의 그 교활한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데? 군대 하나 못 가서 징징대는 것들이 무슨 세상을 바꿀 건데?"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동경하고 자신들도 강해지길 원하지만

정작 팔굽혀펴기 정자세로 10개도 못할 만큼 나약하다.



나는 페미니스트에게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젊은 여성들아, 너희들은 군대에서 고생하는 또래 청년들,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하는 근로자들의 인권을 위해 힘써라.

너희들은 방학 때면 아빠가 벌어다 준 돈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햄버거와 치킨을 먹으며 포동포동 살을 찌우고 있잖니.

너희들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란다. 체급도 높고. 그러니까 진정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힘써라. 그게 사회의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