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비 딕' (작가정신), 92쪽.


그렇다. 우리는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래서 누워 있는 자세에 싫증이 났고, 조금씩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게 되었다. 우리는 옷을 잘 여미고, 침대 머리판에 등을 기댔다. 네 무릎을 바싹 끌어당겨 서로 모으고, 종지뼈가 따뜻한 침대용 탕파라도 되는 것처럼 그 위에 코를 기울였다. 무척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문 밖이 너무 추웠기 때문에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방에는 불기운이 전혀 없었으니까 사실은 이부자리 바깥도 쌀쌀했다. '더욱 아늑하게' 라는 말을 쓴 것은, 몸의 따뜻함을 즐기려면 몸의 일부가 추워야 하기 때문이고, 이 세상의 모든 특성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고, 오랫동안 그래왔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편안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침대 속에 들어가 있는 퀴퀘그와 나처럼 코끝이나 정수리가 조금 춥다면, 전반적인 의식 속에서는 가장 즐겁고 명백하게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침실에는 난로를 설치하면 안 된다. 침실의 난로는 부자들의 불편한 사치에 불과하다. 담요만으로 바깥 공기의 차가움을 막고 아늑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있어도 북극의 수정 같은 얼음 한복판에서 따뜻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누워 잠들 수 있다.

--
19세기 중반에 나온 소설이 요즘 나온 가장 재미 있는 훌륭한 소설만큼이나 재미 있다. 셰익스피어적 시정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흐믓하고 달콤하게 한다. 거의 요설같이 느껴지는 곁가지들이 내러티브를 일사불란하고 요지부동하게 앞으로 밀어부치는 통일성을 방해한다. 예를 들자면,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적 서술이 무려 14쪽에 달한다. 부분들을 전체에, 독자들을 스토리에 함몰시키지 않는 이런 산만한 구성은 아도르노가 칭찬했을 법한 것이다. 다른 어떤 소설도 인간 아닌 생명체에 이렇게나 집중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럴 것이다. 군데 군데 노트하고 싶은 구절들이 적잖다. 특히 위 문장들에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해왔던 추위와 따뜻함에 대한 생각과 똑같은 생각이 피력되어 있다. 바닥은 뜨거울 정도로 따뜻하고 얼굴께에는 차가운 웃풍이 흘러다녔던 연탄 온돌방, 몸의 앞쪽은 따가울 정도로 따뜻하고 등짝에는 한기가 느껴지는 모닥불 둘레, 또는 '국민'학교 교실의, 도시락들이 층층이 쌓여 있던 연탄 난로 둘레.. 그 따뜻함이 '가장 즐겁고 명백한 따뜻함', '아늑한' 따뜻함이며 그에 비하면 전체가 균일하게 덥혀져 있는 공간의 따뜻함은 밋밋하고 지루한, 그저 '춥지 않은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