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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 감상문 대회 결과 발표읽으러 가기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510400&search_head=130&page=1gall.dcinside.com


이 대회를 열어준 것에 매우 감사하고, 그것을 기념하며 쓴 글입니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SBS뉴스, 「'경제난' 아프간에 영하 30도 강추위…"8일간 70명 사망"」.


아주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은 점심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좋았던 시절만 회상할 뿐입니다.


나라는 있지만, 정작 내 집은 없습니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국가미래연구원.



아니, 갑자기 당신 이력을 늘어놓으며 한탄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하겠지만.


아닙니다.


제 얘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아닙니다.


이것은 절망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이범선 작가의 소설, 『오발탄』의 내용입니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머니투데이, 「'6.25 불발탄' 팔면 돈될까?…엉뚱한 생각했다간 큰일납니다」.



줄거리


주인공 철호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본디 고향에서 땅주인으로 살던 풍족한 사람이었으나, 남북전쟁이 끝난 지금은 그저, 매일 현실과 씨름할 뿐.


계리사. 사자 붙은 직업이지만, 가난뱅이에 불과하다.


나라는 되찾았지만, 정작 집은 잃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은 점심조차 허락하지 않기에, 보리차로 배만 채우는 게 전부.


가족은 힘이 아니라 짐이다.


망가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좋았던 과거에 매몰당해 병적으로 "가자! 가자!"하고 아들에게 외칠 뿐인 어머니.


결혼은 못하고 몸을 팔며 사는 누이.


양심만 버리면 다들 잘 살 수 있다며 공허한 이야기만 하는 동생.


만삭의 아내에겐 해준 것도 없어 앓아누울 뿐이고.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오마이뉴스, 「변호사를 체포한 경찰이 옷을 벗은 이유」.


그러나 현실은 멈추지 않고 계속 해서 철호를 조여온다.


동생은 결국 은행을 털려다 잡혔다.


만삭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 아이가 뱃속에 나오지 않는 바람에 죽었다.


엄마 뱃속의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다 죽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정신이 나간 채 "가자! 가자!" 하고 외칠 뿐.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한국일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 자포자기하게 되는 이유」.



결국 주인공 철호는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고 만다.


누이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생애 마지막 사치를 부리기로 한다.


전부터 하기로 마음 먹었던 충치를 뽑기로 합니다. 두 개 모두 지금 뽑으면 죽는다고 의사가 재차 말리지만, 상관 없다. 뽑아라. 그냥, 즐길 거 즐기고 가자.


결국 자포자기한 채 내 몸의 썩은 것이라도 뽑아버리지만, 치아 빠진 잇몸은 피를 흘리기만 할 뿐.


피가 너무 나서, 생애 마지막 사치인 설렁탕 한 그릇조차 먹지 못한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굿모닝춘천, 「카카오택시 “손님 블랙리스트 없는 것 맞아?”」.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에 택시를 붙잡는다.


그 자신도 어머니처럼 "가자! 가자!" 외칠 뿐, 정신이 나간 채로.


무리하게 뽑은 탓에 피는 계속 흐르고, 자신은 그저 갈길도 모르고 무작정 떠난 택시 안에서 차갑게 식어갈 뿐이다.


그가 떠나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이 나라 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네이트TV, 「탈락석으로 ‘가지마’♪ 포천의 아들 임영웅 아자!| TV CHOSUN 20201029 방송」.


눈물의 오독 방지


작중 어머니가 그토록 "가자! 가자!" 하고 외치던 그 옛날 집은 이북 지역인 데다, 주인공도 어머니와 똑같이 "가자! 가자!'하고 외칠 뿐이라 월북을 권장하는 소설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아니다.


그냥 좋았던 지주로 떵떵거리고 살던 그 시절을 추억할 뿐이다.


막연하게, 다신 오지 않을 좋은 시절 말이다.


작중에서도 북한은 자유도 없고 위험한 곳이라 가족을 데리고 도망나왔다는 언급이 나온다. 좋게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 사는 이 곳에서의 절망이 너무 진하게 드러나 그렇지.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위키백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오발탄을 읽고 이따금 홀로 남겨진 자식, 가장을 잃은 부인, 아들을 잃은 치매노인을 걱정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의지박약으로 인해 가정이 망가졌다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저 아이는 불쌍해서 어쩐다.' 하는 말엔 보통 '책임감 없는 아비 때문에.', '나약한 아비 때문에.' 라는 말이 후렴구처럼 붙는다. 그렇지만 글쎄.


아이의 앞날을 생각하는 게 더 사리에 맞기야 맞지만, 인간적으로 저 상황에서 어떻게 견디나?


솔직히, 그건 부실공사로 무너진 건물에게 너는 왜 무너졌느냐, 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과 진배 다름없지 싶다. 건물 붕괴는 설계, 혹은 뼈대부터 시작해 다 빼먹고도 무거운 거 얹은 놈 잘못이지, 건물 자체가 의지가 있어 '무너져야지ㅋ'하고 무너진 건 아니잖은가.


까놓고 말해 저런 상황에선 오히려 견디는 게 좀 더 이상하지 싶은데?


하기야. 우리 사회가 좀 이상하긴 했다. 저런 비정상적인 인간들 틈바귀에서 절망과 고통을 극복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 청년들에겐 차라리 잘 되었다. 지금 청년들에겐 자식조차 없다. 세상 떠나도 죄책감이 1g도 없을 테니.


어쩌면, 이미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자포자기하고는, 생애 마지막 사치를 즐기는 중일 지도 모른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Cellcast, 「What is a text message?」.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에 꽤나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건 좋지만, 교훈이 없으면 독자들은 두 번은 안 읽는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긴 하지만, 정작 그 저자는 무슨 교훈을 줘야하는 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 옳은 이야기이긴 하다. 실제로 메시지가 분명한 소설이 두 번 이상은 읽힌다고 하니까.


그런데, 진짜 탈출구 없는 서민의 삶을 그리면서 무슨 교훈을 넣어야할까?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을 보답받지 못하는 인생에게 무슨 교훈을 줘야 도움이 될까? 답도 안 되는 어설픈 교훈 쑤셔넣을 바엔 없는 게 낫다. 암만 교훈이 훌륭해봐야,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 흘리는 눈물보다, 같이 "씨%^&*$팔! 이 놈의 세상!"하고 외치는 욕 한 마디보다 값질까.


마찬가지로, 지금 쓰는 이 글도 교훈을 줘야 두 번은 읽히지만, 슬프게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옛날의 사람들도 고난을 모두 이겨내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도 있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등불로 삼아, 자신이 발 붙일 땅을 차지하고 일어서야만 한다.'


하지만, 글쎄. 이런 말로는, 납득이 안 간다, 납득이.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30 Action News, 「Fresno woman hit in the head by stray bullet that fell from sky」.


오발탄의 영제는 Stray Bullet이다. 눈 먼 총알. 그렇다. 이유가 있어 맞은 총알이 아니다. 나 자신을 겨누고 온 불행이 아니다. 그저 재수없게 맞은 총알에 불과하다. 그냥,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맞았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슨 위로가 소용이겠는가? 그냥 맞고 죽었는데.


그래서 아직 안 맞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은 해줄 말이 없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 소설을 읽고 자신과 같다고 느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슬픔과 분노로 가득찬 의문에서 나오는 것이다.


같은 오발탄을 맞은 사람 입에서만.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노팅엄대학, 「New research suggests dying alone is sometimes a choice, not a tragedy」.


눈 먼 총알에 맞고 쓰러져 식어갈 때에,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은 무엇일까?


내가 총알을 견디지 못한 잘못인가?


쏜 놈이 잘못인가? 누구인가?


그런데, 나를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내몬 것은 누구였을까?


누구인가.


나와서 대답해라.


너는 누구냐.


누구냐.




















이범선, 오발탄


문학과지성사


11,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