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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늦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화창한 봄날씨를 뛰어댕기다보니 오줌이 마려웠다. 그래서 산비탈에 기대앉은 동네 도서관으로 꾸역꾸역 올라갔다. 


화장실만 쓰고 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자료실에 들어가봤다. 한적한 서가들을 두리번대다 책 두어권을 골랐다. 

책장과 창문 사이 좁은 통로에  하나 놓인 의자에 눌러앉았다.


그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네버렛미 고'였다. 


나는 이걸 이미 우리말 번역된 걸로 읽었고 영화로도 보았다.


우리말 번역은 흠잡기는 뭣하지만 유려하다고도 볼 수는 없다. 

영화는 훌륭하다. 같은 작가의 남아있는 나날 못지 않게 영화로 잘 표현된 경우다.


도서관에서 내가 찾은 건 자그만 페이퍼백 원서였다. 원서로도 전에 3분의 2정도 읽었으므로 나머지를 읽었다. 

읽다보니 계속 읽었고 결국 다 읽고 자료실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져서 나왔다. 


책을 보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옆의 창문을 내다봤다. 창밖으로 갈색과 녹색의 산비탈이었는데 거기 앙상한 매화나무 한 그루가 박혀 있었다. 지난 겨울이 남긴 눈처럼 흰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있음을 바라보았다. 도서관도 조용했고 바깥도 조용했다. 조용하고 따뜻한 봄이었다.


도서관을 나와서 다시 달리기를 하면서 소설을 되씹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누가 이 소설을 두고 '복제인간'이나 '인간의 정체성'이나 '생명윤리' 같은 주제를 논한다면

뭐 논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걸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면, 그건 오해나 착각일 것이다. 


네버렛미 고는 복제인간을 고민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냥 인간을 고민하는 소설이다. 

내가 인간인지 아닌지 그런 추상적인 고민도 아니고 그냥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 그리고 주어진 죽음을 직면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곧잘 들려오는 불만들, 여기 나오는 클론들은 왜 반항하지 않고 탈출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소설에 대한 오해이고 착각일 수 있다. 

그들이 처한 비극은 그들이 특별한 클론이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보편적인 인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인간이 직면하는 보편적인 죽음을 클론이라는 특별한 극적장치를 통해 강조하고 환기할 뿐이다. 


물론 그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극적이고 극단적인 파국을 마주하지만

사실 우리도 덜 극적이고 덜 극단적으로 보일 뿐, 결국 같은 파국을 마주하고 있다. 


이 소설은 많이 슬프다. 


만약 당신이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누가 내다버린 똥개 한 마리가 당신의 유일한 벗이 되었다고 치자.

처음엔 그 개가 못생기고 더러워서 별로였지만 결국 당신은 그 개를 사랑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번지르르한 친구, 애인, 가족이나 비싼 애완견에 비할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당신에겐 그 개 한 마리 뿐이었다.

근데 그 개마저도 결국 빼앗긴다.  


사는 게 그렇다.

남들보다 못가지고 못나고 재수도 없어서 맨날 내 삶을 타인과 비교하며 시원찮아했는데

어느날 문득 돌아보면 그 시원찮은 삶의 흔적들이 애틋하다. 사랑했던 거다. 그리고 결국 그것마저 빼앗기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인간들과 비교해 보면

아주 가혹하고 제한된 삶을 부여받았다. 근데 그 작은 삶에서도 그들은 소중한 걸 찾아내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보물처럼 간직하게 된다. 그래서 슬픈 거다. 그들이 불쌍한 삶을 살아서 슬픈 게 아니라 그들이 그 불쌍한 삶을 사랑하게 되어서 슬픈거다. 근데 또 그것마저 뺏기니까 슬픈 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은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시종 창밖을 내다보듯 감정의 거리를 지키면서 표현한다. 

그게 쿨해보이려고 그런 게 아니다. 그는 문학적인 허세가 거의 없다. 스타일을 이루려는 인위적인 애씀 같은 것도 없고 수수하고 담담한 수기처럼 써 나간다. 

화자나 다른 주인공들은 감정이 결핍되어서 아님 상황인식이 결핍되어서 아님 유난히 강하거나 혹은 유난히 수동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력한다. 그들의 절제는 그들의 노력이다. 혹은 발악이다. 그 발악의 끝에서 그들은 무너진다. 

동시에 인물들의 사소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잘 이해하고 그 디테일에 닿아있는 이 소설은 자연스럽다. 진정한 재능이란 화려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동네를 뛰어댕기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눈앞을 스치는 낯선 얼굴들과 다양한 표정들을 관찰했다. 해가 저물고 짙은 남색의 도시에 희고 노란 불빛들이 켜졌다. 역시 불빛을 번쩍이는 차들이 도로를 질주했다. 걔들이 토한 매연이 섞인 깨끗하지 않는 공기를 나는 맛있게 들이마시며 뛰어댕겼다. 나는 알았다. 언젠가는 이 불순한 공기조차 맛보지 못할 걸. 이것마저도 빼앗기게 되리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