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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밤 끝으로의 여행」을 읽었다. 소설의 유명세 때문에 이 책을 집었다. '여행'이라는 제목에 기대를 많이 품었다. 주인공의 여로를 따라가며 배울 것들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내 기대가 상당히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들이자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됐으니 말이다.
「밤 끝으로의 여행」은 내게 특별한 경험들을 선사했다. 우선 「밤 끝으로의 여행」은 고풍스러운 문장들에 취해 있던 나의 뺨을 후려쳤다. 바르다뮈가 마들롱의 뺨을 갈겼듯이 말이다. 세상은 가급적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은연중에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목도하는 세계도 아름다운 면이 희귀하며, 우리가 직접 쓰는 언어도 고전 소설 속의 기품 있는 언어가 아닌데,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문체 면에서 「밤 끝으로의 여행」은, 저자 셀린이 즐겨 쓰는 '똥덩어리'라는 표현의 냄새처럼, 불쾌하지만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좋건 싫건 길의 악취를 맡게 되듯이, 좋건 싫건 인생의 어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문체로써 주는 느낌이었다.
둘째로 「밤 끝으로의 여행」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고결할까? 우리의 삶이 지향하는 것은 꿈이지만, 우리의 삶의 동력원은 돈이다. 돈을 좇다가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꿈이 아니라 쾌락이다. 이렇듯 삶의 근본을 생각했을 때, 우리의 꿈이라는 것도 사실 돈과 쾌락에 대한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차용한 포장지인 것은 아닐까? 환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요 근래 많이 보이듯이. 그렇다면 서로 자기네 꿈이 더 옳다고 우기는 싸움이야말로 로뱅송과 마들롱의 싸움처럼 추한 싸움일 것이다.
셋째로 「밤 끝으로의 여행」은 세상의 어둠을 낱낱이 폭로한다. 「밤 끝으로의 여행」은 슬프게도 자전적인 소설이다. 사람이 마땅한 동기 없이 전쟁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그 자신이 아닌 노동력으로 환산되어 취급되는 세상이,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살았던 세계이다. 그리고 이 어두운 세계는 「밤 끝으로의 여행」이 출판된 후 십 년이 넘어 두 번째 세계 대전을 통해 확고히 입증됐다. 이렇게 보면 애초에 사람이 짐승들에 비해 품위 있는 존재라는 믿음도 기만이다. 사람은 단지 짐승들보다 영악해서 자신의 행위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재주를 갖고 있을 뿐이다.
「밤 끝으로의 여행」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문장들로 이것들을 인용할 수 있겠다. "우리는 여로의 끝에 함께 도달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찾아서 그토록 모험을 겪으며 그곳에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삶이란 바로 그것, 어둠 속으로 잦아드는 한 줄기 빛일 뿐이다. 그 다음 아마 영영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아무것도 발견치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죽음이다." "삶이란 숱한 거짓말로 불룩하게 채워진 하나의 광증일 뿐, 따라서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그리하여 그만큼 더 많은 거짓말을 그 속에 넣을 수 있으면 사람은 만족스러워하는 법,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정당한 일이다. 진실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슬프게도 나는 셀린이 바르다뮈의 명의로 내놓은 결론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실제로 겪었던 문제를,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을 차별하며 반복할 뻔했던 역사를, 내가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깨진 지 오래이다. 「밤 끝으로의 여행」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내심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다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울적해진다. 어두운 면이 있더라도 애착을 버릴 수 없는 이 세계와, 그 위의 나의 삶이, 결국 내 믿음과 상관없이 헛된 것이라면 나는 그간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을 길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상을 뒤집는 방도나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바르다뮈는 그따위 세상에서도 하루하루 살았다. 「밤 끝으로의 여행」 중 누구도 자살하지 않았다. 분명 우리 생을 감싸고 있는 밤의 끝에는 아무 희망도 없이 죽음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까지 걸어가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 여행이 헛된 것이라도, 완주한 여행과 중간에 포기한 여행은 엄연히 다르다. 또 그렇게 고된 길을 걷다 보면 절대 깨지 않을 꿈을 뒤늦게나마 발견할지도 모른다. 결국 로뱅송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았듯이, 그리고 결국 바리톤이 새로운 이상을 품고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듯이.
「밤 끝으로의 여행」에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알시드나 몰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의미한 고행을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덕에 우리가 그나마 수월하게 살고 있다. 세상이 이런 사람들로 가득할 수만 있다면, 이상도 헛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밤 끝으로의 여행」은 세상의 밝은 면을 부정해도 사랑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할 뿐이다.
이제 「밤 끝으로의 여행」을 덮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 소설은 문제작이다. 다만 우리네 삶 자체가 커다란 문제이기에, 나는 「밤 끝으로의 여행」이라는 작은 문제로 인생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가늠이나마 할 수 있게 됨에 감사하다. 나는 아직은 사람과 세상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내 주변에 알시드와 몰리가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밤 끝으로의 여행」 덕분에 세상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며 허구를 구분하는 안목을 길렀으니, 이것으로 나는 처음에 품은 기대처럼 충분히 배웠다. 이제 앞으로 어떤 태도로 세상을 대할지는 다른 책들이 가르쳐 주리라.
난 셀린이 이런 글 쓰고 이런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의사 본분에 철저했다는 게 참 묘했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셀린은 훌륭한 작가지. 글잘읽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