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물고기가 섹스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원래 물고기들은 체외수정을 한다. 섹스를 할 필요도, 섹스를 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떤 일부 물고기 종은 체내수정을 한다. 급속도로 소통이 필요해진다. 급하다. 남녀가 어떻게 한마디 대화도 없이 진도를 빼겠는가! 그런데 물고기는 떼를 지어 산다. “너와 섹스하고 싶다” 라는 말을 온동네 사람들이 다 듣는다. 멋진 암컷은 모든 수컷의 욕망이요. 쇼타군이 육덕녀에게 구애를 하는 순간, 주위의 금태양들은 그 즉시 NTR을 준비한다. 쇼타군! 어떻게 할 것인가!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오네쇼타 물고기를 포함, 광범위한 생물계의 소통 방식을 쉽고 재밌게 소개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도발적인 요약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물들의 실제 생태는 저자의 요약보다도 훨씬 더 자극적이다. 암컷의 바람을 막기 위해 좆을 꽂은 채 자살해버리는 거미, 암컷의 성기를 아에 막아버리는 물고기, 벌에게 포르노를 제공하는 꽃, 암흑 속에서 번식의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좆이 닿기만 하면 그냥 정액을 묻혀버리는 심해어. 멋드러진 집을 짓고 금싸라기 땅을 차지한 채 능력을 과시하는 새와 개구리는 물론, 남의 둥지에 알싸튀를 시전하는 뻐꾸기도 있다. 생물들의 상호작용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다. 단세포 생물의 압력 감지 능력부터, 식물과 버섯의 화학 신호 체계를 지나 여러 동물들의 시청각 및 운동 패턴까지. 광범위한 사례들의 나열을 읽고 있으면 깜찍한 어트랙션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아 즐겁다.
거미는 시각 패턴과 화학 물질을 활용해 먹잇감을 유인하고, 가리비는 포식자의 신호를 감지하고 껍질의 두께를 늘린다. 식물이 특정 곤충의 소리 주파수만을 구분하고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자연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을 뿐, 단순 운동 패턴 외에도 수많은 화학적, 시각적, 청각적 온갖 구체적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작용한다.
토끼의 소통 방법 역시 인상적이다. 토끼는 똥의 냄새로 다른 토끼의 정보를 파악한다. 그래서 토끼들의 공동변소는 소통의 창구다. 이 변소의 밀집도를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토끼의 생태가 인간과 똑같이 시골에서는 집단화, 도시에서는 개인화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시골은 영토가 넓어 집단 생활이 필수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좋은 영토가 드물다. 이는 영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토끼들을 고립, 개인화시킨다. 나 혼자 쓰기는 너무 벅찬 시골과 나 혼자 쓰기도 비좁은 도시의 생활상이다. 똥오줌으로 소통하는 동물은 토끼 외에도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이야기를 다룬 <꼬리>의 주인공, 왕대 “꼬리”는 그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며 똥오줌을 뿌려 이곳이 자신의 영토임을 경고하는 동시에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꼬리는 매번 자기 똥오줌 위에 새로운 똥오줌을 덮어씌우는 젊은 수컷 호랑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똥오줌을 갈기는 동물들은 그 냄새를 누가 맡게 될 것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소통하는 생물들은 신호를 던졌을 때, 그것을 수신할 수 있는 수용체를 지닌 존재를 특정한다. 발신자가 정보를 신호로 압축하여 발신하고, 상대방이 신호를 수신하여 데이터를 해석하고 정보를 취득하는 일련의 물질적 과정이 이루어진다. 아무리 논리정연하고 가치있는 정보라도 신호가 수신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소음 데이터일 뿐이다. 예컨대 새의 어떤 울음소리는 하나의 신호로써, 포식자가 나타났으니 빨리 도망가라는 정보를 담고 있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 구애의 신호를 던지면 섹스도 못 해보고 다 같이 죽는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올바른 신호 체계를 사용해야 한다. 당장 배를 굶는 사람에게 지금 이 옷을 사라고 논리적으로 설득이라도 할 일인가? 올바른 신호의 전달과 수용. 고요한 숲 속에서는 먹고 먹히고 공생하며 거대한 순환을 이루는 생물들의 이야기가 공명한다. 공명.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가 소통의 첫걸음이다.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인간의 언어는 고차원적인 신호체계이다. 언어는 그 자체로 정보라기 보다는 신호에 가깝다. 정보는 그 신호에 담긴 무언가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이유가 있다. 이야기는 인간이 삶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형식이라는 로버트 맥키의 말이 생각난다.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가장 고전적인 신호 체계인 것이다. 이 경우 문학은 하나의 응집된 신호 체계다. 신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데이터는 수용되지 않고 정보로 해석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해석의 첫걸음은 작품 전체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내용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긍정. 어떤 작품은 해석이라는 말을 쓰기 창피할 정도로 직관적이지만 어떤 작품은 너무나 난해하다. 독자는 오리 너구리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과학자의 심정으로 문학을 대해야 한다. 한편 누군가에게 오리 너구리란 그저 신기하고 귀여운 동물에 불과할 수 있다. 어찌됬건 오리 너구리는 자신의 삶을 산다.
오네쇼타 물고기는 어떻게 됬냐고? 덩치 좋은 암컷에게 구애를 하다 금태양한테 들키면 금새 작은 암컷에게 눈을 돌려 경쟁을 피한다. 10의 여자에게서 7의 여자로, 아니 5, 3의 여자에게로 눈을 낮춰 버린다. <꼬리>에서 읽은 시베리아 호랑이들의 강력한 서열 다툼이 떠오른다. 왕대 꼬리는 늙어 죽어가면서도 그 지역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암컷과 함께 신혼을 즐겼다. 오네쇼타 물고기의 삶이 꼭 최선은 아닌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