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과제로 냈던 글인데 지금 보니까 어설프네

올해 목표가 글쓰기 실력 키우기인데
자유롭게 평 남겨주시면 감사히 읽어보겠읍니다


불완전해서 더 아픈 증언문학, 한중록



업적이 위대해도 인생은 기구한 왕들이 있다. 조선시대에서 한 명만꼽으라면 정조를 고르겠다. 아버지는 뒤주에 갇혀 죽고 사랑하는 여인은 자식 셋과 단명했다. 정조는 일반인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살 수 없는 굴곡진 인생을 외롭게도 걸어갔다. 그런데 한중록을 읽어보니,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인생도 만만치가않다.

보통 한중록은 ‘한가할 한’ 이라고해석한다. 할 일 없을 때 쓴 기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과연 그러한가? 읽으면 읽을수록 그저 소일거리로 쓴 글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한’이제발 내 얘기를 들어달라며 다음장으로 넘어가는 시선을 붙잡는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켜켜이 쌓인한이 때로는 지나가는 넋두리처럼, 때로는 오열하듯이 풀어진다. 한중록은한가하게 쓴 글이 아니라 한을 토해내는 글이다.

한중록을 읽으면서 증언 문학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증언 문학은 역사에드러나지 않는 삶의 미시적인 단면을 글로서 증언한다. 수용소 문학이 대표적이다. 수용소에서 어떤 고초를 겪었고 어떻게 생존했는지, 글로서 다시금증언하고 치유한다. 빅터 프랭클이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그 끔찍한 시기를 증언했듯이 혜경궁 홍씨는궁에서의 생활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한중록은 수용소문학과 달리 반쪽자리 증언문학이다.

한중록이 반쪽자리 증언문학에 불과한 것은 그녀가 왕후로서 여전히 왕실 질서 안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용소 생존자가 나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듯 영조나 왕실 인물을 비난할 수 없었다. 본인이 몸 담그고 있는 질서를 거스르는 발언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말하고싶지만 말할 수 없으니 이만 줄이겠다는 구절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이다. 권력 다툼에 아스러진 친정에대한 슬픔, 이를 주도한 대신들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쏟아낼 수도 없다. 생생한 분노를 납작하게 누르고 희석시켜 가장 완곡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그녀의 서술은 엄중한 검열 아래 놓인다.

뿐만 아니라, 혜경궁 홍씨는 온전한 피해자라고 보기 어렵다. 그녀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느닷없는 피바람에 일조하기도, 모른 척하기도했다.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이 한 치의 잘못도 없었던 것과 달리 혜경궁 홍씨는 완전무결한 피해자가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중록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된다. 자기연민이나 피해의식이 실제 사건을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몇백년이지나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본래 글쓰기는 치유하는 효과를 가진다. 트라우마나 원한이 있다면 더욱그렇다. 얼마나 두려웠고 억울한지 쓰는 것만으로 단단히 똬리를 튼 감정이 느슨해진다. 증언문학이 트라우마를 미약하게 나마 치유해준다고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왕실에서는 이런 글을 쓸 수가 없다. 궁인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혼자 쓰는 일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응어리진 감정을 검열이라는 깔때기에 살살 부어낼 수 있을 뿐이다. 작고가벼운 감정은 글로 빠져나가지만, 무겁고 모난 돌덩이는 깔때기에 걸려 마음벽을 사방으로 할퀴어 댄다. 각 권을 끝마침 하는 문장에서 미처 덜어내지 못한 돌덩이의 무게가 느껴진다.‘하늘을 우러러 흐느끼며, 타고난 팔자를 한탄할 뿐이 로다 (3권)’, ‘밤낮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빌 뿐이다 (5권)’, ‘이 일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피를 토할 만한 한이 로다(6권).’ 글을 쓰며 삼켜온 감정이 살뜰히 응축되어 마지막한마디로 폭발한다. 그녀가 얼마나 무거운 한을 짊어지고 살았는지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온전하지 못한 그녀의 증언은 안타까움에 깊이를 더한다. 때로는절제된 표현이 마음을 자극하듯이, 표현되지 못하고 도려내어진 구석이 더욱 마음 아프다. 고상한 궁중 예절에 평생을 맞춰 살았더라도 영조를 향해서라면 시원하게 쌍욕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가 한중록이었음이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가남긴 어정쩡한 공백을 대신해서라도 채워본다. 드라마 작가가 된 것 마냥 짧게 줄여진 원망이 길게 펼쳐진모습을 상상한다. 그녀의 본심은 육두문자 그 이상이 난무하는 전쟁터였을 것이다.  

한중록은 그레이트 북스다. 가끔 나열하는 부분이 피로하게 느껴지지만가독성이 훌륭하며, 곳곳에서 감정적인 몰입을 끌어낸다. 특히어린 시절 입궁하기 전 엄마 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는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된 여자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눈물로 잠드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후에 따라오는 묘사도 마찬가지다. 궁에서의 외로운 삶이 완벽한 재현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무게로 다가온다. 여기에자연스러운 구어체가 더해져 왕실 어른의 엄중한 목소리보다 친척 어른의 솔직함이 묻어나오고 있다. 결국한중록은 반쪽자리 증언문학이라 더 아프고 생동감 있는 일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