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제목 : 모비딕
저자 : 허먼 멜빌
출판사 : 작가정신
읽게 된 배경 : 뭔가 유명한 책이라서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P.31
어느 심술 사나운 늙은 선장이 나에게 비를 들고 갑판을 청소하라고 명령한다 해서,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신약성서를 저울에 달아보았을 때, 그게 얼마나 큰 모욕이 된다는 것인가? 내가 그 늙은 선장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른다고 해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를 조금이라도 멸시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혹사하고 부려먹어도, 아무리 쥐어박고 후려갈겨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ㅡ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관점에서든 정신적인 관점에서든ㅡ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서로 돌아가면서 때리고 맞는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어깨뼈를 문질러주면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P.35~36
거듭 말하지만, 나는 언제나 선원으로서 바다에 나간다.
선원은 반드시 수고한 데 따라서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객으로 배를 탄 사람이 한 푼이라도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승객은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 돈을 내는 것과 받는 것은 천지 차이다.
돈을 내는 행위는 과수원의 두 도둑이 우리에게 물려준 괴로움 중에서도 아마 가장 불쾌한 괴로움일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받는 것'ㅡ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파멸에 내맡기고 있는가! P.35~36
무지는 두려움의 아버지다. P.57
오! 죽은 이들을 초록빛 풀 밑에 묻는 사람들, 꽃 사이에 서서 "여기, 바로 이곳에 내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쓸쓸함을 알지 못한다.
검은 테를 두른 저 대리석 밑에는 한 줌의 재도 들어 있지 않으니, 그 공허는 얼마나 쓰라린가!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하는 저 비문 속에는 얼마나 큰 절망이 숨어 있는가! 객사하여 무덤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거부하고 모든 신앙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 속에는 얼마나 지독한 허무감과 자발적인 불신앙이 담겨 있는가! 저 명판들은 여기보다는 오히려 엘레판타 동굴 속에 세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P.75~76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인구조사에 포함된 적이 있는가. 죽은 자들은 굿윈 사주의 모래알보다 많은 비밀을 알고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속담이 세계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제 저승으로 떠난 사람의 이름 앞에는 그토록 의미심장하고 불신앙적인 낱말을 덧붙이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 인도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낱말을 붙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명보험회사는 무엇 때문에 불멸의 인간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인가. 6천 년 전에 죽은 그 옛날의 아담은 아직도 꼼짝하지 못하고 영원히 마비된 채 얼마나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혼수상태 속에 누워 있는가.
우리는 죽은 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 속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침묵시키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덤 속에서 노크 소리가 난다는 소문만으로도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모든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하지만 신앙은 자칼처럼 무덤들 사이에서 먹이를 찾고, 이런 죽음의 회의 속에서도 가장 활기찬 희망을 주어 모은다. P.76
그래, 이슈메일, 너도 저런 운명을 당할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든 나는 다시 쾌활해졌다. 이건 어서 배를 타라는 유쾌한 권유, 출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래, 내가 탄 보트에 구멍이 뚫리면 나는 불멸의 존재로 출세하는 셈이지. 그래, 고래잡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아차! 하는 순간에 인간을 영원의 세계로 처넣고 마니까.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우리는 이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매우 잘못 생각해온 것 같아. 여기 지구상에서 소위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정한 실체인지도 몰라.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 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뿐인 지도 몰라. 원하는 사람은 내 몸뚱이를 가져가도 좋다. 맘대로 가져가. 이건 내가 아니니까. 그러니, 낸터컷을 위해 만세 삼창! 구멍 뚫린 보트, 구멍 뚫린 몸뚱이는 언제든지 올 테면 와라. 하지만 주피터라 할지라도 내 영혼에 구멍을 뚫을 수는 없으리라. P.76~77
천사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아, 고귀한 배여! 나아가라. 나아가라. 키를 단단히 잡아라. 보라!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오니, 구름은 소용돌이치며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곧 더없이 화창한 하늘이 펼쳐지리라." P.81
눈을 감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느낄 수 없다.
우리의 육체적 부분에서는 빛이 더 맞지만,
실은 어둠이야말로 우리 실체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 같다. P.100
나는 그 사나운 공기를 얼마나 깊이 들이마셨던가! 노예의 발꿈치와 말발굽이 남긴 자국으로 뒤덮인 그 평범한 도로를, 온통 도로로 뒤덮인 육지를 나는 얼마나 경멸했던가! 그 때문에 나는 육지에 등을 돌리고, 어떤 기록도 허용하지 않는 바다의 관대함을 찬미하게 되었다. P.107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P.107
'더욱 아늑하게'라는 말을 쓴 것은, 몸의 따뜻함을 즐기려면 몸의 일부가 추워야 하기 때문이고, 이 세상의 모든 특성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고, 오랫동안 그래왔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편안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P.99~100
이 벌거벗은 낸터컷 사람들, 이 바다의 은자들은 바다의 개미탑에서 기어 나와, 그들 모두가 알렉산더 대왕인 양 바다 세계를 침략하고 정복하여, 해적 같은 세 열강이 폴란드를 분할했던 것처럼,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을 나누어 가졌다.
미국은 텍사스에다 멕시코를 보태고, 캐나다 위에 쿠바를 얹어도 좋다. 영국은 인도를 몽땅 삼키고, 불타는 깃발을 태양에 매달아도 좋다. 하지만 이 지구의 3분의 2는 낸터컷 사람들의 것이다. 바다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들이 제국을 소유하듯 그들은 바다를 소유한다. 다른 뱃사람들은 그 바다를 지나갈 권리밖에 없다. 상선들은 다리의 연장이고, 군함들은 바다에 떠 있는 요새 일 뿐이다. 노상강도들이 길을 따라다니듯 바다를 따라다니는 해적선이나 사략선조차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육지의 파편인 다른 배를 약탈할 뿐, 바닥이 없는 깊은 바다에서 생활의 양식을 끌어내려 하지는 않는다.
낸터컷 사람들만이 '배를 바다에 띄우고' 바다를 자신의 농장처럼 경작한다. '그곳'에 그들의 집이 있고 '그곳'에 그들의 일터가 있다. ... 육지를 모르는 갈매기는 해가 지면 날개를 접고 파도 사이에서 흔들리며 잠들듯, 낸터컷 사람들은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이 오면 돛을 감아올리고 누워서 쉰다.
그들의 베개 바로 밑을 바다코끼리와 고래가 떼를 지어 지나간다. P.112~113
고귀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한 배! 고귀한 것들은 모두 그런 기미를 띠고 있는 법이다. P.120
비극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병적인 우울함을 통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야망을 품은 젊은이들이여, 명심하라. 모든 인간의 위대함이란 병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P.128
긴 밤에는 그가 침대 위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뻣뻣한 편견도, 사랑이 일단 솟아나 그 편견을 구부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부드러워지는가. 지금 나는 퀴퀘크가 비록 침대 속이라 해도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그때 그는 가정의 평온한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P.100
거칠고 사나운 대서양의 추운 겨울밤, 내 발은 젖었고 재킷은 더 많이 젖었지만, 그때는 피난할 수 있는 유쾌한 항구가 앞길에 많이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들판과 골짜기는 영원히 푸르러서, 봄에 돋아난 풀이 발에 밟히지 않고 시들지도 않은 채 한여름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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