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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단히 스포잇서요)
<앨저넌에게 꽃을> 읽고 쓰는 경가보고서
<앨저넌에게 꼬츨>이라눈 소설은 첨부터 갱장히 재밋다 주인공인 찰리 고든의 말을 빌리자면 (재 생각이 아님니다) 저능한 성인이면서도 일꼬 쓰눈 버블 배우고 시퍼하죠 근데 이 시쟉부분이 아주 재밋꼬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무네 손에서 채글 때기란 쉽지 안흔 일이다
찰리 고든은 또또캐지고 시퍼하는데 왜냐면 따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십기 때무니고 그는 따른 사람들이 자기를 조와햇으면 하는 편범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키 때무네 그눈 한번의 수술로 또또캐질수 있는 시럼에 참가하게 됨다
그리고 강려칸 상대이자 수술선배 앨저넌을 만나꼬 (아 참고로 마라자면 앨저넌은 사람이 아니라 찍찍 쥐 하이얀 쥐다) 미로 찾기 데결에서 번버니 진다 하지만 수수리 잘돼꼬 찰리 고든이 열씨미 하는 바라메 드뎌 앨저넌을 이긴다
어 그걸 머라고 햇더라? 글쓰는 말투? 잇어보이게 하는 말이 잇엇눈데 머였더라? 암튼 수수리 잘되고 똑또케 지면서 생각이랑 글도 바뀌게 되는데 그게 아주 재밋는 점이다
수술 경과보고서
소설은 찰리의 경과보고서로 이루어져 있고 '나'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이 얘기인 즉슨 찰리의 심리묘사가 작품의 주를 이루게 될거란 얘깁니다.
찰리는 수술의 성공으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있고 곧 표현할 수 있게 되지만, 똑똑해지는 일은 찰리 고든에게 오히려 불행한 일인 듯 보이는데 곧 자신을 마주하는 세계의 실체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찰리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웃는 일이 자신을 좋아해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똑똑해진 찰리 고든을 기다리는 건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거나 골리면서 재미보며 모멸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 1단의 분노에 더해 2단의 분노, 철저히 실험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처지에 분노하죠. 그리고 실험 실패 뒤의 운명에 대해서도 듣게 됩니다. 앨저넌은 부패방지를 위해 냉동고에 넣어졌다 다른 실험객체들과 함께 소각될 운명이었고 찰리는 다시 보호소로 돌아갈 운명이었으며, 그는 이 사실에 치를 떱니다.
과거엔 바보여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고 현재는 실험대상으로서 실험의 객체일 뿐이지 그 어느 시점에서도 그가 온전한 인간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는 분노합니다. 앨저넌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 콧바람을 쐬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서요.
제발... 제발... 일꼬 쓰는 법을 이저버리지 안캐 해주세요....
찰리 고든은 과거에 자기가 어떤 존재였는지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단 사실을 확인해야만 했으며, 그 사실이 인정될 때에서야 비로소 그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과도 화해하는 일 역시 절실했습니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요. 그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도 순탄치는 않습니다. 과거를 다시 밝히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세상에 드무니까요. 특히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에 대해서는요.
하지만, 그는 이제 시간이 없음을 알아챕니다. 앨저넌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는 실험의 하자에 대해 밝히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향상된 지능은 향상된 수치에 정확히 비례하는 속도로 저하된다.
그에겐 시간이 없었고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가족을 만나러 가야만 합니다. 그에게 다시 자기 자신이 꾸릴 수 있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직 정해진 미래뿐이었죠. 그렇게 미래는 닫혀버리고 그에게 남은 건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뿐이었습니다. 분노할건가 용서할건가?
찰리는 가끔 몇 분 동안 정신이 돌아오는 치매상태의 엄마와 여동생 노마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는 복수를 감행해 소설장르를 바꾸는 선택보단 당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찰리는 울면서 집을 나옵니다.
그리고 그 집에 항상 남부끄러워 집안에만 갇혀있어야만 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이 물끄러미 자기를 쳐다보는 걸 느낍니다. 그는 드디어 과거의 찰리 고든을 과거에 묻습니다. 그가 나아갈 곳은 이제 현재 뿐인거죠.
그는 과거 엄마의 학대에 자신과 여자 사이에 커다란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최초로 똑똑해지고 싶다는 그의 꿈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저능한 성인들을 위한 교육원의 교사 앨리스 키니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똑똑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찰리에게 그런 수술실험이 있다고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찰리는 드디어 과거의 억압을 이겨내고 앨리스와 사랑을 나누는데 성공하며 세상을 이루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찰리 고든 짓을 저질러버렸네.
찰리에겐 점점 더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찰리는 세상과 화해를 할 차례입니다. 그 화해는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찰리 고든은 점점 다시 원래 모습으로 점점 돌아가는 와중에 절망을 느껴 앨리스도 쫓아내고 타인의 도움도 원치 않습니다. 거의 원래대로 돌아간 시점엔 사정해 자기가 쫓겨난 빵가게에서 다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점원이 찰리를 괴롭히죠.
찰리는 그 괴롭힘에 정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울면서 바지에 똥을 싸게 댑니다. 횡령을 저지르고 찰리에게 경고를 받은 짐피, 그리고 찰리를 놀리던 프랭크와 조도 찰리의 편을 들고 새로운 직원을 자르자고 사장에게 강권하죠.
하지만, 찰리는 그를 용서합니다. 왜냐면 그는 처자식도 있을 뿐만 아니라 빵가게에서 쫓겨나는 일은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그는 말합니다,
칭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이리다....
하지만 이 점들이 의미심장합니다. 프랭크, 조는 가장 신나게 찰리를 놀려먹던 놈들이고, 찰리가 똑똑해지자 짐피와 더불어 찰리를 시기해 쫓아낸 장본인들이었거든요. 그들과 찰리 사이에서 친구관계가 유지된다는건 곧 찰리에 대한 모멸이 이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찰리는 키니언 선생님(애정의 대상인 앨리스에서 다시 키니언 선생님으로 호칭이 바뀌는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의 수업에 한동안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먹고 수업에 들어갑니다.
찰리의 퇴화진행을 아는 앨리스는 찰리에게 그동안 어디에 있었냐고 묻지만 찰리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깜빡하고 공부하는 책을 안가져왔다고 하죠. 앨리스는 찰리의 망각을 알아채곤 몰려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울면서 뛰쳐나갑니다. 그리고 찰리는 앨리스와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한 채 말합니다.
이런 찰리 고든 짓을 저질러버렸네.
저는 찰리 고든이 가족과는 화해를 했을지언정 세계와는 화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간 찰리 고든에게 친구란 그저 자신이 웃음거리가 됐을 때만, 그리고 그 자신은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칭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도요.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이 ‘찰리 고든’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찰리 고든 짓’은 그의 주변사람들이 바보같은 짓을 했을 때 놀리던 말이었습니다. 찰리는 자신이 저능하다는 인식에 더해 이제 그 말의 뜻을 압니다. 그는 스스로 놀림감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짐덩어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불편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은연중엔 그는 여전히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리란 사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떠납니다. 빵가게를, 그리고 앨리스의 성인교육원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보호소로요.
하지만 그곳엔 희망도 없고 살아 있단 느낌도 없습니다. 단지 하루하루 살아갈뿐. 찰리 고든은 그곳이 그런 곳임을 알면서도 자@청합니다. 그는 거기서 너 예전에 천재였다며? 조롱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힌두어를 까먹은 사실도, 책을 까먹은 사실을 질책받지도 않을 겁니다. 그는 세계에 자기 자신이 발붙일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찰리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보단 천적을 만난 아르마딜로처럼 잔뜩 움츠립니다.
그야말로 비극적인 엔딩입니다. 시발
혹시 기해가 있으면 딧마당에 있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좀 놓아주세요
앞서 말했듯이 앨저넌의 상태이상은 그의 무가치를 의미합니다. 시체부패를 지연시키기 위해 냉동고에, 그리고 수많은 실패 사례들과 함께 소각로에서 태워질 운명입니다만, 찰리 고든은 자신의 한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동지의식을 갖게 했던 친구로서 그가 죽자 무덤에 매장해줍니다.
그리고 꽃을 놓아주죠. 이건 단순한 전우에 대한 애정 그 이상의 무언가, 항상 무언가의 도구로서, 객체로서 다루어질뿐 존재 그 자체로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이자 경외의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앨저넌에서 찰리 고든에게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찰리 고든이 원했던 것은 그저 작디작은 소망,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고 자기도 사람들을 좋아하는, 단지 자기를 인간으로 받아들여달란 작디작은 밤양갱 뿐이었는데, 그 작디작은 밤양갱을 손에 넣기란 왜 이리 먼 세계 얘기같은지...
사람들은 자신의 밤양갱을 알아주지 않는단 이유로 투정하고 노래 부르기도 하지만 세계엔 자기의 밤양갱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무엇이라 주장할 수도 없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우리 주변에 늘 살아 숨쉬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는 보이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분명 무언가를 꿈꾸고 있을 거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들만의 밤양갱을 노래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얘기하고 있을겁니다.
운좋게도 기해가 된다면 꼿을 좀 놓아줍시다. 그리고 밤양갱을 놓아줍시다. 내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만큼 몽땅 말입니다.
<앨저넌에게 꽃을> 이란 작품은 누가 조각칼로 내 마음을 포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고 가슴을 저미는 그러면서도 책을 덮으면 지독하게도 찝찝한 작품입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고든이 행운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기던 토끼발을 안은 보름달만이 어두운 하늘을 밝게 비추는 모순적이고 야속한 밤입니다.
존나슬픔 그냥 보는내내 광광 우럿다
ㅋㅋㅋ ㅊㅊ - dc App
잘 썼다... 방금 완독했는데 넘 슬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