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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는 퍽 인상이 깊은 책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라는 혹하는 소재, 그것도 다 늙은 왕대 "꼬리"라는 주인공,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호랑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 굶주림으로 인해 생태의 문제가 생사의 문제로 귀결되는 동물의 삶, 짐승도 인간도 피할 수 없는 현실과의 사투, 그 속에서 현현하는 호랑이의 지혜로운 본능과 발악. 꼬리의 서사는 깊은 산 속에 내리는 눈처럼 처연하게 쌓이고 다만 커다란 발자국을 내리 찍어놓는다. 독자는 그 흔적을 읽어가며 고요한 숲속에 홀로 앉아 아득해지는 기분을 받는다.


호랑이와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저자의 한탄처럼, 호랑이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꼬리가 남긴 흔적들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혼자 다시 써본다. 시베리아 호랑이, 멧돼지, 사슴, 독수리, 까마귀, 족제비, 들개, 곤충과 풀꽃들, 그리고 인간들까지. 자연이라는 생물들의 삶의 터전을 관념의 언어로 표현한다. 관념은 인간의 언어, <꼬리> 속 자연은 환경도, 종도, 개체도 하나의 인격체처럼 묘사된다. 인간 박수용이 가진 관념을 통해 번역된 꼬리의 삶은 마치 우리네 삶처럼 다가온다. <꼬리> 꼬리에게 연민을 품은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그 이야기의 한복판에서 저자는 꼬리와 만난다.


달빛이 내리쬐는 숲속의 밤, 호랑이가 남긴 흔적을 살피던 도중 서늘한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린다.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가 눈앞에 서 있다. 둘 사이의 거리는 겨우 몇 발자국. 호랑이가 내뿜는 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저자는 강렬한 침묵을 경험한다. 글을 읽고 있던 나마저 숨을 죽이게 된다. 저자는 인간 관찰자로서 꼬리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도 그를 모른 척 해준다. 서로의 존재를 눈치챌 때 마다 서로를 최대한 모른 척 해주는 것이 꼬리와의 소통 방식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다. 꼬리는 인간을 모른 채 한다. 그러나 늙은 호랑이는 젊은 호랑이에게 서열을 위협받으며 인간의 영역으로 발자국을 남긴다. 그래서 인간과 호랑이는 서로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숲속에서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짐승들의 삶이 숲 밖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부딪힌다. “는 그 경계 위에 서서 꼬리를 바라보며 그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 호랑이들이 민가를 습격하는 이유는 영역 다툼에서 밀린 짐승들의 굶주림이 원인이다. 동물들에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유가 어찌됬건, 어린 딸을 둔 아버지와 양봉과 꽃으로 마을의 생계를 책임졌던 노인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는 마음이 급해진다. 그 호랑이는 꼬리인가? 아니면 다른 호랑이인가? 그 호랑이는 왜 민가를 습격했는가? 그 상황은, 행태는 어떠했는가? 증거가 남았다! 꼬리는 그 호랑이가 아니다! 저자는 호랑이가 절대 먼저 인간을 해치는 일은 없다며 본질을 호소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죽음에 저항하며 굶주림에 이끌리는 호랑이의 삶과 크게 다를 일인가? 마을 사람들의 결정이 저자의 호소가 아닌, 돈 앞에서 번복되는 현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 호랑이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마을의 청년들은 여전히 호랑이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증오는 종을 향하고, 연민은 종이 아닌 개체를 향한다. 마을 여자들은 울타리를 넘어온 호랑이를 보고 무섭지만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저자가 옹호하는 것도 자연이라기보다 꼬리였다. 독자가 꼬리의 삶에 감명받는 이유도 자연이나 종이 아닌 꼬리라는 한 개체에 대한 연민에 있다. 이러한 연민의 번역은 자연을 살려야 한다는 낭만적 당위가 아니라 죽더라도 자연으로 죽어야 한다는 관찰자의 바람일 것이다.


관념적 표현들로 노래하는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의 삶은 그의 배고픔처럼 치열하며 공허하다. 먹고 먹히는 생태계에서 굶주림은 생사와 직결된다. 무엇보다도 생사가 앞서는 자연, 본질에 앞서는 실존들, 그 투쟁의 장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본질을 관찰한다. 태어나 먹고 먹히며 싸우다 늙고 죽어가는 생물들의 삶은 실존인가 본질인가?


억새밭으로 들어가려던 꼬리가 문득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산막을 바라보았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연민이 느껴지는 존재가 뒤에 남았거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 때이다. 뒤쪽 어딘가에 남겨진 나의 체취를 다시 한번 짐작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의 그림자 뒤에 드리운 삶의 여운이 얼마나 남았는지 재보려는 것일까?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늙은 인디언 같았다


늙은 호랑이 꼬리는 왕대의 자리를 젊은 수컷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꼬리>는 말 없는 짐승이 가진 실존의 문제로부터 그의 본질을 짐작해볼 뿐이다. 그러나 고요한 눈밭에서 울려퍼지는 발자국 소리처럼, 반향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