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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루엔 상인가 뭔가를 받았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최신간인데


기존의 주장을 집대성하고 약간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다


대충 요약해보겠다. 원래는 챗지피티에게 시켜먹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가라타니의 생각은 일단 칸트와 마르크스에 기초하고 있다


칸트에서 마르크스를 읽어내고, 마르크스에서 칸트를 읽어내는, 초월론적 비판이라는 관점을 통해 독해를 해야한다 라는 것이


2001년 발간된 '트랜스크리틱'의 내용 요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프로이트나 무의식이라는 개념도 가라타니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보니 마르크스가 말한 경제적 하부구조는 생산 양식이 아니라 교환 양식이더라는 것이다


그 교환 양식에는 A, B, C가 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D가 있다


교환 양식 A는 정주 토착민의 호수적 교환으로 나타났고 (호수는 호혜와 비슷한 단어지만 징벌적 의미도 포함하기에 직역했다고 한다)


B는 그러한 농업 공동체를 압도하는 국가로 나타났고 (국가와 개인의 교환. 즉 홉스적)


C는 상품의 교환으로 나타났다


마르크스 주의자이긴 하지만 사적 유물론처럼 역사에 순서가 있는 게 아니라


셋 중 어떤 교환 양식이 우세한가 에 따라, 나타난 양상이 바뀌어왔다는 주장이다


즉 A는 B에 의해 사라졌지만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으로 되살아났다. A가 우세하면 파시즘이 대두된다


B가 우세했을 때에는 아시아적 전제국가나 유럽의 절대왕정이 나타났고


C가 우세한 것이 지금, 자본주의의 시대이며,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C의 우세를 처음 읽어낸 명저로 평가한다 (즉 C 자체는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이 교환 양식 A B C는 지금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주며 똘똘 뭉쳐있다. 즉 네이션=스테이트=자본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셋 중 어느 하나만 극복하려고 하면 성공할 수 없다. 일례로 공산주의가 B의 힘으로 C를 이겨보려고 했지만 스탈린주의로 귀결되어버린 이유가 이것이라고 한다


저 무적의 삼위일체를 극복하려면 교환 양식 D가 필요한데 그것은 교환 양식 A의 고차원적인 회복이다 (네이션은 A의 저차원적인 회복이라고 함)


이게 먼 소리냐... 보편 종교가 발원하는 시점의 순수한 상태, 그것이 교환 양식 D라고, 나는 이해했다


다름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인 '유토피아적 발흥'이다. 조로아스터, 묵자, 예수, 부처 등이 있다고 한다


사회의 모순이 극에 달하면 누군가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실패한다. 모조리 실패했다. 보편 종교는 이후 반드시 타락하여 세계 종교가 되었다. 따라서 교환 양식 D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요구한다. 역사의 반복강박 이라는 표현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계속 실패하는 데도 계속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세계사의 구조'였던 것 같다. 사실 트랜스크리틱에서도 한 것 같은데 읽은 지 오래돼서 디테일은 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 추가된 컨텐츠는 뭔고하니


바로 힘이다


교환 양식이라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관념적 상부구조에 작용하는 힘으로 나타나고, 이 영적인 힘은 실재한다는 것을 열심히 논증한 것 같다


이 책에서 가라타니가 강조한 부분은, 힘은 자율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네이션을, 스테이트를, 자본을 컨트롤할 수 없다. 어느 하나를 극복하려 하면 나머지 것들이 야합을 해서 실패한다. 그 작용이 '힘'이라는 것이다


자력의 예를 들며, 눈으로 볼 수 없더라도 존재하는 이 힘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과학이라고 가라타니는 역설한다


그리고 원유동민이라는 개념을 들어 프로이트의 원부살해/반복강박을 대비하며 교환 양식론을 열심히 보충했던 것 같다


잘 요약한 건지 모르겠지만 대충 끝났다. 반박시 니가 다 맞다


그럼 이제 감상을 써보자


가라타니 고진의 글은 언제나 재미있다. 솔직히 말해서, 얄팍한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 때문에 읽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실제로 재미있다. 지루하고 복잡하기만 했다면 읽어낼 수 없었다


또 은근 쉽다. 나는 칸트나 푸코의 책을 빌렸지만 읽지 못하고 반납했는데, 가라타니가 인용하는 칸트와 푸코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가라타니의 필터를 거쳤기 때문에 진짜 칸트나 푸코는 아니다. 나도 칸트나 푸코를 이해했다고 우길 생각이 전혀 없다. 어쨌든 엄청나게 어렵지는 않다는 말이다. 헤겔도 자주 인용하는데 이 새끼는 걍 빌릴 생각도 안 들더라


즉 가라타니의 책은 읽는 동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다 읽는 순간에는 세계가 구원될 수 없다는 절망을 안겨준다.


교환 양식 D를 예전의 가라타니는 어소시에이션이라고 표현했다


그게 뭘까?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의 과학, 미未의식(무의식에 대비되는) 뭐 또 여러가지 있는데 하여튼 그렇게 부르고 있다


나는 교환 양식 A, B, C를 통해 세계사를 인식하는 가라타니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환 양식 D를 믿고 있는 그를 따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인류가 파멸 없이 공존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네이션=국가=자본을 지양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믿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발견한 믿음과 유사하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도끼의 기독교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라타니 고진의 '힘과 교환양식'을 끝맺는 문장과 함께 글을 마치겠다...




앞으로 전쟁과 공황, 즉 B와 C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위기가 여러번 생길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A의 고차원적인 회복으로서의 D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