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식인들의 사유는 어디까지 와있나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펴낸 조경란 교수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6517

1
중국 내에서 벌어져 온 사상 투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아주 많이 되는 글이다. 근데 조경란의 책을 소개하는 글이니까 그 책이 훌륭한 것이다. 한국에도 신뢰할 만한 중국 전문가가 있는 것이다.
-
-
2
'왕후이'로 구글 검색을 하면 그에 대한 한글 논문이 다섯 편 이상 나온다. 그 중 하나인 조경란의 '중국에서 신좌파와 비판적 지식인의 조건'과 이욱연의 '중국 비판적 지식인 사회의 새로운 분화-첸리췬과 왕후이의 경우'로 그 글을 보충할 수 있다. 이욱연은 조영남과 더불어 유튜브에도 등장하는 중국 전문가이다.
-
-
3
왕후이에 대한 다음 글은 공개되어 있지 않고 받을 자격이 없어서 받을 수가 없었다. 4에서 언급한 송재인의 저서로 대체가 가능할 것 같기는 하다.

왕후이의 '재정치화' 담론 소고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427959
-
-
4
왕후이를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왕후이 전문가라고 할만한 송재인의 저서 <왕후이>와 송재인이 번역한, 왕후이의 가장 최근 글들이 수록된 <단기 20세기: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를 읽으면 된다. 앞 책은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다.
-
-
5
위에서 언급한 조영란의 글과 저서 외에도 다음 지젝의 글에서도 왕후이에 대한 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왕후이의 범아시아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1721.html
-
-
6
이제 내 자신의 말을 몇 마디 하겠다. 나는 지식인이 국가 편을 드는 것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이거나 지식인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폭언이나 고함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학술적 수준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국가가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더 합리적인 국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의 사상 투쟁의 자유가 존재함을 가리킨다. 왕후이로 대변되는 신좌파가 어느 정도 반체제였던 입장에서 국가친화적 입장으로 변모한 것은 중국에 자리잡고 있는 통치 체제가 주도한 중국의 변화를 부정적인 것 이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완전히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인간세상에는 드물다) 그 긍정성이 강화될 여지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조경란의 판단과는 달리 서구식 발전도식을 완전히 대치하는 중국식 발전도식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식 발전도식에 이미 서구식 발전도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왕후이는 그 점을 인정한 것일 수 있다. 중국의 주류 지식인들은 심지어 서구에서 주류가 아니었던 반자유주의적 정치사상들과 중국의 전통 정치사상들 사이의 친화성도 발견했다.

나는 지젝의 다음 문단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유럽은 국민 ‘국가’로, 중국은 고유한 다문화 ‘문명’으로 사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중국에서 보고 있는 것은 강력하고 통일된 국민국가를 지향하고 소수민족을 엄격히 통제하며 애국심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경향이다. 오히려 스코틀랜드, 웨일스, 바스크, 카탈루냐가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유럽이 훨씬 더 다문화적이다. 범아시아주의 좌파들은 미국과 유럽은 자본이 통치하고 국가기구가 자본에 복무하지만 중국에서는 국가가 자본을 통제한다고 주장하지만, 사회경제적 권리 측면에서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 훨씬 더 사회민주적이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바스크, 카탈루냐가 유럽 전체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독립들이 이뤄질 리 만무다. 또 그 독립들과 다문화는 별 상관없다. 한 국가가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갖는 국가들로 쪼개지는 것이 다문화적인 것은 아니다. 다문화라는 것은 단일 국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문화가 어려운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결코 '진정'으로 다문화적이지 않다는 것은 지젝 자신의 주요 레파토리였다!! 게다가 어떤 의미에서 유럽은 국민 국가조차 못 된다. 과거에 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대놓고 미국과 척을 진 국가들과 친분을 맺곤 했다. 이제 그 국가들은 가장 앞장서서 미국의 똘마니 짓을 하고 있다. 미국에 굴종하지 않을 잠재적 능력이 있으면서도 미국에 굴종하고 있는 국가들이 어떻게 '국민' 국가인가? 자신들의 국익보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국가들이 어떻게 '국민' 국가인가? 도대체 유럽의 국가들에게 미국과 그런 식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직면할 수 밖에 없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어떤 안보 위협이 있는가? '사회경제적 권리 측면에서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 훨씬 더 사회민주적이다'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지젝이 유럽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중국의 사회복지 시스템보다 더 실질적이다라든가 유럽의 정치체제가 중국의 정치체제보다 국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준다고 주장했다면 나는 그 주장에 기꺼이 동의했을 것이다. 그 둘은 유럽 국가들이 인구 규모에 비해 축적되어 있는 이윤이 많은 소위 '선진'국가들이고 유럽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제이니 극히 당연하다. 그뿐이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이고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야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이 더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질의 향상보다 더 고귀한 사회경제적 권리는 없다. 그 향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중국과 그렇지 않은 미국/유럽 중 어느쪽이 더 사회민주적인가? 유럽 국가들의 국민이 중국의 국민들보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면 유럽 국가들의 국민의 삶의 질은 지속적으로 신장되어 왔어야 하거나 적어도 양극화가 심화되지는 않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마르크스주자로 자처하는 지젝 자신이 잘 알고 있어야 하듯이, 그 사회경제적 권리라는 것이 실제로는 형식에 치우친 것이다. 아니면, 지젝은 자본주의와 결합된 자유민주제가 영원히 지속적으로 국민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다는, 전혀 마르크스적이지 않은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당제, 언론의 자유 등 자유민주제는 보장하고 중국의 정치체제는 보장하지 않는 것들을 숭상하고 있는 것인가? 중국에도 나름의 민주주의가 있고 중국의 통치 엘리트들이 확인할 수 있는 여론 형성 시스템이 있다. 그것들을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제, 그것도 자본과 결합된 자유민주제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자유민주제 하에서의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껍질에 가까운 것인지 러우전을 계기로 더 실감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본에 대한 통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 중국 정부는 지구 상의 그 어떤 자유민제 정부보다도 자본을 더 통제하고 있다(그래서 중국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공산당 간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만이거나 공산당의 영구 집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상향, 즉 공산주의나 역시 거의 그것에 못지않은 이상향인 그 공산주으로의 과도적 사회형태인 진정한 사회주의에 비하면 중국은 무한히 부족하다. 그러나 중국의 통치 엘리트들은 적어도 장기적이고 거대한 비전을 갖고 있고 그 비전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과 그 애완국들의 강력한 포위망 속에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한 막대한 인구 (나는 그 막대한 인구와 자유민주제가 어떻게 잘 결합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아마 미국도 상상이 잘 안 되서 중국에게 자유민주제를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를 가지고 말이다. 물론 중국이 '일반' 국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들이 보장되는 국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는 중국이 더 발전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여유가 높아지는 것이다. 중국은 실제로 지난 30여년간 국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들이 보장되는 국가가 되었다.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시진핑 치하에서도 중국 국민은 등소평 치하에서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상응하는 직함들도 없이 중국의 모든 분야들을 호령한 등소평이야 말로 진정한 독재자였다. 따라서 미국이 하는 것처럼 그 발전을 가로으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