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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과 비교를 했을 때 확실히 독서량에 진전이 있었다. 다음 달에는 더 많은 책을 읽어볼 것을 다짐하며 지난 3월 동안 읽었던 책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 돈키호테 2 또는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El ingenioso caballero don Quixote de la Man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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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통치자가 되는 데는 그렇게 대단한 능력도 학문도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 가장 중요한 문제는 좋은 뜻으로 모든 것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에 달려 있으니까요.”

- 돈키호테 2 中 -

지난 달에 이어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역작 돈키호테를 마저 읽어봤다. 1605년에 1편이 출간되고 1615년에 2편이 출간된 이 책은 17세기 초 스페인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식민지인 중남미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온 세계에 있는 문필가와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고 성경 다음가는 판매고를 올려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던 때는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읽었던 책은 원전이 아니라 아동용 축약본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더도 저에게 돈키호테는 미치광이 할아버지의 모험 활극이자, 기사 소설을 가열차게 비난한 풍자 소설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 큰 어른이 되어 본격적으로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돈키호테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주었는데, 마냥 어릴 때 알고 있었던 내용과 달리 성서 다음으로 꼽히는 세기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본작의 위상을 알게되었다. 이 때문에 언젠가부터 항상 읽어보려고 벼르고 있다 기회가 닿게 되어 열린책들 판 원전 번역본을 구해 읽어봤다.

이 책은 근세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에 있는 시골 도시 라만차에서 한 노인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키하나 혹은 키하노로 알려졌던 사람인데 하급 귀족인 이달고 작위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딸린 식솔은 조카딸 하나에 가정부도 한 명만 두고 있었고, 생활비의 3분의 2를 식비로 지출하고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 또 그는 책읽기를 무지 좋아했던 사람인데, 그중 기사도 소설에 푹 빠져 살았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빠진 나머지 기사도 소설 속 세계와 현실 속 세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광기에 휩싸인 그는 자신도 소설 속에서 모험을 떠나며 활약한 편력기사들의 삶을 좇기로 결심하고는, 자기 자신에게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선배기사들을 본받아 섬길 귀부인도 뚝딱 만드는데 엘 토보소라는 근처 마을에 참한 농사꾼 처녀인 알돈사 로렌소에게도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름을 붙여 섬기기로 한다. 그 다음 집에 처박혀있던 낡은 갑옷도 챙기고 비쩍 마른 종마에게도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모험을 떠나려 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기사 서임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런 역경을 극복하고자 근처에 있는 성을 찾아가 영주에게 서임을 받기로 한다. 이에 아무리 봐도 객줏집으로 보이지만 아무튼 성에 들어가서 영주를 알현한다. 

영주 아니 객줏집 주인은 이를 보고는 황당해하지만 돈키호테의 광기가 예사스럽지 않기도 하고 손님들도 웃겨볼 겸 장부책을 성경삼아 그에게 그럴듯하게 서임식을 거행한다. 정식으로 기사가 된 돈키호테는 부푼 마음을 안고 다시 모험길에 나섰고, 여정 중에 주인에게 학대 당하던 목동소년도 구출해줘 정의도 구현하고 길가다 만난 톨레도 상인들에게도 귀부인 둘시네아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설교를 행한다. 그러나 불손하게도 상인 일행은 감복하기는 커녕 조롱을 하였고, 이에 분기탱천한 우리의 기사는 무뢰배들에게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려 하였다. 그러나 불한당들의 수가 중과부적으로 많았던 탓에 도리어 돈키호테가 흠씬 두들겨 맞고 만다. 그렇게 처참하게 쓰러진 돈키호테를 알아본 동네 주민 하나가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오며 기사의 첫째 출정은 끝이난다. 곧 돈키호테의 친구들인 동네 신부와 이발사는 참담한 소식을 전해듣고는 그의 집으로 찾아왔고, 자기들의 친구가 이렇게 미쳐 버린데는 기사도 소설이 원인이라고 판단해 그의 서재 문을 꽁꽁 숨기고 몇 권을 제외하고는 그의 책들을 몽땅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는 이런 것으로 굴하지 않았으니, 얼마 안가 이웃 농가의 순박한 농부인 산초 판사에게 모험에서 성공을 거두면 섬 하나를 영토로 주겠다고 꼬드겨서 종자로 삼고 두번째 모험길에 나선다. 새롭기 얻은 종자와 같이 돈키호테는 길을 걷고 있던 중 팔이 네 개 달린 거인들을 마주친다. 이에 그는 그들에게 기사도 정신의 매운 맛을 보여주고자 창을 치켜듭니다. 뒤 따라오던 산초는 주인에게 목청이 터져라 저건 거인이 아니라 풍차라 외치고 있지만, 모험이 뭔지 모르는 듯한 종자를 뒤로한 채 적을 향해 돌격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나는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본 작품을 똘끼 충만한 모험 활극이자 풍자 소설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올들어 원전을 직접 읽어보게 되면서 내가 헛다리를 짚었다는 걸 깨달았다. 작품 내에서 돈키호테는 마냥 망상에 푹빠진 미치광이라기 보다는 제정신이라면 품을 수 조차 없는 원대한 꿈을 꾸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작중 그는 자기가 편력기사가 된 이유를 악습을 뿌리뽑고, 과부, 미혼모, 고아들을 돕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게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비록 착각에 빠져서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하지만 그의 기행 하나는 대부분 그가 지닌 신념과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주어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고 맹목적으로 남들을 따라가기 보다는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더불어 돈키호테는 단순히 심지곧은 이상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가 기사도를 쫓으며 벌이는 기행은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행동을 통해 의도치 않게 다른 인물들을 돕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돈키호테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모험을 함께 해왔던 산초 판사인데, 초창기만 하더라도 너무 순박하다 못해 무식해서 상황에 맞지도 않는 속담을 줄줄이 늘여놓던 농부에 불과하지만 모험을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거치며, 그의 꿈이었던 한 섬의 통치자가 되더라도 무리없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발돋움한다. 그렇기에 돈키호테는 미치광이로 조롱을 받기보다는 자기만의 가치를 찾아낼 줄 알고 남에게도 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추앙받아 마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작품의 위대함은 훌륭한 캐릭터에만 그치지 않고 서사와 구성에도 그 탁월함을 드러낸다. 
작품 내에서 돈키호테의 모험 이야기는 평범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데, 이는 본 작품의 서문에서부터 알 수 있다. 당대만 하더라도 서문은 동료 문인들의 추천사와 헌정시로 장식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는데, 돈키호테 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명작가였던 세르반테스는 헌정시를 부탁할 동료 문인도 없었던 탓에 자기가 직접 기사도 주인공들의 이름을 빌려 헌정시를 직접 만들어서 초장을 장식하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작품 내 서사도 처음엔 화자 본인이 풀어냈지만 갑자기 자기가 아는 기록이 더이상 없다며 뚝 끊더니 가상의 아랍인 작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는 사람의 원고를 만들어 번역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지금도 꽤 신선하다는 소리를 듣는 메타픽션(Metafiction)을 400년 전에 세르반테스에겐 찬사를 아낄래야 아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품 자체가 꽤나 코미디스러운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코미디를 방패로 삼아 순수한 기독교 신앙만을 추구한다는 기치 아래 자국 내에 있는 아랍인과 유대인을 박대하며 추방시키고, 폐쇄적인 순혈주의에 매몰되었던 스페인의 한심한 시대상을 준열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메타픽션적인 패러디 소설을 여럿 썼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웃음으로 냉엄한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자 했던 움베르토 에코가 연상되었는데, 이를 통해 새삼 세르반테스가 정말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외에도 본작에서 칭송할 만한 점은 꽤나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내 얄팍한 식견으로 이를 잘 수식해낼지 확신이 안서서 이쯤 하도록 하겠다. 혹시라도 돈키호테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런 명작을 놓치는 건 인생의 절반을 손해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분량에 쫄지 말고 꼭 도전해 보는 걸 강력 추천한다.

2.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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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태껏 이야기해왔던 모든 사랑은 그냥 추억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지. (All this, all of this love we’re talking about, it would just be a memory.)”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中 -

1938년 미국 오리건주 클랫스키나이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가 1981년에 출간한 단편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그는 매우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사실적이고 임팩트 있는 서사가 있는 단편소설을 여럿 집필했는데, 이를 처음으로 모아서 1976년에 출간한 제발 조용히 좀 해요(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가 5000부가 채 안되는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미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출간한 본 작품과 1983년에 출간한 대성당(Cathedral)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비평적으로도 성취를 거두면서 카버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는 미국 문단에는 단편 소설 붐을 일으키는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외국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내가 이 작품을 찾아서 읽어보게 된 계기는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전에 봤던 한 편의 영화에서 비롯됐다. 바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인 버드맨 덕분이었는데, 한국에선 논란의 그 대사(…) 때문에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해졌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꽤 감명을 받아서 인생영화 중 하나로 꼽곤 한다. 버드맨을 보면서 주요 소재로 등장했던 게 바로 이 작품을 원작으로 각색한 연극이었다. 그걸 보면서 자연스레 원작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고 카버에 대한 명성도 있고 해서, 근처 서점에서 냉큼 하나 집어서 읽어봤다.

본작은 단편집 전면에 내걸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외 1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카버는 문체에서만 간결함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과 소재에 있어서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그 영향인지 본작에 수록된 각 단편들은 원서 기준 20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만큼 분량이 꽤 짧은 편이다. 각 단편소설들은 등장인물들과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 등 여러 부분에서 판이하게 다르고 서로 이야기가 연관되는 부분도 거의 없지만 공통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각 단편 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다분히 일상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 미국에 살았다면 한 번쯤은 일상에서 마주칠만한 소시민들이다. 각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도 각박한 세상 속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투사 이야기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모험이 기다리는 활극도 아니라, 가정폭력, 알코올 중독, 치정싸움, 운없이 들이닥친 교통사고 등 대부분의 독자들이 언제라도 마주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렇게 까지만 이야기하면 카버는 현실에서 보는 생활상을 담담히 묘사하기만 하는 고리타분한 사실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집필한 소설 속에는 따분한 일상과 한번쯤은 흥미를 일으키는 픽션적인 요소가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수록된 단편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들은 상술하였듯이 주위에서 벌어질 수 있다 못해 군내가 난다고 할만큼 꽤나 현실적인 성질을 띄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상에서 그렇게 자주 벌어진다고 하기는 애매한 특이한 사건들이기도 하다. 본 작품은 이 애매한 지점을 파고들어 다른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당장 가난한 처지를 모면하고자 여러 추억을 간직한 소중한 가구들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애쓰는 절실함,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가족의 사고로 인해 맞닥뜨린 절망과 불안함,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으로 차국으로 치닫고 있는 위기의 가정이 주는 황량함 등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수록된 단편들의 결말도 살펴보면 속시원히 끝난다는 느낌보다는 중간에서 뚝 끊긴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런 비완결성은 이야기들이 아예 동떨어진 허구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항상 지속되고 있는 다른이의 삶이라는 인상을 주고, 카버가 굉장히 인간적인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삭막한 삶에서 추출하여 적당한 픽션을 가미해 카버가 선보인 현실의 미학은 단연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본 작품은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담백하기만 한 이 작품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솔직히 얘기하면 제가 카버의 명성을 듣고 한껏 부풀었던 제 기대를 충족시킬 만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인상깊게 읽었던 단편을 꼽아보자면, 춤 좀 추지 그래?(Why Don't You Dance?), 정자(Gazebo), 목욕(The Bath),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So Much Water So Close to Home),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여태까지 이야기 해왔던 이유로 인해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이지만 문장 구성이 제법 간단한 편이고, 분량도 짧아 부담이 없어서 한 번 정도는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3. 이방인 (L’É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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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당신은 바랍니까?’ 하고 그는 외쳤다. 내 생각으로서는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 이방인 中 -

1913년 프랑스령 알제리 몽도비 태생의 소설가,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장편소설 이방인을 읽어봤다. 그는 본작을 1942년에 출간하였는데, 당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 점령 하에 있어 당국의 검열이 몹시나 심한 편이었으므로 문화적으로 경색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은 선풍적인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얻으며 28살의 무명 작가인 카뮈는 스타덤에 올랐다. 이방인 출간 몇 달 만에 출간한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를 통해 사상가로서의 입지도 다지고 그 이후로도 페스트(La peste), 반항하는 인간(L’Homme révolté), 전락(La Chute) 등 주옥같은 저작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를 통해 문학적 성과를 인정 받았는지 1957년 역대 수상자 중 두번째로 어린  나이인 43세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 이후로도 최초의 인간(La premier homme) 집필에 골몰하고 있었지만 1960년 여행을 위해 원래 기차를 타고 가려다가 평소의 잘 알고 지내던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대신 그의 조카의 차를 얻어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는 바람에 4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본작이 원체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나도 이전부터 번작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도통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모의 도움으로 개정되기 전 책세상 판을 받아서 이번에 읽어봤다.

이 책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알제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지내던 프랑스인 청년 뫼르소가 갑작스레 전보 한 통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내일 장례식에 참가하라는 내용의 전보였다. 그는 이틀 휴가를 얻어 나른한 몸을 이끌고 양로원이 있는 마랑고로 향해 2시간 동안 버스에 몸을 맡겼다. 도착한 이후 양로원장에 안내를 받아 어머니의 관이 안치된  영안실로 향한다. 그때 관 가까이에서 망을 보고 있던 문지기는 뫼르소에게 관을 열어줄테니 어머니를 직접 뵈지 않겠냐고 제안하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한다. 이윽고 프랑스식 관례에 따라 밤샘을 하기 위해 어머니의 시신 앞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에게 침통해 보이는 구석은 없었고,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한 원우들도 영안실에 찾아와 세상 서럽게 울어댔으나 정작 망자의 아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덤덤히 관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 다음날에도 뫼르소는 담담한 태도로 장례행렬에 함께했고, 관을 매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이라도 보지 않겠냐는 최후의 제안도 뿌리치고는 12시간 동안 푹 쉴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며 알제로 돌아간다. 그 다음날 그는 잠자리에 일어난 다음에서야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점을 깨닫고는 무료한 주말 동안 시간을 때우고자 항구 해수욕장으로 향하였다. 거기서 한때 그의 직장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하다가 회사를 떠났던 여인인 마리 카르도나를 우연히 재회하는데, 이전에 직장에서도 서로 썸타던 사이였던 둘은 그 자리에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면서 서로에 대한 애욕을 다시 깨닫고는 계속 만남을 이어나간다. 관계가 깊어지면서 마리는 그에게 자기를 사랑하지 않냐고 묻지만 그는 무의미한 얘기라면서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대꾸한다. 

뫼르소는 또 이웃인 레몽 생테스라는 사내와도 친해지는데, 그는 뚜쟁이라는 악명이 자자하고 사귀고 있는 아랍인 정부를 상대로 폭력도 일삼았다. 레몽은 뫼르소에게 친구로서 부탁을 하고 싶다며 아랍인 정부에게 보내는 경고 편지 대필을 부탁했는데, 뫼르소는 도와줘서 손해볼 건 없을 것 같다며 편지를 대신 써준다. 며칠 뒤 레몽이 정부를 집으로 데려와 또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져 경찰서에 출두하게 되자, 이번에도 뫼르소는 레몽의 부탁대로 유리한 증언을 해줬고, 사건은 흐지부지되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뫼르소는 레몽의 지인인 마송이라는 사람의 초대를 받아 마리와 레몽과 함께 알제 교외에 있는 해안가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아랍인 무리가 그들을 미행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레몽이 학대한 아랍인 정부의 오빠였다. 뫼르소 일행은 이들을 어찌저찌 뿌리치고 약속장소에서 지인을 만나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고 레몽, 마송, 뫼르소는 잠깐 산책을 나온다. 곧이어 따돌린 줄 알았던 아랍인 무리가 이들을 가로막고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레몽에게 단검을 휘두르며 혈투를 벌인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죽진 않았지만 레몽은 꽤 여러군데를 베인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레몽은  어떻게 구한 모양인지 모를 권총 하나를 꺼내며 아랍인을 쏴버리겠다고 벼르지만, 뫼르소는 그를 진정시키고는 만일을 대비해 대신 권총을 맡아두기로 했다. 몇시간 뒤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 밖에 나온 뫼르소는 산보를 하며 바닷가 근처로 왔다가 칼부림을 벌였던 아랍인과 재회한다. 그는 아직도 칼을 들고 있었지만 뫼르소에게는 적의가 없는지 제 갈길을 가려한다. 하지만 미칠듯이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광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난데없이 레몽 대신 맡아두었던 권총을 꺼내 아랍인을 향해 겨눈다.

이방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뫼르소는 평범한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지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생전 부모와 어지간히 반목했었던 게 아닌 이상 부모의 장례식에는 침울한 감정을 내비치지만, 그는 어머니와 별다른 불화가 없었음에도 노상 무덤덤한 태도로 장례를 치른다. 또 뫼르소는 대인관계를 맺는데 있어서도 괴상한 면모를 보여준다. 우연한 만남으로 기껏 물꼬를 튼 썸녀 마리와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뚜쟁이라는 악명이 자자한 이웃 레몽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나는데, 평소 그의 행실도 사회적 평판이 영 좋지 않음에도 뫼르소는 사귀어서 손해볼 것 같진 않다는 생각만으로 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기도 한다. 결정적으로는 친구와 원한관계는 없지만 뫼르소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아랍인을 단지 태양빛이 너무 뜨거웠다는 이유만으로 총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기는 등 여러모로 우리의 주인공은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잘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는 편이다. 이로 인해 뫼르소는 큰 곤경에 빠지게 되고, 주위 사람들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통념적인 도덕관에 맞춰 정해진 반응을 보일 것을 권유하거나 또는 강요한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는 그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다른 일들이 이해 못할지언정 자신이 느낀 바와 소신대로 솔직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뫼르소와 주변 사람들의 촌극은, 카뮈가 여러 저작에 걸쳐 강조해왔던 테마인 '부조리'와도 관련이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항상 이치와 원칙에 따라 벌어지지 않고, 사람들 또한 항상 이성적이고 계획했던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꽤나 빈번하다. 뫼르소에게 벌어진 일과 그의 행동은 삶이 지니고 있는 부조리성을 함축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도 작가가 뫼르소에게 닥친 부조리와 그가 내포하고 있는 부조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작중 부조리의 표상으로 등장하며 뫼르소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바로 태양이다. 작중 태양은 뜨거운 빛을 내뿜으며 뫼르소에게 피로함과 부담감을 안겨주고 그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중반부에 이르러서 뫼르소가 대뜸 살인을 행해 놓고는 살인동기라고 대답한 이유도 다름 아닌 태양이었다. 부조리 문학에서라면 등장인물들이 마주하는 부조리는 어두침침하고 침잠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본작에서 태양의 모습을 한 부조리는 높은 곳에 떠올라있고 밝은 빛을 내뿜으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조리를 마주하는 뫼르소의 태도도 다른 부조리 문학의 주인공들하고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다른 부조리 문학에서라면 주인공들은 황당한 상황에 굴복하거나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뫼르소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언정 자신의 사고를 굽히지 않고 꾸준히 반항한다. 삶의 덧없음과 부조리함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그런 삶으로부터 도망치기보다 열심히 헤쳐나가겠다는 카뮈표 낙관적 허무주의가 제게는 퍽 마음에 들었다. 끝으로 간단한 감상을 더 보태면 작품의 문장 자체도 간단명료한 편인데다 분량도 많은 편은 아니라서, 순수문학 치고는 꽤나 술술 읽히는 편이다. 혹시라도 고전문학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 작품을 입문작으로 권하니 시간이 난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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