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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1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2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3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4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5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6 (1부 完)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7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8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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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음



언러키 스타트업

(2022)


대놓고 ‘시트콤’을 자칭하는데 무슨 태클을 걸겠는가. 그래, 이런 책도 있어야지. 예상대로 가볍게, 예상보다 화끈하게 흘러가는 전개에 그냥 마음 놓고 낄낄거리면서 봄.


‘박국제 제임스 대표’가 이끄는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이란 답 없는 회사에 다니는 ‘김다정 DJ 주임’과 동료들의 답 없는 나날들이 정신없이 팝핑 캔디처럼 터져 나옴. 그야말로 전조도 없이 팡팡 터짐.


제목으로 쉽게 유추되듯, ‘미생’ 시궁창 버전임. 꼰대의 전형인 박국제의 패악질에 사원들이 질려 하는 패턴의 연속. 업무적인 무능력에 더해 숨 쉬듯 내뱉는 인격 모독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속으로는 똑같이 숨 쉬듯 대표를 줘패는 언러키 미생들의 이야기.


그러한 내용이 술술 읽히는 게 아니라 알아서 좔좔 흐르고 있어서 큰 생각 없이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됨. 뒤 내용이 궁금해서 읽는 것과는 조금 다름. 애초에 어떤 하나의 이야기 선이 있는 것도 아님. 그냥 뼈대를 이루는 설정과 순간적인 상황 자체가 웃겨서 계속 읽어 나가게 됨. 일상툰 보는 느낌임. 실제로 읽으면서 웹툰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시즌 1 생각이 많이 났음. 소규모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참담하고도 처참한 상황들에 눈앞이 아득해지다가도 그 안에 가득 담긴 풍자와 해학에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됨.


정말 퇴사한 사람이 이 깍 깨물고 쓴 것 같은, 분노가 느껴지는 신랄함과 그야말로 ‘웃음으로 눈물 닦기’의 정석처럼 보이는, 깃털보다도 더 가벼운 문체가 큰 특징임. 이렇게 팔랑거리는 글 뭉치는 처음 봄. 솔직히는 이런 게 소설이랍시고 나와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임. 많은 의미로 실험적임. 어딘가 뒤틀린 장류진 같음. 그러나 보통 때였으면 단점이라고 했을 이러한 가벼움도, 시트콤이라고 못 박고 시작했으니 뭐라 따질 수 없음. 단어 하나를 방패 삼아 전략을 잘 짰음. 사실 그렇게 따지고 싶지도 않기도 하고. ‘작정하고 쓸 거면 이렇게 써라’의 표본임.


다만 챕터마다 길이가 짧아 일기나 블로그, 커뮤니티 글 같은 특성이 강한데, 넘쳐 나는 에피소드를 추리고 추려 정리한 것 같지만 그게 깔끔하지는 않아 전반적으로 어수선하고 곳곳에 누수가 심함. 그러니 중간중간 통찰력이라 할 만한 문장이 나오더라도 결국엔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긁어모은 덩어리에 불과하단 느낌이 큼. 갈팡질팡이 의도인지 아닌지까지는 모르겠으나 회사와 더불어 책 자체도 산만하기에 그지없음. 그냥 정말 우당탕탕 와장창임.


인물도 크게 뭐라 할 게 없음. 꼰대와 식솔들을 현실감 넘치게 잘 표현함.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묘사마저도 직장인의 광기라고 보면 다 이해됨. 한편으로는 사원들끼리라도 그렇게 마음 잘 맞고 의기투합할 수 있는 게 다행이면서도 하나의 판타지로 보이기도 함.


굳이 짚을 게 있다면 주인공과 마지막 사건인데, 종장에서의 폭로전이 굉장히 망상사이다썰 같다는 점을 지울 수 없음. 입 밖으로 던지는 순간 어떻게든 문제가 될 발언들을, 그렇게 친하다고 표현 다 한 동료들과는 상의 없이 한다는 게... 너무 급작스러워 보였음. 주인공은 동료들을 동료를 넘어 친구 같다고 하지만 딱히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건 없어 보임. 이는 회사 얘기를 늘어놓는 주인공에게 친구가 반감을 표하자, 자신이 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겼던 것인지, 친구가 자신의 감정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과 맞물리는데, 그마저도 약간은 철없고 약간은 이기적이고 약간은 무모한 사회 초년생이라고 하면...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긴 함.


엔딩은 내가 좋아하는 형식임. 다만 챕터가 짧다고 한 만큼 에필로그도 극한의 압축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자 다 보여줬다 할 말 다 했다 이제 다들 나가! 끝! 하며 내쫓는 느낌이 강함. 뚝 떨어지자마자 끝나는 롤러코스터 같음.


넓게 보면 이 책은 ‘사회 초년생이 겪는 이러한 아픔이 과연 정당한 아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음. 특히 박국제가 행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정말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표출하며(물론 온당하지 않지) 책임 없이 무시와 멸시를 내뱉을 수 있는 권력을 너무나 당연하고 떳떳하게 즐기는 어른들을 항해 한껏 짜증을 내고 있음(분노보다는 짜증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따라서 나 역시도 이 땅의 모든 박국제에게, 본인이 박국제인지도 모르는 박국제 제임스에게 한마디 하며 평을 마무리 할 수밖에 없다.


국제야, 그렇게 살아서 너는 행복하니?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2019)


할머니 – 엄마 – 나에 이르는 여성 3대의 삶을 담음. 엄마의 명령이자 권유로 할머니를 돌봐드리러 유년 시절을 보냈던 북서쪽의 항구도시 ‘ㅎ’에 가게 된 휴학생 ‘나’는 할머니의 병중을 눈치채지 못한 채 할머니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보내며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는데...


뭐지, 이 담백하고 슴슴한 맛은... 마치 황정은과 비슷한 느낌임(4화, 황정은 - ‘백의 그림자’ 참조). 담담하게 읊조리는데 정갈하고 단정함. 굳이 따지자면 황정은 쪽이 좀 더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어쨌든 격한 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맛이 있음. 다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이지 다 읽고 나면 굉장히 애매모호하다는 감정에 휩쓸리게 됨. 말이 좋아 담백함이지, 정리하기 어려운 묘한 맛임.


우선 주인공은 자신이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엄마를 부담스러워하는 편임. 게다가 아이를 낳자마자 미국으로 유학 간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 손에 큰 주인공은 애초에 기본적으로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친애’함. 주인공에게는 할머니가 더 엄마임.


할머니와 지내면서 딸은 엄마가 그렇게 비정한 엄마가 된 이유, 모성애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이유를 알게 되는데, 그건 바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욕심 때문이었음. 특히 할머니의 욕심이 더욱 큰데, 할머니는 본인이 배우지 못했기에,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무시당하며 살아왔기에 자식은 자신과 다르게 공부하고 배우길 바랐음. 참고로 이건 딸을 넘어 손녀한테도 표출되는 감정.


그런 와중 이제는 늙고 병든 할머니를 보살펴 주는 주인공이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의 딸 역할을 함. 즉, 모두가 모두의 할머니이자 엄마이자 딸이자 손녀라는 거대한 굴레가 이 이야기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음.


하지만 그 근간을 엮는 단어가 ‘모성’이라면, 할머니 – 엄마 – 나 사이에 엄마라는 큰 공백이 생김. 자세히 보면 이 이야기에서 엄마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임. 할머니와 주인공이 서로의 엄마이자 딸 역할을 하는 동안 엄마는 그저 둘 사이에 덩그러니 존재함.


공백은 비단 엄마라는 인물 하나로 볼 게 아니라 좀 더 넓게 해석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공백의 의미는 ‘기대’가 아닐까 싶음. 부모(엄마)와 자식 간의 미묘한 사이, 아주 가깝다고 하기엔 껄끄럽고 껄끄럽다고 하기엔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깝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미묘한 사이. 이러한 사이는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기대,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기대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서로 기대밖에 하지 못하는 이러한 관계는, 책에서의 표현을 확장하면 ‘부서지는 걸 알면서도 해줄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음. 그럼 대체 이런 관계에 무슨 의미가 있나. 여기서는 해설의 힘을 빌려 볼까 함. 해설에서는 이를 ‘세대를 유전해 내려올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렇다면 무너질 걸 알면서도 부모가 자식에게 마음을 쏟는 이유는, 자신이 겪은 한계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함임을 알 수 있음.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엄마의 ‘이질적인 공백’은 잘 채워지지 않음. 일단 엄마는 할머니의 공허와 한계를 보란 듯이 돌파한 인물임. 유학을 가고 교수가 되는 과정을 통해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반대되는 삶을 사는 데 성공함. 그렇다면 엄마가 느낀 한계는 무엇일까? 딸한테 마음 쓰지 못한, 그야말로 ‘엄마’로서 느끼는 원죄? 그런 가냘픈 모성애는 마치 경계라도 하듯 하나도 표현되어 있지 않음. 단적으로, 혼전 임신을 한 주인공을 보며 엄마는 몰래 눈물을 흘리는데, 그 끝에 한 말은 ‘아이를 낳고서도 자아실현을 하며 잘 살 수 있다’는, 주인공이 바라는 말이 아니라 ‘결혼해 아이만 키우는 삶도 좋은 삶이다’임. 자식을 위한답시고 한 말이 결코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말도 아니거니와 그걸 듣는 자식도 결코 엄마가 좋은 뜻으로 한 말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대목임. 그럼 사랑 없는 결혼 생활과 남편에게 느낀 배신감이 엄마 삶의 한계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주인공의 결혼을 반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딸은 자신과 다른 결혼 생활을 할 거란 확고한 믿음이 있던 것도 아니면서. 결국 마지막까지 엄마와 딸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함. 이해한 ‘것 같다’는 부드러운 분위기만 풍기면서 급작스럽게 따뜻함을 연출할 뿐임.


한편으로는 이질적인 공백이 엄마뿐 아니라 주인공 때문에도 생긴다고 볼 수 있음. 왜냐하면, 세대를 거듭해 더 넓어지는 자유라는 주제로는 할머니 – 엄마로 이미 완성되기 때문임. 엄마 – 나 서사는 그에 비해 완결성이 한참 떨어짐. 게다가 주인공의 엄마 노릇을 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딸 노릇을 하는 주인공이 이 이야기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없음. 단순히 주인공이 주인공이기 때문임. 할머니 – 나 서사에서는 엄마의 주체성이 겉돌고, 할머니 – 엄마 서사에는 주인공의 결핍이 겉돌고. 참으로 기묘한 불균형임.


특히 주인공이 7살이나 많은 남자와 혼전 임신으로 결혼하는 설정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음.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함인가? 말이 안 됨.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도전이자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함인가? 그렇기엔 주인공 본인도 확신이 부족하고 남편 될 인물이 주인공의 모든 면을 끌어안을 만큼 ‘완벽한’ 남성으로 묘사되지도 않음. 막말로 엄마가 아이를 지우라고 강력히 밀어붙였으면 울면서 지웠을 것 같음. 결국 이건 엄마와는 다른 면을 주인공에게 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에 불과해 보임. 세대를 지나 자유의 저변을 넓힌다는 것은 어쩌면 자식은 부모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과 같기에, 엄마로서는 선택하지 않았을 순간을 주인공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거임.


그런 데다 그 선택이 과연 엄마의 삶에서 더 나아간 자유로운 인생인가 하면, 아닌 것 같다고... 주인공은 아이가 자람에 따라 뒤늦게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일과 가정이 양립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가 싶지만, 동시에 자식은 ‘짐작조차 못 하는 이유’로 엄마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역시도 가시밭길이라는 걸 보여줌. 엄마보다는 남편과 사이가 좋고 아이를 더 위한다는 그 애매하기에 짝이 없는 중도의 길이... 과연 더 나아간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정말 그런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엄마를 보며 자식이 꿈꾸는 더 넓은 자유란 어떤 것일까... 비혼...? 비출산...? 설마 ‘유니콘’ 남편...?


그러니 가능성을 품은 자유보다는 오히려 (부모 세대와는 다른 형태의) 자유와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 주지 못했다는, 자식은 부모를 향해 뒤늦게 갖는) 부채 사이의 불쾌할 정도로 찐득한 연결성만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듦. 애석하게도 사랑과 위로는 뒷전으로 읽힘.


그런 의미에서 하나 더 짚고 싶은 건 부모 자식 간의 연결 그 자체인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긍정보다 부정의 요소로 많이 활용한 것에 비해 작가는 주인공을 끝내 남성과 결혼시킴. 이유는 간단함. 주인공이 자식을 가져야 이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이야기의 영속성을 위해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결혼을 활용해서 혈육이라는 관계에 인물들이 갇히도록 설계하는 시선이 아쉬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하려면 엄마는 아빠와 결혼해서 딸을 낳아야 함. 딸이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가져야 함. 아예 안 낳았으면 행할 필요조차 없을 애증의 원죄를 기꺼이 견딜 만큼 결혼과 출산을 신성하게 그리는 것도 아님. 그냥 정말 나를 이해해 줄 대상을 만드는 것 말고는 결혼과 출산에 큰 의의가 없는 이 구조가 왠지 모르게 모순적으로 느껴짐. 안 낳으면 서로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게 되지 않음...?


그런 이유로, 작가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삼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만 읽히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게만 읽힘. 넓은 의미로 부모 자식 간의 애증(사랑, 미움, 미안함, 아쉬움, 결핍, 부채감 등)으로 볼 수 있는 것 말고는 다른 영역으로의 확대가 힘듦. 엄마와 할머니를 향해, 모든 어머니와 딸을 향해 바치는 ‘친애하다’는 헌사가 굉장히 얕게 느껴진다는 뜻(특히 할머니 친구의 시위 이야기는 깨소금 고명도 안 되는 수준의 삽입이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


하나 웃긴 건, 필력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거임. 담담하고 담백한 맛을 통해 바닷바람이 부는 듯한 분위기를 잘 살려서 읽는 감이 좋음. 특히 이번 후기에선 분위기라는 단어를 많이 썼는데, 그만큼 책의 분위기가 좋음. 기본적인 글솜씨가 있다고 느껴짐. 그러니 결국 이 책은, 작가가 필력만 믿고 게으르게 쓴 소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 이 정도 썼으면 여성 서사에 예민한 독자들이 알아서 좋게 해석해 줄 거라 믿은 것 같음. 밀도에 비해 독자한테 바라는 게 많음.


그러므로 친밀히 사랑한다는 뜻과 다르게 그냥 사랑한다는 말보다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 표현처럼, 적당히 괜찮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이 느껴지는 책이었음.



김혜진



딸에 대하여

(2017)


또 만났다... 무색무취 무(無)맛 책. 재미없는 책이야 종종 만났지만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이후로 이렇게 평 쓰기 어려울 만큼 아무 감흥 없는 책은 또 오랜만임(6화 참조).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인 만큼 두께도 얇고 내용도 어려운 편이 아닌데 어째선지 빨리 읽어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였음. 설마 다 읽고 책을 덮을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까 봐. 근데 우려가 현실이 됨.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임. 집 문제로 돈을 빌려달라는 딸(이하 ‘그린’)의 말에 엄마는 형편이 안 되니 차라리 집으로 들어오라 하고 그 말에 그린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동성 애인(이하 ‘레인’)까지 데려오게 됨. 호모포비아를 넘어 딸애의 동성애를 언제든 고칠 수 있는 일탈 내지 잘못 정도로 믿는 엄마는 이 동거가 불편하고 불쾌하기만 하고... 또한 엄마는 일하고 있는 요양원에서의 무연고 치매 환자, 젊은 날 전부를 약자를 위한 봉사에 힘썼지만 이제는 곁에 아무도 없는 ‘젠’에게서 자신과 딸의 미래를 겹쳐 보는데...


종합해서 살펴보면, 동성애자 자식을 둔 엄마의 시선과 독백 그 자체가 우선적인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음. 그동안 읽어 온 퀴어 소재 이야기는 화자와 당사자가 동일시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부모의, 그것도 남편을 사별한 아내가 외동딸을 보며 느끼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시선은 분명 신선하고 흥미로웠음. 그중에서도 자신의 상황과 타인의 상황을 서로 엇갈려 대입해서 바라보는 점이 좋았는데, 그야말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에 미친 엄마의 시선이 잘 나타나 있음. 무연고 치매 환자 젠의 모습에 힘없이 늙어가는 자신이나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늙을 딸의 미래를 대입해 보기도 하고, 크고 작은 문제가 보이는 가정이라 해도 아내와 남편,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딸애의 인생보다 더 정상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하며, 딸이 시위하는 현장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이 모든 걸 한 발짝 멀리서 그저 스쳐 지나가듯 바라만 보며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금방 잊게 되기를 바라는 시선. 동성애를 치유와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중년 기혼 여성의 눈에는 세상이 정말 이렇게 보일까 싶을 정도로 지독하리만치 꽉꽉 닫힌 마음을 잘 보여줌.


하지만 시선의 깊이와는 별개로 독백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정돈된 느낌이 강함. 단문을 활용한 돌림노래 식 중얼거림이 심해 먹먹함 이전에 텁텁함이 먼저 느껴짐. 같은 말을 의미 없이 너무 반복해서 표현함. 요양원에서의 일 – 내 집에 쳐들어온 ‘그 애’와의 동거 – 뭔가를 숨기는 듯한 딸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는 엄마의 모습을 안타깝고 어지럽게 표현하고 싶어 한 것 같으나 독백이 혼잣말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제삼자가 받아 적듯 기술적으로 나타나 있어서 슬픔이 반듯함에 갇혀 보이고 어떠한 계산적임까지 느껴짐.


현실적인 면을 더욱 부각하기 위해서인지 돈이라는 소재를 끌어오는데, 이 사태의 시작이 모두 돈 때문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음. 특히 딸과 돈의 연결성이 짙음. 이야기의 시작점이 돈이기도 하거니와, 엄마는 딸이 자신을 가족이라 여기는 마지막 요소가 돈과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하고 하다못해 딸의 애인에게 돈봉투를 쥐여 주며 내 딸과 이만 끝내라고 할 수도 없는 현실에 한탄하기도 함. 자신만의 공간에 불편한 이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게 바로 돈 때문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안타까움이 배가 됨. 레인이 그린의 엄마한테 큰소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패도 다름 아니라 자기도 월세를 내고 관리비를 낸다는 거임. 애인의 엄마에게 고작 소리 내서 한다는 말이 난 돈 냈으니 이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는 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겨우 그뿐이라는 게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염치없어 보이고... 그럼.


그런 면에서 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딸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보였음. 엄마 나 돈 없어 돈 빌려줘, 집에는 레인이랑 같이 들어갈 거야, 왜 걔한테 그런 험한 말을 해, 왜 이런 나를 이해 못 해줘, 어차피 엄만 이해 못 할 테니 뭐 하고 다니는지 안 알려줄 거야, 엄마는 늘 그런 식이야... 세상에 또 다른 ‘정상’을 외치느라 바빠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한테는(사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설득 없는 강요만 하고 있다고 느껴졌음. 물론 사랑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고 가치관 자체가 달라 제대로 듣지도 않으려는 엄마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지만, 딸이 아쉬울 때 찾아갈 곳은 결국 엄마였잖아... 특히 자기가 아쉬울 때나 연락해서 돈, 돈 거리는데 엄마가 다른 걸 퍽도 이해해 주겠다... 딸은 엄마의 태도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엄마를 대하는 딸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음. 서로가 서로한테 방법 한번 안 바꾸고 똑같은 방식으로 바라기만 함. 중요한 인물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딸의 캐릭터성 자체가 아무 매력 없이 밋밋함.


넓게 보면 다 설명 부족 탓이겠지. 그린과 레인은 7년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 세월 간 모녀가 겪은 갈등이나 아픔에 대해선 명확한 설명이 없으니 별수 없이 엄마 편도 생각해 보게 될 뿐임. 이는 화자가 엄마인 것과 맞물리게 됨. 독자는 자신의 동성애 옹호 여부와 상관없이 엄마의 시선을 따라 심상을 전개해 갈 수밖에 없으니 벽과 다름없는 태도에 진저리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의 답답함이 아주 조금 이해가기도 함. 노린 건가...?


아무튼 이렇게 독자가 양가감정을 느끼는 사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딸의 시위와 젠을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 이야기는 저 편으로 흘러가 버림. 그러니까, 대구를 활용한 상징도 좋고 담고자 하는 내용도 좋으나, 엄마의 ‘왜 딸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에서 ‘왜 나는 딸을 이해할 수 없을까’를 넘어 ‘나는 과연 딸을 이해하게 될 수 있을까’로 흐르는 생각 변화를 챙기느라 급급해서 책 후반부가 생각보다 격정적으로 흘러감에도 무언가 건질 틈 없이 정말 흘러가는 걸 바라만 보게 됨. 정말 아무 감흥 없이... 바라만 보게 됨. 그러니 아무 맛이 안 느껴짐. 그냥 그렇구나... 하게 됨. 엄마의 시선이라는 기법 외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음.


그 외에 짚고 싶은 것도 많긴 함. 삶과 죽음과 노동의 굴레나 강사의 수업 권한으로 대변해 동성애의 권리를 외치는 점, 성격인지 생존을 위함인지 모를 레인의 헌신적인 면모, 사실 이 모든 고통은 모든 관계에서의 이기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책에 물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땀과 눈물, 비를 이해의 확장적 요소로 볼 수 있다는 것 등... 근데 그런 게 별다른 특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음. 보통 책을 읽고 하루 이틀 생각을 가다듬으면 어느 정도는 감상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이렇게 오래 곱씹어도 뭐가 안 나오는 건 처음임.


이는 내가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 자식이 있는 부모도 아니기에 느끼는 한계가 아닐까 하는 비겁한 결론으로 도피하려 하는데, 나의 이러한 얄팍한 감상이 이 책이 소설이 아닌 현실인 이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다는 불안함과 미안함을 등진 채, 딸은 둔 엄마에 대한, 엄마를 둔 딸에 대한 이야기인 ‘딸에 대하여’ 평 마침.



윤성희



날마다 만우절

(2021)


궁금증을 자아내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엉뚱하고 유쾌한 어른들이 등장해 지극히 ‘K’스러움을 배경 삼아 병과 사고와 죽음과 감옥과 이별과 회상을 토대로 꿈과 거짓말을 쌓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이윽고 재회와 화해와 이해로 나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긴 단편집.


일단 작품 수가 많음. 열한 개나 됨. 그리고 짧음. 한 편당 30쪽 안팎임. 그러나 쪽 수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진 않음. 조금은 산발적인 의식의 흐름이 의외로 이야기의 흐름을 착실하게 끌고 가서 엔딩마다 여운이 깊음.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역으로 이 지점이 아니면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마무리가 많음.


문장이 쉽고 편안해서 재밌게 잘 읽히는 것도 장점임. 전반적으로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많이 남. 다만 사건에 따른 명확한 기승전결보다는 인물의 생각이나 회상, 행동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현실과 회상과 꿈, 머릿속 생각과 눈앞의 사건이 분명한 경계 없이 왔다 갔다 해서 은근히 정신 바짝 차려야 함. ‘아버지의 해방일지’(4화 참조)와 비슷한 전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나 정지아보다 의식의 흐름적인 면이 큼. 특별한 계기 없이 냅다 치고 나옴.


하나하나 따져보면, 우선 첫 문장이 강렬함. 대뜸 불쑥 말해주는 느낌임.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결과를 먼저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함. 웃긴 건, 그렇게 느낀 의아함을 이어지는 문장이나 문단이 책임지지 않음. 적어도 한 쪽 이상은 읽어야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게 됨. 그야말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함.


인물로는 주로 노년층 어른이 많이 등장함.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많이 등장하는데, 말과 행동이 엉뚱하고 유쾌함. 청소년 소설에서나 보일 법한 유쾌함임. 어른께 실례인 표현일 수 있으나 정말 통통 튐. 늙었어도 마음속에는 ‘소녀 감성’이 있다, 이런 게 아니라 천성 자체가 그러한 것처럼 그려서 작위적인 면이 덜함. 유치함과 철없음이 자연스러워서 책 속 인물이라도 나이 먹으면 다 고리타분할 거라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줌. 덕분에 무거운 상황이 중화되는 건 보너스.


노년층과 더불어 중장년층까지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정겹게 잘 그리나 어린 남자애를 화자로 세울 땐 조금 어색함. 나이 불문하고 수준이 비슷해 보임. 중고생이어도 죄다 초등학생 같음. 묘하게 불안정한 명랑함과 함께 뭔가 강박적인 순수함이 있음. 할머니 눈에는 손주가 몇 살이든 어리게만 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작가 나이가 그렇게까지 할머니는 아니란 말이지... 어른을 청소년처럼 그리는 건 뛰어나나 정작 청소년, 특히 작가 본인이 겪은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강함.


극 분위기는 향토적인 편. 배경 설명에 직접적으로 힘을 주지 않고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편이나, 그 안에 친근감 넘치는 단어들이 도포되어 있어 내가 겪은 시대상이 아님에도 향수가 느껴질 정도임. 왠지 모르게 만화 ‘짱뚱이 시리즈’가 생각났음. 물론 사연은 더 어둡지만. 어쨌든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우리나라 정서를 말끔하게 그림.


‘무거운 상황’, ‘어두운 사연’을 굳이 언급하고 ‘병과 사고와 죽음과 감옥과 이별과 회상’을 굳이 나열했던 이유는, 이렇게 사람이 잘 죽고 사고가 잘 나는 이야기들은 처음 보기 때문임. 정말 모든 단편에서 누군가 다치고 죽음. 심지어 그걸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편안한 문체로 알려줘서 가끔 소름 돋음. 회상 들어간다? 바로 누구 죽음. 안 죽었는데? 바로 사고 남. 사고 안 났는데? 병 걸리거나 돈 떼임. 정말... 모두들 파란만장하기에 그지없음. 문제는 그러한 설정(사고)의 키워드가 전 단편을 아울러 비슷할 뿐 아니라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어 이거 전 편에 나왔던 것 같은데? 이 책 혹시 연작인가? 공유하는 세계관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는 거임. 작품 수가 많아 더 헷갈리기도 함. 근데 정작 뒤돌아 찾아보면, 묘하게 다 다름. 근데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김빠짐(?).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3화 참조) 같은 구조인가 싶었는데 아니더라고. 그런데도 자꾸 나타나는 비슷함에 신경 쓰느라 현재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이 안 됨. 단점... 같은데 재주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함.


이는 꿈이라는 요소와 연관 지을 수 있는데, 이 모든 비슷하고 거기서 거기인 듯한 설정이 단순 자가 복제가 아니라 어째선지 꿈에서의 흐름처럼 보이기도 함. 물처럼 매끄럽진 않지만 고개를 돌리면 순식간에 다른 풍경이 나오는 꿈처럼, 한 쪽 너머 바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조를 통해 이 의문을 설득할 듯 말 듯 안 하려 함. 이어서 거짓말 역시 중요한 소재인데, 죽음과 사고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뭉그러뜨려 사실 이거... 전부 구라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함. 누가 나왔다 하면 죽고 다치는데... 이거 사실 꿈 아냐? 거짓말 아냐? 근데 현실에서 일어날 법 하기도 하고... 싶음. 읽기에 따라 어딘가 불편할 수도 있을 상황이 인물의 유쾌함과 평안하기 짝이 없는 문체와 대비되어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보이기도 함. 말 그대로 대비를 잘 살려서 작품 전체에 기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짐. 고로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단편 하나가 아닌 책 전체를 읽기를 권함.


이는 마지막 작품 ‘날마다 만우절’에서 극대화됨. 주인공들은 진실인지 아닌지 본인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건 마치 옆에 있는 다른 인물뿐 아니라 여기까지 책을 읽은 독자에게도 던지는 질문으로 보임. 자, 얘기 끝! 근데 이거 진짜게, 아니게? 내 이야기, 이 이야기, 이 책 전체가, 진짜일까, 아닐까? 꿈일까? 거짓말일까? 조금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함. 근데 뭐... 솔직히, 진짜여도 그만이고 가짜여도 그만 아니겠음? 믿어도 그만이고 안 믿어도 그만이지. 그저 흥미로웠다면 그것만으로 오케이. 누구든 며칠 지나면 까맣게 잊을 게 뻔한데 굳이 신경 쓸 필요 있나. 이야기란 사실 그런 건데.


그렇다 보니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화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 위의 화자가 해주는 구연동화를 보는 것 같음. 내용에 따라 진지할 땐 진지하고, 어두울 땐 어둡지만 근본은 웃고 있는 얼굴의 누군가가 해주는, 이 얘기와 저 얘기가 뒤섞여 해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 자, 얘기 끝! 하며 해쭉 웃는 누군가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그려짐. 딱히 위로를 목적으로 쓰인 글로 보이지 않아도 책 전체에 위로의 감성이 묻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 같음. 책 넘어 작가가 전해주는 분명한 따뜻함이 존재함.


마지막으로 작품 배치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 단순히 발표 순서에 따라 실은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고심 끝에 배치를 한 것 같아서 책 전체의 흐름이 좋음. 천천히 예열하다가 중간에 빵 터뜨리고 살짝 정리하는 듯하다가 마지막 작품으로 전체를 마무리.


그러니 마치 관록 있는 중견 가수의, 좋은 흐름으로 구성된 하나의 정규 앨범을 듣는 기분이었음.


추천작: 어느 밤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2013)


단언함. 지금까지 읽은 젊은 국문학 중 가장 재미없다고. 영국 추리문학상 대거상 받았다길래 궁금해서 읽었는데 아... 어떡하지... 진짜 재미없었음. 무(無)맛이 아니라, 그냥 정말 재미없고 내 입맛에 안 맞음. 어느 정도껏 재미없어야 평하는 맛도 있지, 느낄만한 재미랄 게 아예 없으니 글도 안 나옴.


할 말 없을 땐 줄거리 요약이지... 재난 지역을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의 프로그래머 ‘고요나’가 주인공임. 요나는 전조도 없이 어느 날부터인가 상사 ‘김’에게서 성추행을 당하기 시작하는데, 요나가 가장 놀라는 점은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김은 직장 내 ‘퇴물’들만 성추행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점임. 수석 프로그래머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업무 영역이 바뀌고 있는 것, 동료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 것, 상사에게 성추행당하는 것, 이 모든 것에 명확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 아, 그렇다면 이 책은 자연적 재난만이 재난의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도 재난과 다름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 어, 맞아... 근데 그게 그렇게 날카롭진 않아...


김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연대 농성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요나는 사표를 내는데, 사표를 낸 요나에게 김은 휴가를 줄 테니 쉴 겸 회사 상품을 출장 삼아 다녀오라고 함. 살릴지 죽일지 검토 중인 프로그램이 몇 있으니 갔다 와서 판단을 담은 보고서를 내라는 말과 함께. 요나는 고민 끝에 베트남 남부에 위치한, 사막의 싱크홀로 유명한 ‘무이’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 참가자이자 관찰자로 가게 되는데... 아, 그렇다면 이 책은 여행 기획자인 요나가 회사 상품을 직접 체험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불행을 가볍게 여기는지, 그 안에서 느끼는 연민과 안도와 우월감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비도덕적인지, 과연 인간이란 어디까지 상품화할 수 있는 존재인 건지 그 잔인함을 깨닫고 자신이 그러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것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건가? 어, 비슷해... 근데 약간 달라... 아니 사실 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뭐가 날카롭지 않고 뭐가 어떻다는 건가? 우선, 인물(특히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좀 심한 말이긴 한데, 형편없음. 나는 고요나라는 인물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음. 네가 이해 못 한다고 다 형편없는 거임? 자그마한 설득조차도 없으니까 그렇지... 행위만 있을 뿐 배경이 없으니 불편함을 넘어 기분이 나빠짐. 정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물음표투성이임. 나이는 서른셋에 직장에선 과장이라는 게 믿기지 않음.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을 필요 이상으로 멍청하게 만듦. 극한으로 최소화한 묘사를 통해 재난 당사자와 체험자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불친절함으로 불편함을 의도해 얄팍한 우월감을 꼬집어 이 상황을 납득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는 건가 싶은데... 글쎄... 솔직히 말해서 읽긴 읽었으니 어떻게든 좋게 해석해 주려는 거지, 그 정도로 번뜩이는 맛은 전혀 없음. 그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얼른 보여주기 위해 캐릭터를 학대하는 것 같음. 와중에 주변 인물들도 구멍 숭숭 뚫린 건 마찬가지라 인물이 아닌 소품으로 보임.


이해 안 가는 주인공과 더불어 사건 간 연결 구성도 뚝뚝 끊겨서 전체적인 구성이 박살 난 것도 단점임. 챕터별로 딱딱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뚝뚝 끊기는 느낌이 강함. 아무리 생각해도 개연성이 납득이 안 됨. 담고 싶은 말이 많아서 주체가 안 되는 건가? 아님. 의외로 주제는 명확히 떨어짐. 문제는 거대한 주제를 감싸는 소주제와 부연 상황이 철저히 겉돈다는 것에 있음.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진 직장 생활, 당혹스러울 정도로 어이없는 고립, 대뜸 꽃 피는 사랑, 완결을 위한 완결... 전혀 다른 사건을 부드럽게 하나로 엮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라면, 이 작가는 (적어도 이 책에선) 그 능력이 하나도 없음. 덕분에 그나마 존재하는 긴장감에도 코웃음 치게 됨.


그러니 곳곳에 무이마냥 싱크홀이 넘쳐나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저 시놉시스처럼 느껴짐.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다듬어야 할 것 같음. x 싸다 끊긴 느낌이 아니라 괜한 마음에 바지 벗고 잠시 변기에 앉았다 허탈하게 일어난 느낌임. 아무 소득이 없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쉬운 것과 별개로 가독성까지 안 좋음. 이렇게 상황이 안 그려지는 문체는 오랜만임. 어떤 배경도 어떤 상황도 어떤 작은 행위조차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음. 이렇겠거니, 하고 넘어가야 함. 거기에 꽂혀서 신경을 쏟는 게 아까움.


추리문학상 받았다는 이야기도 해보면... 국문학이 해외에서 성과를 올리는 것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기는 편이긴 하다만... 의아함을 안 가질 수가 없음. 그마저 폄하하는 게 아니라, 이 책엔 추리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임. 차라리 미스터리나 스릴러 상이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웬 추리? 미스터리 장르를 추리 장르 안에 있다고 보는 건가... 보통 반대 아님? 아무튼 상 줘서 땡큐긴 한데 이유는 잘 모르겠음.


해설도 짚고 갑시다. 어떻게 이런 책은 해설마저 재미없을까... 단순 내용 해설을 넘어 작가 자체를 끌어와 함께 평하는데, 애초에 해설이 크게 필요한 이야기인 것도 아니라 그냥 과한 올려치기로만 보임. 호들갑이 심함. 게다가 종장을 일부러 다르게 해석하는 건지 본인도 헷갈린 건지 왔다 갔다 해서 뭐지 싶음. 윤고은이라는 작가를 원래 알고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초면인 데다 책도 재미없었다? 바로 덮으셈.


정리하자면, 재난을 상품화한다는 참신한 소재 말고는 다른 어떠한 것도 흥미롭지 않고 답답하기만 한 책이었음. 재밌게 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 평에 시간을 쓰는 것도 아까운 책은 처음임.



+



김겨울



겨울의 언어

(2023)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자 작가인 김겨울의 산문집. 겨울서점은 이름만 알고 있지 본 적은 몇 번 없는데, 책이 위상을 잃어가는 시대에 책 소개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 고맙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해서 언젠가 이 사람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음.


내용 얘기를 먼저 하면, 작가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길게 알려줌. 쉽게 말해 김겨울이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애착과 미련에 대해 듬뿍 담겼다고 보면 됨. 여기저기에 연재했던 글에 새로운 글을 덧붙였다고 한 만큼 어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연속적인 글이라기보단 파편적인 일기 조각 모음으로 보이나, 읽다 보면 결국엔 삶, 그것도 ‘내가 살아가는(살아가고 싶은) 방식’으로 모든 내용이 귀결됨.


극단적으로 차갑거나 뜨거운 면이 없어 전체적인 온도가 미지근한 것도 특징임. 굳이 따지자면 처음엔 서늘한 편이지만 갈수록 따뜻하고 가벼워짐. 이는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의도인 것으로 보임.


다만 문장에 현학적인 힘을 많이 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경위, 즉 인생에서의 노력과 발버둥을 하하그러게요와 천운으로 포장함과 동시에 사실 나 진짜 힘들었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외치는데,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주제를 너무 현학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해서 글이 눈에 쏙 박히지 않음(철학과 시를 좋아한다고 부르짖은 만큼 이마저 의도한 건가 싶기도 함). 다른 주제에서도 마찬가지임. 작위적으로까지는 보이지 않으나 하고 싶은 말과 꾸며내는 방식이 헛돈다는 느낌이 듦. 그렇다 보니 글 자체가 아주 솔직하다고 느껴지지 않음. 어느 정도 가공이 있다고 서로 믿는 전제하에 펼쳐지는 포장된 솔직함 같음.


그리고... 작가의 행보나 필력과 별개로 어째선지 내가 어떤 사람의 상과 잘 맞지 않는지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음.


나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티 내는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음. 보통 이런 사람은 배수진 전법으로 주변에 퍼트리면서 자기 생각을 더 공고히 하거나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걸 영업 겸 자랑 겸 말하는데, (이 작가의 경우엔 프리랜서로서 자기 PR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걸 보면, 그냥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거지 뭘 그리 광고를 해... 하는 생각이 드는지라 난 이런 부류를 크게 좋아하지 않음.


게다가 온 지면을 활용해 자신의 관심사를 지나치게 자세하면서도 슬며시 알려준다고 해야 하나... 책을 딱히 다시 들춰 보지 않고서도 음악, 피아노, 사진, 철학, 시, 라디오, 비건, 과학, SF, 춤, 운동 등 작가가 사랑해 왔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들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임. 좋아하는 것에 침윤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는 분명히 있으나, 나 같은 심드렁인간은 견디기 어려운 피곤함도 있음. 나 철학 진짜 좋아한다? 나 ‘철학과’ 대학원 다닌다고! 나 사실... 피아노도 꽤 친다? 클래식 좋아하거든... 나 시 엄청 좋아해, 나 라디오 디제이인 거 알아? 스무 살쯤엔 사진도 좋아했는데... 나 사실 이과였다? 놀랐지? 하, SF 진짜 좋아... 나 춤도 좀 춘다? 운동도 배웠었고... 지금 이 세상이! 기후 위기가...! 아, 알겠어요... 책 제목으로 ‘겨울의 언어’가 아니라 ‘아무튼, 관심사’가 더 어울린다고 해도 욕이 아닐 거라 생각함. 이러한 시끄러움을 잔잔하게 나열한 것도 재주라면 재주.


요즘 에세이가 다 그렇지, 이럴 거면 뭐 하러 읽었음? 아니 언제 뭐는 뭐 이유 있어서 읽었나... 그냥 궁금해서 읽는 거지... 아무튼, 역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에세이가 문학의 한 갈래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됨. 보통 문학을 읽는 이유는 나 이외의 다양한 삶을 다채롭게 경험해 보는 것에 있는데, 작가의 생각(삶)을 고스란히 담은 에세이야말로 타인으로 살아볼 수 있는 최적의 장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물론 이 책을 통해 나는 ‘갓생’ 인플루언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어느 면에서 보나 무난한(?) 요즘 산문집이란 뜻. 다만 그러한 분위기에 비해 표지와 추천사는 굉장히 쓸쓸해 보이는 것이 특이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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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기념으로 젊은 웹소설 찍먹 후기나 비문학 찍먹 후기를 해볼까도 싶었습니다만... 위의 책들 읽기에도 바빠 다른 책은 손도 못 댔습니다, 하하. 언젠가는 해볼 생각이긴 합니다.


그래도 만우절에 ‘날마다 만우절’ 후기를 올리게 되어 뿌듯합니다. 사실 계획한 건 아니고 읽고 보니 3월이고 올릴 때 되니 4월임; 이런 재밌는 우연으로 혼자 즐거워하는 것도 책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솔직히 뭔 상관인가 싶긴 하지만 대충 넘어가자).


그럼, 모쪼록 다들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