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책을 근처 동네 헌책방에서 발견하고 1코펙으로 샀는데 그때는 애써 번 돈을 헛되이 쓴 것 같아 반쯤 후회했습니다.
얼마 후 몇 페이지를 읽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마치 돌풍이 등을 밀고 있기라도 하듯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에 접하게 되고, 마녀의 빗자루에 올라타서 세상을 내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의 저는 그 전의 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 말라무드 <구두 수선공> 들뢰즈의 <스피노자>에서 재인용
저 밑에서 <스피노자의 뇌>가 어떠냐는 질문을 받아서 맛보기로 올림
이 책은 의사이자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를 역임한 뇌신경학자 다마지오가 그의 평생의 연구 테마중에 하나인 <느낌>이라는 개념어를 스피노자의 저작으로부터 읽어내고 풀어가는 책임.
철학을 과학으로 풀어나가는 딱 내 취향 저격의 이런 책에 안 꽂힐 수가 없지 ㅋ
스피노자의 <에티카>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관하여"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질만한 주장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다마지오도 이것에 감명 받은듯.
개인적으로 별 4개반
뭔 말인지 이해가 안 되네. 철학자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것만큼은 잘 알겠음
와 넘 고마워요
느끼고 아는 존재 잼게 읽었는뎅
해당 저서를 저도 예전에 탐독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간략한 리뷰만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 해당 저자는 뇌에 대해 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자가, 그러한 자신의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스피노자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더 정확히는 '스피노자의 텍스트를 철학적으로 분석/해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텍스트로부터, 실체일원론적 토대를 기반하여 또는 실체일원론적 철학과 연관지어서 현대 뇌 과학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2) 그러나 저는 이러한 텍스트로부터 이를테면 '현대 과학이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을 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 철학의 주요 문제는 여러 학제 간 분과 과학들과 협업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철학적으로(더 정확히는 철ㅖ
데닛의 <다윈의 위험한 아이디어>도 읽고 <해명된 의식>도 읽었지만 결국 데닛형은 철학적 논의를 진행시키는데 현대 과학의 성과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고 (즉 철학 with 과학) 다마지오의 이책은 현대 과학의 중요한 성과를 스피노자의 개념을 축으로 접근하는거지 (과학 with 철학) 근데 "철학계 내부에서"가 그렇게 중요한가? ㅋ 철학계 문제도 과학적 성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힘든 세상이잖아 형이상학의 영원한 주제 시간 공간 테마도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아 근데 개인적으로 콰인과 그 제자 데닛 좋아함 ㅋ
철학계/철학과 내부에서) 치밀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방향성으로 참고하고자 한다면 데닛과 같은 학자의 텍스트를 참고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글쓴이님의 말처럼 이 책은 "철학을 과학으로 풀어낸다", 곧 "철학의 제문제를 과학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용법에 따라서) '해결'했다"기보다는, "철학 텍스트에서 얻은 아이디어/문제의식/이론적 토대를 기반하여 현대 신경과학의 성과를 해설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 양자 간 의미상의 차이는 글쓴이님도 잘 파악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戸田山和久라는 "철학자"는 철학을 <개념 공학>으로 접근하자고 열일하고 있는데 ㅋ
〈概念工学〉宣言! ー哲学×心理学による知のエンジニアリング
https://www.unp.or.jp/ISBN/ISBN978-4-8158-0941-6.html
맞습니다. 저의 댓글은 "철학을 과학으로 풀어내는"이라는 말의 실질적인 내용을 재정립/재검토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선취한 댓글 논의를 경유해서 보자면, "스피노자의 축으로 보는"이라는 것이 여전히 모호한 표현이라는 것이 확인됩니다. 또한 철학과 과학을 유형론적으로 구획하고 논의를 전개하려는 방식을 취한다면, x학계의 내/외부, 즉 구획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논점이 됩니다.
개념 공학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는 사실 20세기 후반부에도 있었던 논의입니다. 이른바 영미 분석철학계에서 선취된 논의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개념 공학'으로 접근하자는 '분석철학적 기획의 파생 문제'와, 글쓴이님이 해당 저서에 대해서 모호한 리뷰를 한 것에 대한 저의 지적이 지니는 타당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 그리고 저 토다야마의 <개념 공학>은 저자 주장하길 캐플렌이 <언어를 수리한다>에서 제창한 개념공학과 다르다고 주장하더라 어쨌던 철학계 내부에서 <공학적 관점>에서의 철학하기가 가능하다면 이건 철학인가 공학인가
ㅇㅇ 내 표현이 모호했던 점은 있는데 x학계의 내/외부, 즉 구획 문제 -> 이거 명확한 구획이 불가능하다는게 현대 철학의 입장 아니냐 단지 그 사람이 어디 학부 출신이냐로 구분하나 ㅋ
저는 '특정 학부 출신'을 강조하는 이를테면 '학ㅂㅓㄹ주의' 같은 것을 의미한 게 아니라 '학술장' 같은 개념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이었습니다(부르디외나 인지사회학 등). 그리고 심지어 저는 글쓴이님이 일종의 범주 오류를 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애초에 개념공학이니 응용인식론이니 등의 학제적 담론을 하기 위해서는 되려 학문 간 경계를 확고히 하는 이론적 기반이 요청됩니다.
여기서 철학이니, 과학이니, 공학이니 하는 개념 분석적인 시비를 건다고 느껴지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되려 글쓴이님이 원래 남겼던 리뷰 원문에서 강조되는 '학제 간 경계' 담론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부르디외나 인지사회학은 읽지 않아서 모름 근데 그 경계가 명확히 구획될 수 있는거냐고 과학의 연구 프로그램이란거 자체가 명확히 구획화 될 수 없는데 뭐 대략 확률적 분포로 그려내면 설정 가능하긴하겠다. 딥러닝한테 열심히 학습시키면
근데 학문간 경계를 명확히 해서 얻는 이점이 뭐야? 몰라서 묻는건데
글쎄요. 학문 간 경계가 명확한 것이 곧 '어떠한 경우에도 필연적으로 구분된다'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논리적 기반이나 방법론적 틀, 또는 대상/연구주제의 차이를 두어서 구획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학문 간 경계를 구획함으로서 얻는 이점이라고 한다면, 경제적인 분업의 논리 말고도 여러 간/다학제적인 프로그램이 이미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냥 너무 쉽게 예를 들어서 '증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포맷 증명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하고, 그것을 기획할 필요는 전연 없어 보입니다.
학문 간 경계를 구획함으로서 얻는 이점이라고 한다면, 경제적인 분업의 논리 말고도 여러 간/다학제적인 프로그램이 이미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뭘 증명했는데? 잘 이해가 안감
또한 나아가 수학적 탐구에 있어서, 실제 자연계와의 (이것도 참으로 복잡한 문제이긴 하나) 대응 관계를 상정하고 그것을 연구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학문 간 일정한 구획 또는 일정한 경계가 있다는 것과, 간/다학제적 프로그램이 실천적으로 요청된다는 것 역시도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증명기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습니다. 달리 말해보자면, 가령 저는 컴퓨터 사이언스에서 서지학적인 유연관계를 따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이는 학문 간 경계 뿐만이 아니라 순수 이론 분야와 응용 분야의 구분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오히려 되묻고 싶은 것이, 정확히 학문 간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구체적 사례에서부터 논의를 출발해보고 싶습니다.
행동경제학/프로스펙트이론
위의 것이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인가요? 가령 그런 식이라면 '비형식논리학'이나 '수리물리학' 같은 것들도 학문적 구획에 있어서 문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경제학의 기본적 가정이였던 효용가설을 심리학/경제학자인 사람이 새롭게 제시한 가설로 대체함 이건 심리학인가 경제학인가
저는 지금의 이 대화가 표현상의 중의성 문제 같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심층의 이론적 문제가 실재하기에 야기되는 입장 차이인지조차 모호하게 다가옵니다. 적어도 제가 볼 적에 위에서 했던 논의들을 보자면, 저는 오히려 각기 상이한 학문 분과를 허용하고 승인한 채 이들 간의 긴밀한 협업을 요청하지 말거나 문제삼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과연 이에 대한 이점은 도대체 뭐가 있을까요?
난 학문적 도메인은 다루는 대상과 방법론에 의해 확률 분포적으로 정해질 수 있지만 그 경계선은 늘 유동적이며 변화한다고 봄
어떤 도메인의 문제는 새롭게 도입되는 대상과 방법론에 의해 변할 수 있음. 근데 "철학"은 참 애매하긴 하네 얘는 "개념"의 생산과 응용을 다루니까 범위가 너무 넓기는 함 ㅋ
무슨 말을 하고자 하시는지가 애매합니다. 대상과 방법론에 의해 "확률 분포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것은 동의합니다만, 경계가 없다는 것과 경계가 가변적이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카테고리론이라는 수학에서 시작되었는데 논리학이라는 대상에 카테고리론을 쓴다면 이는 철학인가 수학인가? 확률 분포적이라는 건 위에서 말한 프로스펙트이론을 다룬 논문을 일정량 모아 놓았을때 예를들어 "마케팅" 등의 경제학 관련 키워드가 나오는 빈도를 조사해보면 어느 정도의 확률로 경제학에 관련된 논문이란 걸 예측할 수 있다는 걸 말한 거였음
난 경계가 "없다고" 말한 적이 없음.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했지
그리고 당연히 경계는 가변적이지 결국 장르나 학문의 도메인이라는게 "가족 유사성" 아닌가?
제가 보았을 때, 이 논의는 비교적 느슨하고 엉성한 의미에서의 정의 문제를 다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는 학문이 기술적인지 아니면 규범적인지에 대한 논의만 보더라도 '경계가 명확하다'는 것에 대한 논리적 해결을 할 수는 있습니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오자면 '명확한 구획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저는 'yes'라는 입장에 입각해서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난 "명확한" 즉 100% 확실한 구별은 가능하지 않다고 봄 그리고 이건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쪽이 유리함 명확하지 않은 반증 하나만 찾아내면 이기는 게임이니까
이게 가능하면 도서관 책 분류할 때 단 하나의 태그면 끝나겠네?
그리고 통상 정의 문제는 끊임없이 메타-카테고라이징이 가능하다면 이론적으로는 처리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수리논리학에서의 타입이론과 같은 분야에서도 솔루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클리어한 정의를 구획하는 시도라면, 이를 정의문제로 치환해서 논리철학적 수준에서의 타입이론/이론 변형을 하는 제가 더 유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인가 경제학자인가 게임이론은 경제학인가 사회학인가 정치학인가
생물학인가?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 '클리어한' 답변을 기대하면서도 갑자기 유형론이나 토폴로지가 아니라 확률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로 전환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반례가 아니라) '반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정의문제인가/사회 인식 조사의 문제인가/서지적인 분류 문제인가 .... 등 문제 특성을 먼저 명확히 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더 정확히는 이로부터 논의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자 그럼 철학의 클리어한 정의부터 부탁
그러나 이 논의의 순서는 이 문제 특성을 명확히 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글쓴이분께서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의를 내린다거나/정의역을 치환하는 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너무 쉬운 문제입니다. 만약 이에 대해서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 문제를 분류하고 그에 대해서 가능한 여러 논증들을 대조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다짜고짜 (무엇에 대한 클리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클리어한 정의를 내놓아보라"는 것은 선결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은 논의 방식일 뿐입니다.
클리어한 정의가 있어야 구획이 정해지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 정의를 벗어나면 not(x)가 되고
그냥 비트겐슈타인 선생의 가족유사성으로 퉁칩시다 ㅋ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가 요청하는 논의 방향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래서 저와 논의하고자 하는 본래 문제가 뭐였었죠?" 이걸 상실하지 말고 명확히 하자는 것입니다.
본래 문제는 도메인이라는게 "100% 명확한가"이지 난 경계는 늘 변하며 애매한 그레이도 존재한다는 거고
그리고 도메인의 정의는 "가족유사성"으로 정해지기때문에 단일의 내포적 정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제가 봤을 때, "도메인이라는 것은 100% 명확한가(고정적인가)?"하는 문제는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은 최소 다음과 같이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1) 'x학'이라고 표현되는 학문 분야의 외연은 바뀔 수 있는가? 2) 'x학'이라고 표현되는 것의 논리적 토대를 성립할 수 있는가? 3) 'x학'이라는 카테고리에는 어떠한 문서를 넣고 어떠한 문서를 넣지 말아야 하는가? 기타 등등 그래서 저희의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1) yes 2) 내포적 정의라면 no, 비슷한 유를 모아서 구별할 수 있느냐면 yes 단 주관에 따라 달라짐 3) 이건 확률적 즉 2)에 의존
아니ㅋㅋㅋㅋ 여기서 원래 묻고자 했던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저 항목에 대한 본인의 단편적인 견해를 작성하라는 진람표를 제출한 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원래 묻고자 한게 도메인의 "100% 명확한" 구획은 가능하냐였잖아 위의 대답으로 난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말한거고 ㅋ
도메인의 "100% 명확한" 구획이 가능하다고 넌 말한거고 그럼 예를 들어달라는거지 너 주장의 예
밥먹고 올게 계속하자 ㅋ
일단 기초적인 것 하나를 지적 아닌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100% 명확한'이라는 표현이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명확하다/클리어하다라는 것은 포말로직에서는 '오직 100%인 것'만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p-value를 논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형용모순입니다. 빈도를 전제하거나 논하는 게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흥미를 느끼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저는 사실 문제 자체가 구체화되지 않은 이 소모적 논의에 흥미가 없습니다. 논의를 살펴보면 글쓴이분께서는 표준적인 철학적 논의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에 대한 용법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가령, 글쓴이분이 학적 구분 문제를 할 때에 그걸 확률론에서 논하는지, 집합론에서 논하는지, 사회인식적 차원에서 논하는지, 서지적 분류가 가져다 줄 효과 차원에서 논의하는지 조차도 스스로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 상세한 입론을 먼저 하신다면, 그때에 다시 논의를 할 의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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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멀하게 철학의 정의나 내려주고 가라
넌 대답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여러가지 끌고 들어오는게 논쟁의 승리방식이냐 ㅋ
자의적이지 않고 포멀한 철학의 정의 그 자체가 궁금하다. 이게 가능하다면 명확한 구획화가 가능하다고 인정하지
구체적인 거 가지고 이야기 하자며
간단한 질문 하나에 뭐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끌고 들어오는게 많은지 ㅋ
이거 뭐 철학 보따리상인가 ㅋ
호라이즌님 님덕에 디시끊기로함 ㄱㅅ
호라이즌이 졷병신이니 쓰니는 신경끄셈 난 내가 한 명의 좆병신이 띠꺼워서 클리너 돌릴 거라곤 생각도못함 호라이즌아 니가 나한테 이김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