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cea8176b0836ff038e998bf06d60403722a0c932b0a88806c



호메로스의 시 <일리아스> 안에서 작동하는 힘의 존재는 자명하다. 운명이라는 필연성, 그 필연성을 부여하는 존재가 바로 힘을 가진 존재다. 그들은 타인의 존재를 왜곡한다. 인간을 죽여 시체로 만들면 인간은 곧 사물로 전락한 것이다. 힘은 존재를 전락시킨다. 힘을 몸에 가하면 인간은 사물이 되고, 힘을 영혼에 가하면 인간은 노예가 된다. 그리고 힘을 나라에 가하면 전쟁이 난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삶은 왜곡된다. 일리아스는 모든 인간들의 존재를 왜곡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힘의 시다.

 

시몬 베유는 시의 행 한구절 한구절을 인용해가며 힘의 존재를, <일리아스>가 힘의 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럽게 반복되는 귀납의 과정에 되려 맥이 빠진다. 모든 것을 힘의 논리로 치환해버리고서 무언가 탓을 할 것만 같다. 고작 그러려고 일리아스까지 들먹여가며 글을 썼을까? 이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걸까? 이제와서 일리아스는 잘못된 시 라고 주장할 셈인가? 그러나 그녀의 강조점은 일리아스에서 작동하는 힘 그 자체보다 힘의 사용 방식 위에 찍혀있다. 그리고 그 사용 방식은 작은 맥락에서 서로 달랐다. 이 작은 차이들을 이끌어내는 시몬 베유의 풍성한 표현들은 작고 산발적인 논리의 도약을 일으킨다. 강물 위에 띄엄띄엄 놓인 돌다리 같다. 그녀는 힘의 사용에서 힘의 역설로, 힘이 작동하지 않는 구절과 그 속 녹아있는 시적 정서로, 그럼에도 힘이 작용한 구절의 적나라함으로, 이 돌에서 저 돌 위로 가볍게 넘어다니며 힘의 시를 건너간다. 나도 그녀를 따라 강을 건넜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힘의 존재를 강조하던 풍경은 힘의 역설을 강조하는 풍경으로 바뀌어있었다. 힘이 왜곡해버린 존재에 대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슬픔. 그것이 힘의 역설이었다.

 

<일리아스>는 파도가 해안가로 쏟아져 흘러내리는 물과 밀어내는 물이 부딪혀 바스러질때서야 그 하얀 물거품이 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리듯이 존재와 역설을 노래한다. 힘은 사랑과 연민의 가치를, 죽음은 생의 가치를, 인간을 지배하는 신들의 힘은 도리어 인간들의 애씀을 드높인다. 호메로스의 노래 속에서 양극단의 존재는 서로를 보완한다.

 

그녀의 말처럼, <일리아스>만큼 아름답고 진실된, 그리고 공평한 시가 있을까? 힘의 존재를 전제하고, 힘의 사용을 그 어느 작품보다 정직하고 공평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시적 정서가 깃듬을, 힘으로 왜곡되어버린 모든 존재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담아낸 시가 있을까? 시몬 베유는 단호하게 말한다. <오딧세이아>조차 그러지 못했다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진 단순성이라는 정신을 지금의 인간들은 잃어버렸다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몇몇 천재들만이 그 정신을 내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네레우스의 딸들이여, 나의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내 마음속 슬픔이 무엇인지 듣고 헤아려주세요.” 라며 자신의 마음을 노래했던 테티스에게서 그 정신의 일면을 배울 수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