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4ea8977b48b68f23deb83e7449f2e2d62c72da30fe56c942a9de1


일단 구로사와 기요시에 대해 독갤러들 중 모르는 이들도 많을테니, 소개를 간단히 할 필요를 느낀다. 1983년 데뷔해서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영화감독으로 장르영화를 주로 만드나 그 속에 자신의 사회에 대한 관점을 녹인다. 대표작으로는 큐어, 회로, 절규, 도쿄 소나타, 스파이의 아내등이 있다. 특히 큐어는 필자가 꼽는 최고의 영화중 한편이며 90년대 수많은 한국의 시네필들에게 큰 충격을 준 영화이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의 팬으로 유명하다. 또한 최근에 찍은 스파이의 아내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기요시 감독의 강연들을 수록하였으며 1부와 2부로 나뉘어진다. 1부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했던 강연들을 수록하였으며 2부는 이케부쿠로 시네마 로사에서 21세기 영화에 대한 4번의 연속강연을 수록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독이 실제로 영화를 찍을때 하게 되는 고뇌들과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감독의 고민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질문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 고민들을 이 글에서 전부 나열하기엔 분량이 지나치게 늘어날뿐더러 여러 강연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전부 적기에는 글이 몹시 산만하고 지리멸렬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이 책에서 필자가 느낀 가장 핵심적인 지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21세기 영화에 대해 '불시에 드러나는 외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우선 책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감독은 영화의 역사에 관하여에 대한 강연 도중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의 출구>를 설명한다. 그는 <춤추는여자>,<권투>가 시대적으로 먼저 나왔음에도 그것들은 그저 움직이는 사진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그 두 작품들은 각각 춤추는 여자와 권투장면을 담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영상이지만 영화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공장의 출구>는 무엇이 다르길레 영화인 것인가?  <공장의 출구>에서 화면에 담기는 것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나와 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중반부에 소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뛰어가고 마차가 출현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나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공장의 출구>는 그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세계를 오려내는 행위이다. 이것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눈 앞에 있는 세계를 네모난 프레임으로 오려내는 것이 영화이다. 당연하게도 화면에 비치지 않는 것들이 가득하게 된다. 여기서 <공장의 출구>의 복잡성이 나타난다. 앞의 두 영상들과 달리 영상을 찍기 이전의 시간이 존재하며 영상이 끝난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실감을 느끼게 한다. 그저 시작과 끝이 있는 영상을 넘어 무한한 시간 속에서 특정한 시간의 1분을 오려낸 것이다. 그저 움직이는 것을 넘어 세계의 시공간을 오려낸 것이다. 영상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시간이 있었으며 끝난 이후에도 시간이 있다. 프레임 밖에 비치지 않는 무수히 많은 현실이 존재한다. <공장의 출구>는 화면에 비치지 않은 것, 비치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것이 구로사와 기요시가 말하는 영화이다.
이제 우리는 '불시에 드러나는 외측'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직면하는 문제가 아닌 그 무대 외측이 신경쓰인다고 감독은 말한다. 영화의 공간 밖, 혹은 프레임 밖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다. 이는 앞서 말한 <공장의 출구>와 다르지 않다. 그 예시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을 든다. 괴물의 대혼돈의 클라이맥스는 한강 옆에서 진행되어 연기 가득한 배경을 뚫고 서울시가 그대로 노출된다. 그 순간 괴물이라는 픽션과 서울시라는 픽션의 성립을 거부하는 존재가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게 된다. <우주전쟁>에서는 톰 크루즈가 조금전까지 지니던 피스톨이 살육에 사용되는 대목이 창 너머로 목도되는 순간 스크린 외부의 폭력은 스크린 내부와 전혀 무관하지 않게 되며 내측에 그 폭력의 원인이 직결된다. 또한 강에서 시체가 내려오는 장면은 시체가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기에 화면에 비치지 않는 외측에 있는 폭력을 연상케 한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들을 읽으며 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21세기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이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으로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처음 찍은 장편영화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에 대해 프레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매체이며 그렇기에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논조의 발언을 했었다. 그의 영화들은 지속적으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탐구했으며 지금부터 언급할 <텐>은 그가 만든 작품들 중 그 실험에 있어 가장 멀리 나아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모든 장면이 자동차에서 이루어지며 거의 모든 장면이 두대의 카메라로 찍은 두개의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택시를 타며 운전사와 손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이란에 존재하는 사회적 모순들이다. 이 영화는 영화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실험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를 통해 디지털 카메라가 가진 미학의 핵심은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를 포착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이라 말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연출을 완전히 포기한 채 프레임 속에 무엇을 넣을지를 고뇌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 영화의 모든 프레임에 들어있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테헤란이다. 자동차의 창문들을 통해 관객은 영화 내나 테헤란의 풍경을 인식하게 된다. 기요시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자동차 안은 내측, 창문 밖의 풍경은 외측이다.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허나 창문의 밖, 즉 외측이 언제나 보이게 된다. 인물들은 택시를 타고 내리게 된다. 그들은 자동차의 밖, 프레임의 밖으로 나가게 된다. 관객은 외측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여기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 일단 기요시 감독의 영화론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것 같다. 결국 글이 조금 산만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다만 여기에서 내가 적은 내용이 책의 전부라 생각해선 안된다. 기요시는 이 책에서 내가 요약한 내용 외에도 흥미로운 질문들을 여럿 던진다. 또한 나의 이 감상문이 기요시 감독의 영화론을 왜곡하고 있지 않나 걱정되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구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가로 부탁하자면 히갤로, 누갤로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