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024.4.4.04:18

스트릭랜드는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다. 아내와 두 자식을 가정에 두고 있으며 그의 삶은 평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모두를 저버린 채로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해서 런던을 떠나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궁핍하게 살지만 스트로브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 어정쩡한 스트로브는 그를 딱하게 여겨 욕을 들어먹으면서도 스트릭랜드를 집에 들인다. 그것은 비극이 되어 아내 블란치가 스트릭랜드를 따라가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하는 그를 끌어들이려 하다 자살한다. 이후 스트로브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찾아가 우연히 스트릭랜드가 그린 블란치의 그림을 보게 되어 그림을 찢으려 한다. 이 순간, 스트로브는 예술에 대한 경외를 느껴 그림을 찢으려는 행위를 멈춘다. 이후 스트로브는 고향으로 떠나고, 서술자는 스트릭랜드와 말을 섞다가 그를 보낸다. 스트릭랜드는 마르세유에서 잡역을 하다 타히티로 가고, 그곳에서 재혼을 해 그림을 그리다 나병에 걸려 걸작을 그리고선 죽는다. 유작은 두 번째 아내인 아타에 의해 불타고, 서술자는 이런 스트릭랜드의 일생을 첫 번째 아내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2.18에 읽기 시작해 오늘에서야 완독했다. 앞으로는 단기간내에 완독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읽은 기간이 늘어지니 감상이 덜해진다.

스트릭랜드는 역겨운 인간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자 가정을 내팽겨치고, 블란치가 죽어도 그녀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에게 잘해주는 스트로브에게는 한껏 이죽댄다. 자신이 나병에 걸리자 슬퍼하는 토박이들과 아타에게는 조용히 하라며 눈물 흘릴 일이 아니란 식이다. 남에게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는 세속을 거부한다. 안락의자에 앉기 싫어하고, 담배나 물감을 사는 날이 아니면 파페에테에 나오려 하지 않고 숲에 산다. 이런 스트릭랜드의 모습은 이상만을 바라보며 사는 터무니없는 허상 같아 보인다.

스트릭랜드는 그러면 세속의 영향을 모두 지웠을까? 그건 아니다. 담배와 물감, 자신이 그림에 집중하도록 돕는 아타, 체스게임, 블란치와의 육체적 관계까지.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 스트릭랜드를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한다. 서술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사회적 존재니까. 세속의 영향을 모두 떨쳐내진 못했지만 그런 것들을 혐오했다. 블란치와의 관계가 끝나면 진절머리를 떨고, 아타를 두들겨 패고, 그의 화실은 허름하기 그지없다.

누구나 자신을 가두는 굴레에서부터 해방되고픈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는 극대화되어 스트릭랜드로 표현된다. 처음에 역겨웠던 그의 모습은 의사가 그의 집에 방문해 사방을 둘러보는 대목에 이르자, 스트릭랜드의 예술성에 몰입하게 된다. 우리는 충동에 휩싸이고 싶다가도 일일이 따져가며 손익을 재서 스트릭랜드처럼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간 예술가는 가식적인 세속과 대비되어 부각되고 우리는 경외한다.

작품에서 스트릭랜드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은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지위를 포기하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난 아브라함. 스스로 일궈낸 집을 보며 성취를 느끼는 브뤼노 선장. 그리고 내 생각에 아타도 스트릭랜드와 비슷하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때릴거라는 스트릭랜드의 경고에도 그를 따라나서고, 나병에 걸린 스트릭랜드가 자신을 떠나라 하자 그는 자신의 남편이고 내 남자라며 그가 죽을 때까지 간호한다. 이 역시도 세속을 벗어난 초월적인 모습이 아닌가.

독자는 서술자다. 스트릭랜드를 밀어내면서도 그에게 이끌리고 그림에 감동한다. 그를 이해할 수 없어, 진리나 열반과 같은 단어로 그를 표현하려 한다. 아브라함을 비웃는 알렉 카마이클 앞에서는 그가 가진 기사 지위를 의식해 대꾸하지 못한다. 충동대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세속의 비릿함에 입을 다물지만 초인을 동경한다.

즐거운 소설이었다. 작품해설에서는 달을 동경의 대상으로, 6펜스를 세속의 가치에 빗댄다. 그리고 스트릭랜드의 윤리의식이 세속의 것과는 달라 그가 사건에 개의치 않았다고 설명한다. 스트릭랜드에 비해 우리의 윤리의식은 세상의 것과 유사하다. 우리에게 각인된 견고한 도덕은 우리가 스트릭랜드처럼 살아갈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스트릭랜드를 동경하지 않는가? 도덕을 저버린 그를 역겨워하면서도 그의 그림을 묘사하는데에서, 작품을 따라가며 그의 결단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누구나 마음 속에 꿈을 가진다. 그것을 이루려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꿈을 외면하는 삶은 빈 껍데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