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 당초기 명장이자 명재상인 이정의 또 다른 이름이 이위인데 이위가 당태종과 고금의 군사의 일을 묻고답했다는 심플한 제목의 병서이다.
당태종이 연개소문과 내 병법을 비교하면 어떻니? 님 돌궐도 털어먹은 명장인데 연개소문 레이드 뛰실?
ㅇㅇ 다 갈 것도 없음. 연개소문 그 새끼 자기 병법 좀 안다고 자만하고있음. 정병 3만만 주면 내가 연개소문 잡아올게요.
고구려 정벌도 의논하고 있는 대목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이정이 돌궐을 정벌해서 힐리가한을 사로잡은 연도는 626년,
연개소문의 정변이 642년, 당태종의 고구려 정벌 개시가 645년이니 아마 이위공문대는 연개소문의 정변 642년과 645년 사이의 어느날에 있었던 대담일 것이다.
이 또한 이상하다. 이정의 생몰연대는 571~649년으로 대담즈음에는 70대 노인이고 이미 은퇴했는데 무슨 현역지휘관으로 뛴다는건가?
뭐 원로 자격으로 국가원수와 대담할 수도 있는거 아닌가. 일단 넘어가자.
기이한 말은 계속 더 이어진다.
마 자신있나? 그래서 고구려 어떻게 이긴다는거임?
정공법. 그냥 최선을 다해서
?? 님 돌궐 정벌 때는 기만책으로 이기지않음? 갑자기??
알다시피 당태종이나 이정이나 젊은시절 수제국을 겪어본 사람들이다. 수양제가 100만대군 동원해서 정공법으로 고구려 공격하려다 실패한 경험을 모를 리가 없다.
100만으로도 안되는걸 3만으로 해보겠다는건가?
그리고 연개소문이 자기 재주를 믿고 방심하는 틈을 노린다고했는데 불의에 소수정병으로 들이치는 전술은 정공법이 아니라 기병술이라고 하는게 더 문맥상 적절하다.
옛날 제갈량은 맹획을 일곱번 잡고 일곱번 놓아준 적이 있는데 이게 바로 정공법임
뜬금없이 칠종칠금 드립을 친다. 아하, 검거. 칠종칠금은 원말명초 소설가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고사이니 이정이나 당태종이 칠종칠금을 알았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이위공문대의 저술시기는 최소 나관중 이후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 또한 그리 병법에 통달하지않은게 비유 또한 이상하다. 맹획은 자기 남만땅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이합집산인채 싸워야했고 일곱번 싸워서 운좋게 한번만 이기면 되겠지 요행수만을 바랐던 어리석은 자이다.
연개소문은 쿠데타로 전권을 장악했고 이정 스스로 인정할만큼 병법의 대가인데 어떻게 연개소문을 맹획에 대고 비교를 하나?
맹획은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에 일곱번이나 싸운 끝에 마침내 자기 역량을 인정한거고 당제국은 연개소문이 살아있었을 때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죽은 후에야 기만책으로 고구려를 병합하는데 어째서 정공법으로서 승리했다고 하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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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의 또다른 이름이 이위라니 뭔 소리냐. 이정이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져서 나온 존칭임. '이씨 위국공'이란 뜻으로 이위공. 전근대 한중의 문화에선 (부르는 사람이 불리는 이의 부모나 스승, 임금이 아닌 이상) 상대의 이름을 곧바로 부르면 상대를 무시하는 뜻임. 그러니 이정을 긍정적인 의미로 끌어들인 이위공문대가 이정을 이름으로 부를 리 없음
ㅇㅇ 맞다. 위국공. 그냥 이해 빠르라고 또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인정. 그래도 이위공이 이정을 가르키는 또다른 이름이라는건 같으니까. 난 내용상의 허점, 연도상 나올 수 없는 고증으로 위서라고 봄. 진서라도 후대사람들만이 당나라가 최종승자라는걸 알았을테니 이정을 띄워주려고 가필한 의혹이 있음. 아니면 군사기밀이라서 누락이 많이 되었거나 - dc App
고증학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