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정말 뜬금없이 의식 위로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요즘에는 희미한 빛이라는 말이 그렇다. 내 인생의 어느 부분이 희미한 빛의 특성과 비슷해서 이 말이 난데없이 떠오르는 걸까. 아무리 현실적인 사람이어도 가지고 있는 어떠한 환상, 나뭇잎 사이를 통해 들어오는 채색된 빛, 아니면 죽음이라는 절대성 앞에서 있는 우리 인생 그 자체, 혹은 전부.
침전, 떠오르는 또 다른 단어. 조금 더 뚜렷한 상과 함께 나타난다. 천천히 그리고도 조용히 가라앉는, 그런 상. 침전이라는 단어에 색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하관데 푸른, 하지만 원색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깃발에 어두운 그러한 것. 오히려 행복하게 열심히 살수록 나라는 존재는 그저 깊은 망망대해 속에서 가라앉고 있는, 그 도중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좀 차 든다. 사람들이 신이라는 절대성을 믿으며 죽음이 부정할 때, 나는 신을 부정하고 죽음에 절대성을 믿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그저 이 세계의 절대적 법칙에 인간화일 뿐이다. 그리고 그 법칙들 중 하나는 만물은 시작과 끝(그리고 현재)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비유적인 문학적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열역학 법칙으로 인해서 인류는 이 절대적인 끝의 확실함을 이미 마주했다. 죽음이라는 바닥을 향해서 인간은 침전하고 있는 물체와 같다. 어떤 믿음을 갖는가는 궁극적으로 바닥까지 침전하는 불가항력에 아무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사양은 '귀족의 몰락'을 다룬다기보나는, 오히려 '몰락하는 귀족의 회광반조'를 다루는 소설이라고 보는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