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이해하고 읽은 것이냐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구성에서 1, 2장은 몰라도 3장은 기본적인 스토리 파악 외에는 제대로 하지 못한듯하다. 작가의 철학 비평문의 적용, 구세군 소녀 이야기라는 본편 외 이야기와의 연관성, 소설 형식 자체의 흐름 등 오랜 시간 두고 보면서 연구를 해야 이해가 가능한 요소들은 많이 무시하면서 읽은 듯하다. 다음에 재독하게 됐을 때 좀 더 깊은 독서가 가능했으면 싶다.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각각 15년 간격을 두고 한 인물의 삶에 대해 서술한다. 물론 앞에 나온 인물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뒤에 가서도 계속해서 등장하기는 한다. 그리고 마치 시대상을 구현하듯이 각 뒷장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 다층화 되고 형식도 복잡해진다.
세 개의 장 중 앞의 두 장은 읽어 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스토리, 인물 위주로 독서하면 된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가장 혼란할 시기를 중심으로 작가는 자신의 통찰을 펼치려 했을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골자, 각 장의 주인공들의 이야기 및 그 외의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 베를린 구세군 소녀 이야기라 이름 붙은 본편 외의 이야기, 그리고 가치들의 붕괴라 이름 붙은 작가의 비평문으로 소설은 구성된다. 그리고 베를린 구세군 소녀 이야기는 소설의 형식과 시의 형식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본편의 이야기는 중간에 한 번 희곡 형식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즉 한 소설 안에 소설, 시, 비평문, 희곡의 형식들이 공존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본 독자들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쿤데라는 그 소설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시야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고 사전 형식으로 인물 사이의 관계를 요약하듯이 보여준다.
전통적인 소설, 근대 사실주의, 낭만주의 소설들, 장르 문학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형식이 난해하고 의미 없어 보일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형식들은 소설의 완성도보단 예술 사조의 극복을 위해 등장하는 실험적인 형식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다각도로 조명되는 이야기가, 파편화된 조각들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합쳐지면서 작품의 본질을 보여주는 방식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소설을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애초에 인간의 삶은 다층적이다. 좋든 싫든 근대의 형식만으로 인간을 탐구하기에는 무리가 아닌지.
각 장의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세계는 근대가 서서히 붕괴하던 시기, 세계 대전에 근접하던 시기이다. 그리고 각 인물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한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쿤데라가 언급한 근대 이후의 인간의 삶의 5가지 가능성, 소송의 K, 하세크의 슈베이크, 그리고 브로흐 3명의 주인공들(파제노, 에슈, 후게나우)은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공포를 드러내는 K, 그에 대해 진지하지 않음으로 응수하는 슈베이크와 다른 시야에서 브로흐의 주인공들은 근대의 가치 타락 과정 속에서의 인간상을 드러낸다. 깨져가는 가치들에 목매다는 파제노, 그 가치들의 절대성에 혼란을 느끼는 에슈, 그리고 종말인 근대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후게나우. 이 다섯 인물들은 근대 인간들의 지향점이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전개상의 비논리이다. 대부분의 근대 소설들은 언제나 논리적인 전개에 의지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물의 심리에 논리를 부여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의 생각에 끊임없이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간다. <몽유병자들>은 톨스토이에 가깝다. 안드레이는 전쟁 도중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푸른 하늘과 삶의 의미, 둘 사이에는 어떠한 논리도 없다. 그러나 모두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에슈는 아무 이유 없이 베르트란트를 악으로 규정한다. 파제노는 루제나와의 사랑에 빠진다. 단지 그녀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가치를 담고 있다고 말이다. 삶을 조종하는 비합리적인 것. <몽유병자들>에 드러나는 특징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물론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 역시 거대했으나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사람들의 사고였다. 전 세계를 휩쓴 전쟁은 인류의 근대사를 단숨에 끝내버렸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꿈은 꿀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격동의 시기에 삶을 재조명하는 소설들이 등장했다. <몽유병자들>은(물론 31년도에 출판되었기에 1차 세계대전만을 담고 있긴 하지만) 변화하는 세계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급변하는 한 시기 안에서 보여주는 각 인물의 삶은 근대 이후 인간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실존적이다. 가치 붕괴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이성적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실존적인 소설이다.
여담) 최근 책과함께 출판사에서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을 다루는 책이 출판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도 제목이 ‘몽유병자들’이다. 작가가 의식하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기에는 과도한 해석이려나.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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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괴앵장히 많이 참고했다. 덕분에 오리지널리티가 없어졌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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