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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젊은작가상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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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젊은작가상 총집편[시리즈] 역대 젊작상 총집편 · 2018 젊은작가상 총집편 · 2019 젊은작가상 총집편 · 2020 젊은작가상 : 총집편 · 2021 젊은작가상 총집편(링크 있음) · 2024 젊은작가상 총집편 [시리즈] 20gall.dcinside.com-
스스로 생각하는 것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것
그걸 가르칠 수만 있다면
한 줄 요약
보편 없는 보편, 교양 없는 교양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자 수상작...이지만 남자라고 해서 딱히 고평가 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남작가인 김기태가 여작가들과 다른 방향성이랄지, 주제를 잡은 건 사실이고, 젊작상 치고는 중립적으로 썼다는 점에서 그게 도리어 젊작상에서 튀는 작품이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다. 솔직히 문장은 김기태나 다른 작가나 또이또이하게 못 써서 딱히 말할 것도 없었고.
거기에 분량도 굉장히 짧다. 공현진이랑 마찬가지로 내용에 있어서 그다지 깊게 파고 들어갈 그런 게 없었다. 그렇게까지 파고든 작품도 아니었고. 심심하게 읽고, 심심하게 책장을 덮고, 그래서 무슨 내용이었지 떠올리면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딱 그런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수상작 치고는 굉장히 거시기한 소설이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요약해서 '곽'이라 불리는 이제 막 불혹에 진입한 국어 교사가 고전 읽기 수업(고등학교 선택 수업)을 맡아 야심차게 가르치려다가 현실의 벽에 한 번 좌절하고, 그 안에 보석을 찾아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다가 자본론 때문에 민원이 걸리고 거기에 대비하려고 열심히 설득할 준비를 마쳤더니 생각보다 허무하게 해결되고, 그 전말을 알게 되니 더욱 허무해지지만 마음을 다잡고 더욱 수업 준비에 매진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소한 좌파적 요소들이 어필된다. 공현진에서 혼틈페미니즘 민원처럼 여기서도 고전 읽기 커리큘럼 준비하면서 '백인 남성' 저자로만 채우지 않게끔 조심하려는 것이나, 민원이 들어오자 전교조에 들어갈 걸 후회하면서 한 페이지에 걸쳐 전교조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노~ 하는 것이 그렇다. 진지하게 파고들 만큼 소설에 중점적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고, 해설도 신비평적으로 해석할 때 전자는 써먹는데 전교조 쪽은 그냥 언급도 없었다. 후자는 진짜 작가가 작품에 끼워 넣은 (작품과 상관 없는) 자기 생각이 맞는 듯하다.
아, '자본론'이 문제 삼아진 건 좌파적 요소가 아니냐고? 물론 하필 문제 삼아진 게 자본론이라 그렇게 느낄 수 있고, 그걸 읽고 감명을 받은 보석(은재라는 이름이다)이 나중에 가서도 마르크스 저서를 읽는 등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고전 중에서 대한민국의 문제적 저작을 따질 때 '가장 흔히 오해하기 쉬운 저서'를 꼽는다면 역시 자본론이 대표 주자니 굳이 이것까지 태클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작품의 모든 소재의 선정 이유는 단순하게 규정될 수 없으니 작가의 성향 역시 영향이 없다곤 못할 것이다)
(고전 읽기 수업하는 모습 - ChatGPT)
작품에서 강조되는 건 교사로서 곽이 가지는 정체성과 사명감, 그리고 일종의 낭만이다. 작품의 흐름도 역시 교사로서 곽이 가진 사명감과 낭만이 '다른 수업 듣기 싫어서 선택한 학생들'과 '자본론으로 태클 건 학부모'라는 장애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게 되고, 거기에 다시 맞서 일어나는 듯하지만 한 번 더 통수를 때리고, 그럼에도 꿋꿋이 다시 마음을 다잡는 거라...... 심지어 후반에 한 번 더 통수를 때리는 것도 꼼꼼히 읽지 않으면 통수인 줄도 모르고 넘기기 십상이라 구조 자체는 지나치게 평이하다.
곽은 수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책에 재미를 붙이고 고전을 통해 교양을 쌓는 인간이 되길 소망했으나, 현실은 밤늦게 택배 뛰다가 이 시간에 잠드는 학생, 인강과 문제집이나 푸는 학생이 절반이 넘고 그나마 수업을 듣는 몇 명이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이때부터 '보편'은 날아간 셈이지만 곽은 학생들에게 수업을 강요하지 않기로 하며 '처음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 수는 교사의 잘못이 아니지만 마지막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 수는 교사의 책임이다' 같은 말을 되새기며 수업을 진행한다.
이때 곽은 자기 인생이 지나치게 무난하고 평이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인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를 떠올리며 자기는 파괴되지도 않았고 패배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곽이 수업을 진행하다가 '자본론을 왜 가르치냐'는 조심스러운 민원을 받게 되는데, 민원을 넣은 학부모는 다름 아닌 자기 수업을 열심히 듣던 은재라는 학생의 아버지였다.
정신의 위대함은 시련의 크기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곽은 민원 내용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파괴될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고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곽은 자본론이 왜 교양 서적으로 인정 받고 있고 '왜 안전한지' 설득할 근거를 모으고 이걸 어떻게 조심스럽게 전달할지 열심히 고민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민원을 넣었던 은재의 아버지가 자기가 오해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곽은 이런 아버지의 변심이 은재에게 있음을 알고 은재가 자기가 바라던 교양, 곧 자기 생각을 관철해 아버지를 설득시켰구나! 하고 감동했지만...... 알고보니 은재는 입시 컨설턴트 선생님께 연락을 넣어 그 선생님이 아버지를 설득했던 것이었다. 즉, 은재는 교양인이 아니었다. 곽이 그토록 바라던 교양은 없었다. 곽이 문제 의식을 가지던 입시 제도와 그가 꾸며놓은 경쟁 사회가 자기의 고난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곽은 은재가 졸업할 때(은재는 서울대를 갔고 동료 교사들은 자본론 읽히고 서울대 보냈다면서 곽을 올려친다) 들고 온 유럽 디저트를 먹으며 파괴되지도 않았는데 패배할 것 같은 달콤함을 느낀다. 이건 어렵게 여길 것 없이 정신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은재가 저렇게 잘 큰 건 다 자기 덕이라고 망상하는 것이다. 실제로 은재의 입시 성공 비중에 곽이 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은재는 이미 입시 컨설턴트를 받고 있는, 경쟁 사회에서 최상위 계층의 수혜자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은재의 성공은 곽이 바라던 교양을 무참히 짓밟았다. 스스로 생각할 여유란 건 결국 자본의 여유에서 나온다는 걸 곽이 스스로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더 따지면 은재는 딱히 스스로 생각한 것도 아니다. 입시 컨설턴트에게 아버지가 민원 넣은 일을 말했고, 그 선생님이 아버지를 설득한 것이다. 본인은 딱히 생각이랄 것도 없었고 그냥 자본론이 재밌어서, 마르크스가 좋아서 더 책을 구해 읽는 것에서 그쳤다. 여기 어디에 교양이 있는가? 자본, 입시, 경쟁의 논리만 존재한다. 아버지가 사과한 것도 입시에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지, 그가 스스로 생각해서 아들의 인생을 고려한 게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곽은 학생들 개개인의 삶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은재와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자거나 딴짓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여기 어디에 보편이 있는가? 철저한 특수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집중하던 학생 중 최고의 참여도를 보인 학생은 삶의 여유가 아주 충만한 학생이었다. 그는 이미 경쟁 사회에서 한 발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은 은재의 실패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을 시인하고 자본론부터 다시 읽자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하지만 정말로 자본론이 문제였을까? 자본론은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그건 이미 입시 컨설턴트가 보장한 안전한 고전이다. 진짜 곽이 돌아봐야 했던 건 어쩌면 곽의 수업으로 도피한 학생들이었다. 은재의 성공으로 반을 두 개로 쪼개 수업하게 됐고, 더 많은 학생을 부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똑같이 수업 참여도에 비례해서 수업할 생각인 걸까?
거기 어디에 보편이 있다는 것일까? 어디에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있지?
결국 남는 건 교사의 허울 좋은 낭만과 교육관 뿐이다. 결말에서 곽이 행한 피드백 역시 내겐 본질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느껴지기에,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전달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유일한 남자 작가인데 주제의식이나 문장이나 내용이나 전개나 구조나 상징이나...... 솔직히 말해서 젊작상이 왜 뽑았는지 의문이다. 여태껏 '이런 거 왜 뽑았냐'와 다른 결의 의문이다. 젊작상의 기조와 꽤 떨어졌고, 요소들을 제외하면 내용이나 주제나 상당히 중립적이다. 그렇다고 문장이 기깔나는 것도 아니다. 기교는 없었다. 특징을 잡기도 힘든 무난함과 심심함이 짧은 내용 전반에 깔려서...... 진짜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
심사 경위가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렇게 하나 또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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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거 하나만 읽었을 땐 도저히 납득이 안 가긴 함...
김기태가 이상문학상도 탈 것 같다는 게이야 어디갔노
김기태 작가 소설은 이제 단편 두 편 읽어봤는데, 내가 읽기로는 아주 무난한 작가임.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다만 굉장히 성실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지금 국문판에서 밀어주는 작가 중엔 드문 작가라고 느꼈거든. 보편교양이라는 소설도 나한텐 그렇게 읽힘. 결국 지금 시대 자체가 '보편교양'이라는 게 우스워진 시대이고, '곽' 같은 '먹물'들은 세계에 섞이지 못하는 채로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방황할 수밖에 없음. 그런 의미에서 은재와의 에피소드는 씁쓸한 일상에서 잠깐 맛볼 수 있는 초콜릿 같은 판타지일 수도 있을 거고. 요컨대 작가 자신도 '보편교양'의 신화를 그렇게 신뢰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음. 그런 의미에서 주제의식 전달의 실패라는 독해에 난 그다지 동의되진 않음.
곽의 실패 자체가 어느 정도 네 의견을 담보하고 있어서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음. 약간 메타적으로 보편과 교양을 비웃는 느낌도 있지. 근데 그렇게 메타적으로 접근하면 해설이랑도 맞지 않고(해설이 신비평적으로 접근하긴 했다만) 결국 김기태가 묘사한 현실은 그냥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다고 생각함.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는 게 소설일 순 없듯이.
글쎄... 오늘날 현실이 그런데 그 이상의 어떤 걸 기대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네가 지금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라고 생각해보셈. 사실 소설에서 곽이 한 것 이상으로 뭔가 가치 있는 고전읽기 교육을 실현하는 건 정말정말정말정말 어려움. 현실 너머를 가리키지 못하는 건 시대의 한계고 복잡한 현실 자체를 바라보는 복잡한 인식틀을 제공해준 것 정도로도 박한 평가를 하고 싶진 않음. 단순해 보이고 한계도 뚜렷하지만 '그렇게까지' 단순하고 별볼일없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함. 솔직히 포텐셜을 막 기대하게 만드는 재주나 개성 같은 건 없어서 아쉽지만... 심심함과 삼삼함을 오가는 작가랄까. 아무튼 이런 소설이 지금 국문학판엔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임.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거? 이 소설에서 보여준 현실의 단면은 너무 너무 너무 한정적임... 학생들의 삶도 그렇게 내몬 사회도 은재의 뒷배경도 교사로서 5박6일 싱가폴 여행을 그냥 갔다오는 곽의 배경조차도 제대로 묘사된 것 없이 집중하는 거라곤 고전 읽기 수업 하나인데 이 지극한 단면의 현실을 포착한 것의 의미는 너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찾아줘서 수상작에 올랐을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선 "포착"만으로는 어떤 의미도 울림도 없음. 포착할 거면 지나치게 단면적이고 한정적인 상황만 잡을 게 아니었다고 생각함. 그리고 작가로서 심심함은 죄악에 가깝다고도 생각하고. 무난한 거랑 다른 거임. 이 단편이 좀만 길었어도 엄청 지루했을 거라고 생각함.
솔직히 나나 당신이나 소설이나 작가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이 작가를 그래도 옹호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작가 스스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임. 너 말마따나 이거 조금만 길어졌어도 졸라 지루했을 수 있음. 근데 그전에 딱 끊지. 그러니까 소재도 딱 제한된 범위로 좁혀놓은 거고. 물론 나도 더 막 나가고 개성 있고 비전 있는 작가들을 좋아함. 근데 그런 작가는 정말 드물기 때문에 평가기준을 그렇게 잡는 건 너무 박하다고 생각하고... 최소한 지금 한국에 김기태처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하고 맞닿아 있는 소설 쓰는 작가가 내가 볼 땐 거의 없음. 잘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작가라고 생각하는 거고.
유할 필요를 못 느껴서 박하게 느껴질 뿐임. 네 말대로 "더 지루해질 수 있었지만 그전에 끊었다"라고 볼 수 있지. 동의함. 하지만 그게 한계가 27페이지 되는 짧은 분량......? 단편 작가로서도 역량치가 너무... 물론 네가 왜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지 십분 공감함. 이런 작가가 필요한 건 맞지. 다만 내가 젊은작가상에서 볼 만한 작가인가 싶으면 거기선 또 갸웃하지. 이건 그냥 단편도 아니고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니까...
소설로서 잼?은 내가 잘 평가 못하겠지만 현재 교육이 담보하는 딜레마를 한편에 되게 잘녹여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 솔직히 입시교육 비판하는 소설이야 흔해빠졌는데 이만큼 교육을 정면으로 얘기하는 소설은 별로 없었던거 같음ㅋ 김기태 다른 소설들도 읽었는데 모순 안에 살아가는 현대인간 이야기를 묘사 잘하는 사람같다는 생각이 듦
교육 그 자체를 건드린 건 좋았는데 뭐랄까......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강했음
딜레마 자체를 강하게 풀어낸 것도 아니라서 더더욱 그런 듯
줄거리만 보면 인간실존에 대해서 다룰 것 같이 생겼는데 그렇지도 않음?
줄거리만 보면,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와,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항의하는 학부모와, 나와는 전혀 관련없는 문제의 해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준비하러 다시 책을 펴는 인간의 실존을 그릴것같이 생겼는데
실존을 다룬다고 느껴질 만큼의 뭔가는 없었음. 분량도 짧고 조명하는 것도 지엽적이고.
난 김기태 이번 거 ㄱㅊ앗음 문장도...ㄱㅊ던데
평이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 퍽 아름답지 않았나
마지막이...?
ㅇㅇ.. 자신이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도 모르는(수업을 강요할 수 없다 느껴서 딴짓하는 걸 내비뒀던) 일종의 비뚤어진(으로 보이는) 애들이 먼저 알아보고 졸업사진 같이 찍기를 권유받았을 때 선생이 느낄 복잡한 감정이 나는 마음에 들었음.
글솜씨가 평이하고, 전개도 특출나지 않다는 부분은 동의하지만, 글의 결론부의 "결국 남는 건 교사의 허울 좋은 낭만과 교육관 뿐이다. 결말에서 곽이 행한 피드백 역시 내겐 본질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느껴지기에,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전달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는 전적으로 다르게 생각함. 결국 현대 한국의 교육의 현실로인해서 추구 해야하는 "보편"과 "교양"이 무너진 것을 보여주는게 오히려 주제의식 아닐까.
끝으로 "거기 어디에 보편이 있다는 것일까? 어디에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있지?" 라는 말이 작가가 현재 한국 교육에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담고자 했던 주제의식과 방법은 맘에 들었지만, 그속에 작가의 특별함이 없어서 아쉬웠던 작품.
뭐 메타적으로 그렇게 작가가 의도했다고도 볼 수 있고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닌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보면 작품 올려치는 것 같음. 분량에 비해 밀도도 압축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데 메타적으로 꼬와서 주제를 전달한다고까지는 와 닿지가 않더라
디시는 소설 하나 읽으면서도 좌파좌파거리네 ㅋㅋ
주제와 통일성에 전혀 상관없는 요소가 돌출돼 있는데 언급 안 하고 넘어갈 순 없잖슴
학생들한테 좌파서적 읽히면서 전교조 옹호까지 하는데 좌파 얘기를 안하면... - dc App
자기도 뭔 말하는지 모르면서 마음에 안 드니까 박하게 평가하는 게 드러나는 글이네
메타적으로~~~를 왜 계속 반복하는지 모르겠네 메타몽도 아니고ㅋ 보편교양에 대한 낭만적인 믿음이나 향수가 지배적인 톤이 아닌건 그냥 소설읽으면 꽤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인데? 글맛자체가 심심한 작가는 맞는데 그부분은 니가 오독이라 봄. 글먹하는 사람들이 가질법한 낭만적인 기대가 아주쬐끔 묻어나긴 하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시니컬한 소설임 사람들이 억지로 올려치는건 아님
이 글만 읽으면 사회주의 리얼리즘 카프냄새나는 2020년대 소설처럼 보여
그냥 재미없다 이거 아냐 18겉절이새리들아
댓글들 같은 남자라고 고평가 ㅈ되네 - dc App
이게 바로 '강자에 대한 약자의 연대는 숭고하다'는 가치를 훼손하는 문장임. 좀더 페1미1니즘, 피해자학을 공부하고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