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024 젊은작가상 시리즈


https://gall.dcinside.com/m/reading/616522

2024 젊은작가상 총집편[시리즈] 역대 젊작상 총집편 · 2018 젊은작가상 총집편 · 2019 젊은작가상 총집편 · 2020 젊은작가상 : 총집편 · 2021 젊은작가상 총집편(링크 있음) · 2024 젊은작가상 총집편 [시리즈] 20gall.dcinside.com



-


스스로 생각하는 것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것


그걸 가르칠 수만 있다면


한 줄 요약

보편 없는 보편, 교양 없는 교양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자 수상작...이지만 남자라고 해서 딱히 고평가 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남작가인 김기태가 여작가들과 다른 방향성이랄지, 주제를 잡은 건 사실이고, 젊작상 치고는 중립적으로 썼다는 점에서 그게 도리어 젊작상에서 튀는 작품이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다. 솔직히 문장은 김기태나 다른 작가나 또이또이하게 못 써서 딱히 말할 것도 없었고.


거기에 분량도 굉장히 짧다. 공현진이랑 마찬가지로 내용에 있어서 그다지 깊게 파고 들어갈 그런 게 없었다. 그렇게까지 파고든 작품도 아니었고. 심심하게 읽고, 심심하게 책장을 덮고, 그래서 무슨 내용이었지 떠올리면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딱 그런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수상작 치고는 굉장히 거시기한 소설이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요약해서 '곽'이라 불리는 이제 막 불혹에 진입한 국어 교사가 고전 읽기 수업(고등학교 선택 수업)을 맡아 야심차게 가르치려다가 현실의 벽에 한 번 좌절하고, 그 안에 보석을 찾아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다가 자본론 때문에 민원이 걸리고 거기에 대비하려고 열심히 설득할 준비를 마쳤더니 생각보다 허무하게 해결되고, 그 전말을 알게 되니 더욱 허무해지지만 마음을 다잡고 더욱 수업 준비에 매진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소한 좌파적 요소들이 어필된다. 공현진에서 혼틈페미니즘 민원처럼 여기서도 고전 읽기 커리큘럼 준비하면서 '백인 남성' 저자로만 채우지 않게끔 조심하려는 것이나, 민원이 들어오자 전교조에 들어갈 걸 후회하면서 한 페이지에 걸쳐 전교조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노~ 하는 것이 그렇다. 진지하게 파고들 만큼 소설에 중점적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고, 해설도 신비평적으로 해석할 때 전자는 써먹는데 전교조 쪽은 그냥 언급도 없었다. 후자는 진짜 작가가 작품에 끼워 넣은 (작품과 상관 없는) 자기 생각이 맞는 듯하다.


아, '자본론'이 문제 삼아진 건 좌파적 요소가 아니냐고? 물론 하필 문제 삼아진 게 자본론이라 그렇게 느낄 수 있고, 그걸 읽고 감명을 받은 보석(은재라는 이름이다)이 나중에 가서도 마르크스 저서를 읽는 등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고전 중에서 대한민국의 문제적 저작을 따질 때 '가장 흔히 오해하기 쉬운 저서'를 꼽는다면 역시 자본론이 대표 주자니 굳이 이것까지 태클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작품의 모든 소재의 선정 이유는 단순하게 규정될 수 없으니 작가의 성향 역시 영향이 없다곤 못할 것이다)



099cfc0a47051de63cef84e15b817070a5627855546e459c1cd2c8d59a069bcc7c0ff4abb97dc1020e37afa656b70df904

(고전 읽기 수업하는 모습 - ChatGPT)


작품에서 강조되는 건 교사로서 곽이 가지는 정체성과 사명감, 그리고 일종의 낭만이다. 작품의 흐름도 역시 교사로서 곽이 가진 사명감과 낭만이 '다른 수업 듣기 싫어서 선택한 학생들'과 '자본론으로 태클 건 학부모'라는 장애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게 되고, 거기에 다시 맞서 일어나는 듯하지만 한 번 더 통수를 때리고, 그럼에도 꿋꿋이 다시 마음을 다잡는 거라...... 심지어 후반에 한 번 더 통수를 때리는 것도 꼼꼼히 읽지 않으면 통수인 줄도 모르고 넘기기 십상이라 구조 자체는 지나치게 평이하다.


곽은 수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책에 재미를 붙이고 고전을 통해 교양을 쌓는 인간이 되길 소망했으나, 현실은 밤늦게 택배 뛰다가 이 시간에 잠드는 학생, 인강과 문제집이나 푸는 학생이 절반이 넘고 그나마 수업을 듣는 몇 명이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이때부터 '보편'은 날아간 셈이지만 곽은 학생들에게 수업을 강요하지 않기로 하며 '처음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 수는 교사의 잘못이 아니지만 마지막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 수는 교사의 책임이다' 같은 말을 되새기며 수업을 진행한다.


이때 곽은 자기 인생이 지나치게 무난하고 평이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인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를 떠올리며 자기는 파괴되지도 않았고 패배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곽이 수업을 진행하다가 '자본론을 왜 가르치냐'는 조심스러운 민원을 받게 되는데, 민원을 넣은 학부모는 다름 아닌 자기 수업을 열심히 듣던 은재라는 학생의 아버지였다.


정신의 위대함은 시련의 크기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곽은 민원 내용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파괴될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고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곽은 자본론이 왜 교양 서적으로 인정 받고 있고 '왜 안전한지' 설득할 근거를 모으고 이걸 어떻게 조심스럽게 전달할지 열심히 고민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민원을 넣었던 은재의 아버지가 자기가 오해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곽은 이런 아버지의 변심이 은재에게 있음을 알고 은재가 자기가 바라던 교양, 곧 자기 생각을 관철해 아버지를 설득시켰구나! 하고 감동했지만...... 알고보니 은재는 입시 컨설턴트 선생님께 연락을 넣어 그 선생님이 아버지를 설득했던 것이었다. 즉, 은재는 교양인이 아니었다. 곽이 그토록 바라던 교양은 없었다. 곽이 문제 의식을 가지던 입시 제도와 그가 꾸며놓은 경쟁 사회가 자기의 고난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곽은 은재가 졸업할 때(은재는 서울대를 갔고 동료 교사들은 자본론 읽히고 서울대 보냈다면서 곽을 올려친다) 들고 온 유럽 디저트를 먹으며 파괴되지도 않았는데 패배할 것 같은 달콤함을 느낀다. 이건 어렵게 여길 것 없이 정신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은재가 저렇게 잘 큰 건 다 자기 덕이라고 망상하는 것이다. 실제로 은재의 입시 성공 비중에 곽이 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은재는 이미 입시 컨설턴트를 받고 있는, 경쟁 사회에서 최상위 계층의 수혜자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은재의 성공은 곽이 바라던 교양을 무참히 짓밟았다. 스스로 생각할 여유란 건 결국 자본의 여유에서 나온다는 걸 곽이 스스로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더 따지면 은재는 딱히 스스로 생각한 것도 아니다. 입시 컨설턴트에게 아버지가 민원 넣은 일을 말했고, 그 선생님이 아버지를 설득한 것이다. 본인은 딱히 생각이랄 것도 없었고 그냥 자본론이 재밌어서, 마르크스가 좋아서 더 책을 구해 읽는 것에서 그쳤다. 여기 어디에 교양이 있는가? 자본, 입시, 경쟁의 논리만 존재한다. 아버지가 사과한 것도 입시에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지, 그가 스스로 생각해서 아들의 인생을 고려한 게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곽은 학생들 개개인의 삶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은재와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자거나 딴짓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여기 어디에 보편이 있는가? 철저한 특수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집중하던 학생 중 최고의 참여도를 보인 학생은 삶의 여유가 아주 충만한 학생이었다. 그는 이미 경쟁 사회에서 한 발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은 은재의 실패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을 시인하고 자본론부터 다시 읽자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하지만 정말로 자본론이 문제였을까? 자본론은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그건 이미 입시 컨설턴트가 보장한 안전한 고전이다. 진짜 곽이 돌아봐야 했던 건 어쩌면 곽의 수업으로 도피한 학생들이었다. 은재의 성공으로 반을 두 개로 쪼개 수업하게 됐고, 더 많은 학생을 부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똑같이 수업 참여도에 비례해서 수업할 생각인 걸까?


거기 어디에 보편이 있다는 것일까? 어디에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있지?


결국 남는 건 교사의 허울 좋은 낭만과 교육관 뿐이다. 결말에서 곽이 행한 피드백 역시 내겐 본질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느껴지기에,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전달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유일한 남자 작가인데 주제의식이나 문장이나 내용이나 전개나 구조나 상징이나...... 솔직히 말해서 젊작상이 왜 뽑았는지 의문이다. 여태껏 '이런 거 왜 뽑았냐'와 다른 결의 의문이다. 젊작상의 기조와 꽤 떨어졌고, 요소들을 제외하면 내용이나 주제나 상당히 중립적이다. 그렇다고 문장이 기깔나는 것도 아니다. 기교는 없었다. 특징을 잡기도 힘든 무난함과 심심함이 짧은 내용 전반에 깔려서...... 진짜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


심사 경위가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렇게 하나 또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