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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중편들 따로 빼서 괘씸하게 돈 더 받아쳐먹는 신판이 아니라 구판 황석영 중단편전집 1권임

아니 근데 생각할수록 출판사 상술이 객지 중편에 나오는 공사판 감독들 훼방이나 다를게 없네?

하여튼 수록된 다른 단편들은 꽤 전에 읽었고 이번에 객지까지 읽어서 완독함

아직 1권만이어서 그럴 수 있지만 황석영하면 생각나는 참여 문학, 노동 리얼리즘 등의 향은 표제작 말곤 그닥 없긴함

오히려 문단마다 묘사를 정제해내듯 상당한 글솜씨로 제련된 강렬하고 인상깊은 이미지들로 가득찬 글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풍족해질 지경


...하늘의 기묘한 분기점 위에 섰는 두 개의 유기물질이었다.

예전에 갤에도 한 번 올렸던 장면인데 그냥 묘사로 쌓아가는 장면이 미쳤음

김승옥이 문장 하나하나와 어휘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배열해가며 상황에 대한 적확한 정의를 나타낸다면, 황석영은 여러 문장들을 결합시켜 문단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쪽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함

물론 장면 묘사만 잘하는 건 아님. 돌아온 사람 같은 단편 보면 개인의 정신이 가진 관념적인 내면을 보여주는 것도 잘하거든


가화에서는 겉절이들이 수없이 시도하던 환상성과 현대성의 결합을 후배 문인들은 이미 넘을 수 없는 경지로 성취했음을 볼 수 있고

줄자나 배운 사람에서는 위트 있는 콩트에도 재능이 있는 걸  보여줌

한 가지 아쉬운 건 아우를 위하여가 생각보다 별로였다는 거... 뭔가 이전 작품들에 비해 그닥 고민 없이 그래그래 그치그치 이런 느낌으로 쉽게 써내려갔다는 생각이 듦



그리고 대망의 표제작 객지는 읽는 동안 지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겉으로 보면 참여, 노동 리얼리즘 문학이지만 거기에서 파생되는 (그리고 그쪽 계열이 좋아죽는) 현실 개변 같은 사상 놀음은 덤터기라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건 억지스런 대립 구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독립되어 작동하는 작품 자체와 그 속에 산재한 다양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함


카프 소설 같은 유치한 대립과 선악구도가 아니라 소설의 서두부터 제시되는 처지의 차이에서 오는 끝없는 대립이라는 분위기부터 결이 다르고

그냥 가난해서, 노동이 힘들어서 같은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등장인물들 스스로가 느끼는 실존적인 불만이 부각되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머리가 안 돌아가긴 하는데 여하튼 부자 나빠요 노동자 착해요 노가다판 돈 많이 줘야해요 이런 느낌의 소설은 아니라는 거지 뭐

오히려 계급 갈등이라는 소재를 토대로 70년대의 현실이란 끝없는 대립과 투쟁의 현실이었고 이 싸움은 끝끝내 자기자신과의 싸움으로까지 이어진다는 현실 고발이 아닌 시대인의 자기 고백에 가까운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함.

하여튼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황석영은 문단 좌파 좆목으로 노문상 후보 소리 들은 거고 진정으로 진실된 글쟁이는 이문열이다 이딴 소리하면 쳐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