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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_탁이 왜 금지어임?? 설마 내가 생각한 그 이유임?
저자가 적었듯이 30초에 한 권씩 책이 출판되고 있는데 독서 인구는 반비례하여 줄어드는 것이 아이러니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은 최초의 책이 얼마나 희소하였는지 설명하는데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책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당대의 고전은 값비싼 파피루스로 작성되어 보관되었다. 그러나 파피루스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200년에 불과하다. 즉 책은 인쇄술이 발견되기 전 늘 베꼈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방대한 양의 고전은 누군가의 피, 땀,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과 천재지변, 검열과 약탈을 피해 살아남은 것이기에 고전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무수한 노력에 의해 우리는 지금 다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펼쳐보아도 고대인이 느꼈던 감정과 희열의 일치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필사와 보관의 어려움으로 인해 특권 계층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한 알렉산드리아에서 공공도서관이 생겨나 가난한 민중에게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다이아몬드의 역설'이라는 경제학적 용어가 있다. 삶의 필수 요소인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무가치한 이유는 한정된 재화인 다이아몬드보다 무수히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책 역시 자본주의에 힘입은 엄청난 생산 혁신으로 인해 책의 가치가 물처럼 급전직하했다. 도서관에는 매일 신작이 들어와 열람을 기다리고 있고 출판사 창고에는 팔리지 않아 반납된 책들이 파쇄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책의 총량은 늘어나지만 유튜브 숏츠,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SNS) 플랫폼에만 집중하는 시대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독자에게 야만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독가가 세상을 지배했다. 일리아스를 머리맡에 두고 잔 알렉산드로스 대왕, 자치통감 다 회독으로 유명한 마오쩌둥, (현대의 봉건 군주라고 볼 수 있는) 매그니피센트 7 기업의 CEO인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도 다독가로 유명하다. 그들의 플랫폼에 중독되어 일반인들이 책과 멀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의자나 바퀴처럼 수천 년간 검증된 책의 가치로 인해 오늘날 태블릿PC나 유튜브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첨언하자면 앞으로도 책을 읽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책의 전복적 내용(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난이도는 단언컨대 프롤레타리아를 겨냥한 책이 아니다)과 가치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이 책을 살려낸 것인지도 모른다.
<인상깊은 구절>
좋은 필사본을 만들려면 한 무리의 가축이 소요될 수도 있었다. 오늘날처럼 책이 많이 출판됐다면 가축이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가 피터 왓슨(Peter Watson)의 계산에 따르면, 가죽 한 장의 크기를 50제곱센티미터로 가정하고 150쪽의 책을 만들려면 열 마리에서 열두 마리의 가축이 필요했다. 또 다른 전문가에 따르면 구텐베르크 성경을 만드는 데 100장의 가죽이 필요했다고 한다. 따라서 책을 보 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양피지 사본을 만드는 데는 엄청난 비용 이 소요됐다. 그러니 책을 소유한다는 건 오랫동안 귀족과 종교인들의 절대적인 특권이었다. 한 서기는 13세기 성경에 재료의 결핍을 한 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하늘이 양피지고 바다가 잉크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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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의견을 지닌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창안한 다양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나머지는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다. 현미경과 망원경 은 시각의 확장이며,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 쟁기와 검은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사뭇 다르다.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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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는 이렇게 썼다. "육신은 슬프다. 아! 나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 아마도 시인은 존재의 권태를 얘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존과 킨들의 시대에 모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독한 장서가들의 불가능한 꿈이다. 인류는 30초마다 책 한 권을 출판하고 있다. 한 권의 가격을 20유로라 하고 책의 두께를 2센티미터로 가정할 때, 1년이면 2000만 유로의 자금과 약 20킬로미터의 책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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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운 사실은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인의 버전이 아니라 페 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의 버전만 기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역사는 타자의 관점, 적의 관점, 미지의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탄생했다. 이는 25세기가 지난 지금도 매우 혁신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낮 선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숙 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정체성과 대조할 때라야 우리의 정체 성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내가 누 구인지 말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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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 가능한 최상의 조건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200년 정도 유지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보다는 생명력이 짧다. 작품은 계속 파손되었기에 특정 작품의 판본의 수가 줄어들면 그 작품을 복원하는 일은 더 욱 어려웠다. 고대와 중세의 책은 인쇄기가 발명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파손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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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달을 바쳐 책의 사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몇 권이나 구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누군지 모를 독자들의 열정 덕분에 헤로 도토스의 역사와 같은 작품이 수 세기의 협곡을 지나 우리에게 도 달한 것을 집단적 기적으로 봐야 한다. 남아공 출신의 작가 존 맥스웰 쿠체(John Maxwell Coetzee)가 지적하듯, "고전은 최악의 야만성에서 살 아남은 것, 작품을 무시할 수 없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붙잡아 두려고 했던 세대가 있었기에 생존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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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우마르의 사절이 칼리프의 답장을 가지고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아므르는 긴장된 마음으로 편지를 읽었다. "도서관의 책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책의 내용이 코란과 일치한다면 쓸모 가 없을 것이며, 일치하지 않는다면 신성모독이다. 파괴하라." 실망한 아므르는 그 명을 따랐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4000개의 대중 목욕탕에 책을 나눠주고 연료로 사용하게 했다. 상상력과 지혜의 보 물을 태우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만 용서받았다. 목욕탕의 증기 속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마지막 유토피아 는 잿더미가 고요해질 때까지 탁_탁거리며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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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너머의 그리스 도시이자 유럽의 외부에 있는 유럽의 배아라는 모호한 조건에서 자신에 대한 외부적 시선을 개시했다. 도서관의 전성기와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어 스토아 철학 자들은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국경 없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도 인류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알렉산드 리아는 모든 마그마가 끓어오르고 이질적인 전통과 언어가 중요성을 획득한 곳이었으며 지식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공유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보편적 시민권이라는 유럽의 위대한 꿈의 선례를 발견할 수 있다. 글쓰기와 책, 그리고 도서관은 그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한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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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말의 소멸, 국수주의, 언어 장벽은 늘 존재한다. 알렉산드리 아 덕분에 우리는 번역가, 세계시민,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희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사라고사 학교의 왕따였던 나를 매료시켰다. 알렉산드리아가 모든 시대의 무국적 자를 위한 종이의 나라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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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는 온전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면 예술적, 문학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품격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지식이 이익과 섞이게 되면 즉시 위신 이 떨어졌다. 앞서 말했듯이 건축, 의학 교육과 같은 지적인 작업들은 하층 계급의 몫이었다. 고대 학교의 선생들은 대부분 노예나 자유민 이 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하는 일은 멸시받았다. 타키투스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출신이 미천하다."라고 했다. 귀족들은 지식과 문 화를 중시한 반면, 가르침은 멸시했다. 배우는 건 명예로운데 가르치 는 것은 천박하다는 역설이 존재했던 것이다.
디지털 혁명 시대인 지금, 문화를 아마추어의 취미로 이해하는 고 대의 귀족적 생각이 다시 자리 잡는 것 같다. 작가, 극작가, 음악가, 배 우, 영화인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장을 잡고 여유 시간에 예술을 해 야 한다는 옛 노래가 다시 들리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서, 창조적 작업은 고대 로마처럼 무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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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프랑수아즈가 베를린에서의 모험을 시작하고 히틀러가 특유의 소요를 일으키며 첫 대중 연설을 하고 있던 순간, 마오쩌둥은 창사시에 서점을 열었다. 사업이 잘되자 그는 여섯 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그의 자본주의 모험은 놀라울 정도로 수익성이 좋았으며 이를 통해 그는 혁명가로서 경력을 시작하던 시기에 수년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 전에 그는 대학 도서관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는 독서광으로 기억되고 있다. 46년 후, 그는 잔혹한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 책이 불타고 지식인들이 굴욕적인 자아비판을 하고 투옥되거 나 암살되었다. 호르헤 카리온이 지적하듯, 현대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통제, 억압, 집행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들, 책을 가장 효율적으로 검열한 사람들은 문화연구자이거나 작가이거나 훌륭한 독자였다.
서점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매 세기마다 투쟁이 맥박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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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비교할 때(예컨대 책과 태블릿 또는 지하철에서 채팅하는 10대와 그 옆에 앉아 있는 수녀) 우리는 새로운 것이 더 미래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사물이나 관습이 우리 안에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미래가 있다. 평균적으로 최신의 것이 더욱 빨리 소멸된다. 22세기에도 수녀와 책은 있겠지만 왓츠 앱과 태블릿은 없을 수도 있다. 미래에도 탁자와 의자는 있을 것이지 만 플라즈마 스크린이나 휴대폰은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자 외선A로 태닝을 하지 않는 시대에도 겨울날 동지(冬至)를 맞아 파티를 열 것이다. 돈과 같은 발명품은 3D 영화, 드론, 전기자동차보다 살 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멈추지 않는 소비주의에서 소셜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다양한 경향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서 영성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태곳적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오래된 전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사회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를 방문하면 (군주제에서 사회적 의식과 신고전주의 건축 또는 오래된 노면전차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지닌 의고주의에 대한 사랑에 놀랄 것이다.
왤케 비문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