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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문제가 있을까? 상대 앞에서 내 감정에 충실하자니, 상대가 내 모습에 질릴 것 같다. 그렇다고 상대 앞에서 이성만 붙들고 있자니, 전혀 친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눈에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속 썩을 일도 없고 속 썩일 일도 없을 텐데. 이성과 감성의 대립은 날 늘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성과 감성」은, 비록 둘 중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명확하게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할 만한 것들을 많이 제시해 주었다.
제목의 '이성'은 엘리너로 의인화했다. 엘리너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사려 깊은 축에 속한다. 때로는 초인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엘리너도 사랑에 마음 졸이고 기뻐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알지만, 체통을 지키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지 않기 위해 그것들을 능숙하게 감춘다. 어찌 보면 작중의 극적인 사건들 중 엘리너 혼자만의 능력으로 해결된 일은 없지만, 엘리너가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관조적인 태도를 유지한 덕분에 사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을 평등하게 사랑해서 모든 일이 무탈하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박애적인 마음 때문이니, 엘리너가 성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의 '감성'은 메리앤으로 의인화했다. 사실 처음에는 메리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족의 혼란을 막는 엘리너에 비해 메리앤이 철없게 보였기 때문이다. 메리앤은 자신에게 모든 면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 애쓰는데,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도 사람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아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인물로서 더 많은 공감을 산 것은 엘리너가 아니라 메리앤이었다. 사랑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감정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지만, 감정을 스스럼없이 터놓는 메리앤이 내심 부러웠다.
이성과 감성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만 편드는 것도 부당하다. 이성은 아무 탈도 일으키지 않지만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한다. 엘리너와 에드워드의 연애사가 엘리너의 명석한 판단력이 무색하게 얼마나 답답하던지 모른다. 감성은 새로운 일을 일으키지만 벌어진 일을 수습하지는 못한다. 메리앤과 윌러비의 불꽃이 그렇게 허무하게 꺼질 줄 누가 알았을까? 더구나 윌러비는 메리앤과 잘 맞는 성격 때문에 죄를 저지르기도 했으니, 감성의 불꽃은 따뜻할 때는 좋지만 뜨거울 때는 평생 남을 화상을 남길 정도로 위험하다.
다만 두 자매는 어려운 시기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다가 결국 출구를 찾았다. 메리앤은 엘리너의 신중함에 위로와 도움을 얻었다. 엘리너도 메리앤의 에너지로 일상을 보다 다채롭게 채울 수 있었다. 이 대목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감성이 우선 앞질러가서 길을 개척하고, 이성이 그 뒤에 당도하여 길을 무탈하게 닦는 것이 관계의 전범(典範)이라고. 엘리너와 메리앤이 서로를 소중히 하듯이 이성과 감성도 서로를 소중히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이성과 감성은 서로를 이끌며 행복으로 향하는 것이다.
한편 이런 여정을 겪어서 성취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도 고찰해야 할 것이다. 두 자매의 사랑을 방해한 것은 늘 이해관계였다. 당대 영국의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이해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높은 사람들이 멋대로 정략결혼을 추진하고, 윗사람들의 계략을 차마 거스를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 전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자매는 진실한 사랑을 성취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진 인연은 이해가 변하면 함께 변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사랑보다는 사랑할 만한 허영을 많이 보이는 쪽이 유리한 게임이니, 이해관계를 만족하는 결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진정한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두 자매는 고생 끝에 풍속 속에서 자신들의 의지대로 길을 개척했으니 박수 쳐줄만하다. 물론 자매들 앞에 예고된 생활도 기대에는 못 미친다. 에드워드는 풍족한 처지가 아니며 페라스 부인은 여전히 엘리너를 고깝게 볼 듯하고, 메리앤도 자신을 매료하던 조건들에서 거리가 먼 사랑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다만 금액이 아닌 마음을 맞춘 만큼 두 쌍의 부부는 험난한 길을 앞으로 잘 헤쳐나가리라고 기대해 본다. 결국은 자기네 의지로 개척한 운명이 아닌가!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완벽하게 행복해지고 싶답니다. 그렇지만 다들 그런 것처럼 제 방식으로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이성과 감성」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인공들의 능동성으로 사건이 진척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자매의 행동을 통해 풍속을 능동적으로 극복하면 소설의 재미가 더 진했을 텐데, 그보다는 자매를 둘러싸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사건이 저절로 해결되는 형식으로 보여서 아쉬웠다. 결말도 풍속의 비판적인 면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풍속을 자의로 뒤집은 격은 아니어서 더욱 아쉽다. 종장에서 서술자가 이런 말을 한다. "자기 이해관계를 열심히 끊임없이 챙기다 보면 아무리 그 과정에서 명백한 방해에 부딪힌다 해도, 시간과 양심의 희생 말고는 다른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 손아귀에 들어오는 재산은 다 확보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정략결혼을 한 사람들의 행복이 질적으로는 낮을지 몰라도 양적으로는 충분하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보면 자매의 성공을 더 확실히 치하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결국 돈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문장을 명제가 아닌 바람으로 끝낸 점이 아쉽다. 다만 결말의 아쉬움은 작가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사실 현실에서도 말이야 마음이 중요하다지만 아직도 돈에 이끌려 배우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성과 감성」을 통해 관계를 맺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읽는 순애 소설이어서 감흥이 남달랐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지금은 진부한 연애 소설로 취급되는 감이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잘 그렸기에 지금도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전해지는 것 같다. 다음에는 제인 오스틴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슨 책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 잘 쓴다 너. 나는 어제 다 읽었는데 나도 전개가 주인공에 의해 주도적이지 않아서 아쉬웠음. 잘 읽고 감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