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부터 시리즈

관계의 예술, 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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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머리말


난 이우환의 작품은 물론 현대미술 전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고,

이우환의 작품을 실제로 본 것도 단 한 번뿐이다.


그러니 나는 이우환의 예술에 대해 논평할 처지가 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이우환의 각종 글에 대해서도 무지한 부분이 많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우환에 대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난 그만큼 이우환의 예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이우환의 예술 세계를 조감하는 일이지만,

더불어서 이우환의 예술 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포교를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글이 위의 두 목적을 잘 수행하길 바라며, 시작하자.



1. 관계의 예술


이우환의 예술 세계는 정말 복잡하다.

그렇다면 그 복잡함의 근원은 대체 무엇인가?



각종 분야를 넘나드는 잡다한 작업물들 때문일까?

그가 천착한 철학이라는 학문의 난해함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이우환은 그런 사람인 것인가?


이러한 답들은 모두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우환의 예술이 그토록 복잡하게 느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지향하는 예술이 ‘관계의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누군가 혹은 무엇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관계는 정말 다양한 양상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며,


그렇기에 관계란 정말 복잡하다.



이우환은 이러한 복잡한 관계를 예술로써 승화시킨 작가이다.

그의 예술이 우리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 관계가 어렵다는 걸 지칭한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우환을 그렇게도 휘감았던 복잡한 관계 속으로 한 발짝씩 나아갈 것이다.


사상가, 예술가들의 이름이 다소 나올 것이나, 배경지식 없어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첫 번째로 다룰 건 이우환이 몸 담았던 모노하와 그 의의에 대한 것이다.


2. 모노하와 그 의의


모노하, 사전적인 정의로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까지 일본에서 이뤄진 예술 경향을 말한다.


모노하가 어떤 예술을 뜻하는지 떠들기 전에,


백문이 불여일견, 모노하의 시초로 일컫는 작품 하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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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세키네 노부오<위상-대지>


우리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흙으로 된 기둥과 구덩이, 기둥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주위 풍경 정도가 전부다.



너무나 단순하고 우직한 작품임에도 불하고 우리는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다.


땅을 파내어 기둥을 쌓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엔 주위 풍경과 대조하여 솟아오른 흙기둥이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걸 알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좀 더 나아가면 기둥이 땅을 옆에서부터 뺏어와 올라서 있단 점에서 일종의 악의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는 가냘픔,

당장이라도 다시 흙이 떨어져 내려 땅에 떨어져 내릴 듯한 유한성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나 다양한 인상들이 촉발된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이 작품에선 파인 땅과 우뚝 솟은 흙기둥 사이의 관계가 이러한 인상들을 촉발시키고 있다.


관계 형성은 모노하의 대표적 특징으로, 철저하고 정밀한 배치 구조와 방식은 강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 편에서 보면 아무리 배치 구조와 방식을 고민했다 하더라도,

너무 대충 만들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과거의 사실주의적 회화나 조각은

분명 각종 기술이 쓰였고, 작가의 고된 노고가 깊게 묻어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 본 모노하 작품은 너무 단순하다.

‘나도 저건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말이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비판들은 모노하 작가들이 원했던 것이다.


왜냐면 비판의 기저에는 ‘작가의 의도와 철저한 개입을 바탕으로 완결된’ 예술작품만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고, 그런 보편적인 인식을 뒤집기 위해 그들이 모노하를 부르짖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몇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근대란 대체 무엇인가?

‘근대’란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들을 한번 나열해보자.


이성, 합리, 실용, 대량생산, 공업화, 기계, 산업혁명, 추상, 계몽....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쇼펜하우어가 말한,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내 발밑에 두고, 모든 것이 내 의도와 내 생각대로 조종될 수 있다는 생각,

그러한 부르주아의 착각이 만연한 시대가 바로 근대이다.


이러한 근대적 의식은 예술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예시로 칸딘스키는 자신의 작품명을 ‘composition’이라고 많이 지었다.

이는 결국 현실에 없는, 내 머릿속으로 보는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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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 Composition VII



또한 앞서 말한 칸딘스키는 물론 몬드리안 같은 추상화 작가들의 공통점이,

정확히 자기가 머릿속에서 구상한 대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내가 보는 세계를 나타내며, 그 연장선에서

내가 보는 방식대로 구조화된 세계를 나타낸다.



다시 앞선 논의로 돌아와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작가의 의도와 철저한 개입을 바탕으로 완결된’ 예술작품이야말로 예술작품이라는 근대적 시각을 깨트리는 것이 이러한 모노하 작가들의 지향점이자 의지이다.


미셸 푸코가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인간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것도,

세계를 자기에 맞추려는 근대 부르주아의 의식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노하 작가들은, 근대적 예술에서 벗어나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생각해보면 대충 만들었다는 비판이야말로 모노하 작가들의 분투를 가장 칭송하는 표현인 것 같다.


정리해자면

모노하 작가들은 근대적 인간을 부정하며 최소한의 개입으로

관계를 설정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은

‘모노하’에서 ‘모노’가 물, 즉 물체를 의미하듯이,

물체 그 자체를 탐구한다.


이제 모노하라는 큰 틀을 좁혀 이우환의 모노하 활동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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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전


3. 관계항


단지 시대적 기류를 따른다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기류가 있다면, 그 기류 속을 비행하며 자신만의 것을 발견해

그것을 추진력 삼아 밀고 나아가야 작가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우환이 찾아낸 자신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그건 이우환이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변주를 선보이고 있는

<관계항> 작업일 것이며,



모노하 작가이므로, 관계항 작업에 주로 쓰이는 사물인

돌, 그리고 철판일 것이다.



그는 돌과 철판의 거리를 미묘하게 조정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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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 위에 돌을 올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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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을 살짝 틀어지게 만들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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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통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왜 돌과 철판을 선택한 것이며, 그 둘은 어떠한 관계를 이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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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물질적 가치가 거의 없는 일상적 사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맹구가 돌을 모으는 모습을 보면, 정말 하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하찮다고 여겨지는 돌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은 성립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장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만 해도, 금속으로 이루어졌고, 다들 아시다시피 모두 돌에서 왔다.


돌은 또한 영겁의 시간을 거쳐 지금 이곳에 자리한 자연이자,

무의식적으로 상당한 무게와 단단함을 추측하게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엔 돌의 이러한 다양한 특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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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돌의 다양한 특성 때문에 그는 돌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철판에 대해 말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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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은 금속이므로,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돌에서부터 왔고,

그렇기에 그 둘은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



또한 철판은 산업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이우환의 <관계항>에선 자연이자, 시간을 담고 있으며, 원시적인 돌과

인공이자,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현대적인 철판이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가, 처음에는 장난처럼 보이는 예술작품이

이제는 대화의 장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 장을 끝내기 전, 덧붙일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가 돌을 자신을 대표하는 물체로 내세운 이유에 관한 것이다.


뒤샹의 <샘>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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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의 <샘>은 기본적으로 변기이며,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다른 말을 가져다 붙여도, 결국엔 그냥 변기이다.


이러한 표상만을 보여주는 예술작품을 오브제 예술이라고 하며,

뒤샹의 <샘>은 그중에도 레디메이드, 즉 작가가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 예술이다.



이우환은 자신이 돌을 채용한 건 레디메이드의 반대 개념을 제시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레디메이드가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오브제를 제시한다면,

그의 돌은 자연의 손에서 탄생한 오브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제 관계항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의 회화 작업을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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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계의 회화


그의 회화는 크게


<~으로부터> 연작과 <조응> 그리고 기타 작업들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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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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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연작은


모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캔버스의 위부터 아래, 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점과 획들은 점차 사라져가게 된다.



그가 이러한 회화로 당도한 이유는 어릴 적 동양화를 배울 때,

선생으로부터 모든 그림이 점과 선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규칙적이고 조직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우환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회화 작업이, 캔버스는 물론 공간 전체를 열리게 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여백이란, 단지 비어있는 공간과는 다르다.

칠해져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서로 관계를 이루며, 비어있는 공간에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때,

그것이 비로소 여백이며, 무한으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점과 선의 세계는 점차 저물기 시작했는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엄격하고 고된 작업에, 그의 몸은 점차 지쳐갔고,


조금씩 선이 비뚤어지며, <바람으로부터> 연작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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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바람으로부터


그의 작업엔 기존의 작업물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비정형적인 선과 점들이 난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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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바람으로부터


그러나 그의 회화에 불어온 그러한 바람들도 점차 꺼져가고,


그 빈자리엔, 현재 그의 주된 회화 작업인, <조응> 연작이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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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조응


점일까? 아니면 선? 혹은 면?

특수 제작한 두꺼운 붓으로 굳어진 듯한 회색의 흔적만이 그의 회화에 최종적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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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은 자신의 조응 작업에 대해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여백이 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며,


추가로 조응 작업의 경우 붓의 흔적이 작품의 정중앙이 아닌, 측면에 위치함으로 인해,

사람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그걸 정중앙에 놓으려는, 그가 모노하 전에 빠져있었던 착시 효과를 의도했다고 한다.



5. 지금 이 시대의 예술가



글의 서두에서 이우환을 휘감았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했다.


근대와 현대, 자연과 산업, 작업물과 몸, 언급은 따로 되지 않았으나 자신의 국적까지.


그 모든 영역에서 이우환의 예술은 관계의 예술이자, 관계에 의한 예술이자, 관계를 위한 예술이라는 것을 이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이 시대의 예술가란 대체 무엇인가?

이우환이 걸어온 발자취와 그의 작업물들이 그러한 복잡한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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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 르 코르뷔지에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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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참고 서적과 생각으로부터 시리즈


만남을 찾아서 - 이우환

양의의 예술 - 심은록

Lee Ufan - 이우환

이우환의 작품세계에 관한 연구 : 작품 '관계항'을 중심으로 - 김태율


생각으로부터 시리즈는

어떤 주제를 잡고 관련 책들을 읽고 난 후

정리해서 글로 작성하는 개인 프로젝트로


매달 하나 씩 올라올 예정입니다.


다음 글은 아마도 조르주 바타유에 관해서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