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가장 적합한가?
내가 잘 몰라서 말하기 조심스럽네.
반박이나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는 글이니까
내가 틀린 부분 지적도 좋고, 다 좋아.
가장 원하는 건 제목의 질문이고.
예컨데 카뮈같은 경우에는
-인생은 부조리한가?
-그렇다면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자살해야 하는가?
이런 주제인 것 같아.
불교라면 인생은 고통이므로
불교의 최종목표는 결국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
이런 느낌인 것 같아.
쇼펜하우어는 약간 허무주의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고.
쓰이는 단어나 개념에 관계없이 경험적으로
인생이 고통, 부조리인 건 너무 동의하는 바야.
내가 읽고 싶은 건
"그러니까 무의미하다." 혹은 "인생은 고통이다."로 끝나는게 아니라
인생은 고통이니까
고통을 회피하고 외면하려 들지말고
고통을 받아들이고 즐기고,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라는 취지의 의견이야.
작가, 철학가 상관없고.
그리고 그 논리가 맞는지, 주장자체가 맞는말인지 그런 건 관심없어.
난 인생의 답이나 진리를 찾는 게 아니라
정답을 정해놓고 거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걸 찾는 거라서
그냥 읽으면서 계속해서 저런 뽕에 차오를 수 있으면 돼.
니체가 맞을까?
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책이나 사람 추천해줘!!
항상 친절하고, 통찰력있는 답변 고마워.
- dc official App
제목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니체가 맞는거 같음. 초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통을 자기 극복과 발전의 단계로 삼고 이를 즐기는 사람을 의미하니까. 더 넓게 보자면 피상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서 끊없는 고통에서 벗어나자고 말한 쇼펜하우어 (불교랑 말하는 결이 비슷하긴 함. 애초에 쇼펜하우어가 불교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보니까) 아니면 죽음을 직시하고 자기다운 선택을 하는 현존재를 주장한 하이데거 정도?
3번 정독했어. 너무 좋은 답변 고마워. 똑똑한. 청년 - dc App
니체는 자신에게 닥치는 일들이나 자신이 하는 일을 모드 긍정하고 카뮈는 사는게 무의미하고 덧없다해도 살으라하는 거 아닐까,,
그러게, 그런 느낌인 것 같아.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냥 사유같은 느낌이라서ㅋㅋ - dc App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해결책은 카뮈가 말하는 거로는 자살은 도피또는 회피, 사는 것이 반항이고 유일한 해결책,, 요즘 유행하는 쇼펜하우어의 책은 읽지 않고 강의만 들었지마는 해탈하는 것, 모든 욕망을 절제하고 사는 거,, 불교랑 닮은 점이 있지,, 근데 쇼펜하우어도 자살을 옹호하진 않음,, 그래서 고통을 즐겁게 받아들여라라는 요지의 글은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즐기지 않아도 도망치진 말아라 하는게 카뮈인거 같음,,, 카뮈는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책이 좋다,, 이방인이나 페스트도 좋았음,, 개인적으로 나는 니체는 플로우차트 따라 읽는중,,
내가 아예 틀리게 알고 있진 않았나보다 다행이야ㅋㅋㅋ 나 지금 이방인 읽고 있고, 페스트 샀어. 최초의 인간도 있긴 한데 안 읽을 듯ㅋㅋㅋ 사실 페스트보다 시지프 신화가 읽고 싶은데 책세상 개정판 나오려면 아직 먼 것 같네. 니체는 차라투스투라, 비극의 탄생, 사는 게 힘드냐고 어쩌고. 이렇게 3권 있는데 이방인 다 읽으면 박찬국교수님 책부터 읽어보려고!!! - dc App
사실 카뮈의 그냥 "살아라"가 더 맞는, 더 진리에 가까운 관찰결과, 혹은 사유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1=1이다. 이런 느낌이라서 니체같은 말을 듣길 원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고ㅎㅎ - dc App
근데 삶이 힘들때에는 개인적으로는 니체보다 카뮈가 더 낫다 생각햇음,,, 개인적으로는 니체도 좋아하지만서도 카뮈가 더 와닿는게,, 위버멘쉬는 진짜 초인인거임,,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이나 광개토대왕같은,,, 그래서 더 잘 버티고 즐기는거겠지라고 생각했음,, 니체도 위버멘쉬도 아무나 될 수 있는거라 말하기도 했고,, 근데 카뮈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그냥 살고 저항해라,, 하는 느낌이라 현대인에게 더 잘 맞는 느낌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임,, 니힐리즘이나 실존주의 그런 거 다 좋아하지만,,,
정말 맞는말임. 내가 "1=1이다."라고 말한 게 카뮈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결론이라서 좀 더 발전을 원했었던 거임. 정말이지 이방인 굉장히 재밌게 읽고 있음. 거기다가 철학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도 카뮈 글이 나랑 잘 맞아서 그런건지, 카뮈 글 너무 잘 쓴다고 생각하고 있음. - dc App
여튼 적게 일하고 많이 버셈. 인생 날먹 성공하시길. - dc App
불교에서 말하는 고( dukkha !=고통)은 우리가 아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을 유발하는 조건을 말하는거양. 행복도 둑카에 들어감. 행복은 곧 이어서 행복의 조건의 부재 또한 가져오니까. 불교에서 둑카는 고통을 유발하는 조건이지 고통 그 자체가 아님. 그리고 둑카는 올바르게 직시하고 다뤄야하는 것이지, 무작정 피해야 할 나쁜 것이라는 개념도 아니얌.
둑카는 피할 수 없지만, 둑카로 인한 고통은 선택의 사항임. 둑카 -> 고통 같은 인과관계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고 이 토대에 무아론이 있는 것, 불교에서 열반의 성취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고, 열반에 둑카와 고통의 가짜 인과가 끊어짐이 자연히 따라오는 개념임. 다시 태어나지 않음도 정말 말 그대로 윤회에서 생의 소멸을 의미하는게 아니야. (애초에 '무아'인데 누가 소멸하고 누가 다시 태어나겠음)
이제야 봤네.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좋은 댓글 진심으로 고마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