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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작가들은 자신을 패배 전문가라 부른다. 문학이란 것 자체가 대부분 패배의 기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인간보다 강하고 잔인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승리보다는 늘 패배를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의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져온 작가들이 패배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제나 패배의 기록만 읽을 수는 없다. 황현산 선생이 자신이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때로 우리에게는 승리의 서사가 필요하다

물론 문학에도 승리의 서사가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승리의 서사에 가장 가까운 장르는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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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란 대체로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이 전말을 알 수 없는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을 기본 틀로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준다는 것, 추리소설의 쾌감이 여기에 있다. 

때문에 추리소설과 미스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사건이 이해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기괴하면 기괴할수록 사건을 해결한 탐정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추리소설은 비합리적 세계에 대한 인간 이성의 승리를 노래한다

(이는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이다

에드거가 쓴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은 비합리적 사건에 휘말린 합리적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은 오직 결론뿐이다

추리소설에서는 합리적 개인이 사건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공포소설에서는 비합리적 사건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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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용의자 X의 헌신>을 다 읽고 느낀 감정은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승리보다는 패배의 감정에 더 가까웠다

옛 친구의 범죄를 고발해야 하는 유가와의 절망감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어찌 됐건 사건의 전말은 모두 밝혀졌고, 진범과 공범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유가와는 이시가미와의 두뇌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에는 패배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가? 무엇이 유가와로부터 승리를 빼앗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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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시종일관 두 인물의 이성적인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나 이시가미에 대한 묘사에서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가 깊은 조예를 보이는 수학은 감정 같은 불확실성을 배제한 순수 논리 학문이다

이시가미는 수학자로서의 능력을 살려 하나오카 모녀의 상황을 분석하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

이시가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자신만만한 그의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나를 믿어주세요. 나의 논리적 사고를 믿고 그냥 맡겨주세요.”(p57.) 

그러나 이토록 논리적인 이시가미를 추동하는 원동력은 논리가 아니다. 하나오카 야스코에 대한 사랑과 은혜를 입었다는 감정, 단지 이것에 이끌려 그는 범죄에 가담한다

심지어는 자신을 진범으로 꾸며 하나오카 모녀를 구하고자까지 한다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과정까지는 철저하게 논리적 판단 하에 이루어졌다. 때문에 어떻게 범죄를 은폐했는가 하는 문제는 논리적 인간인 유가와에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왜 이시가미가 범죄에 가담했는가라는 동기 문제에 대해서 유가와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다

논리로는 분석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라는 알 수 없는 대답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논리적 인간인 이시가미도, 유가와도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패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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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승리만을 노래해 온 전통적 추리소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왔다

그 중에는 오히려 인간의 이성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보이는 작품 역시 존재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처럼 사건을 쫓는 이가 범인인 작품도 있고,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처럼 사건을 추적하는 인물이 정신 착란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카렐 차페크의 <메이즐리크 박사의 경우>에서 메이즐리크 박사는 이성이 아닌, 아주 우연한 예감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기에 흥미로우면서도 잘 팔릴 법한 방법을 하나 더 제시한다

세상에, 추리소설과 로맨스를 짬뽕시켜서 전통적 추리소설에 반기를 들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책장을 막 덮었을 때는 추리소설을 가장한 로맨스라고 폄하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에 조예가 깊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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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은 추리소설로서 수작은 아니다

개인의 신체에 대한 정보가 적은 일본에서라면 가능할 트릭일지 모르지만, 한국 같이 혈액형부터 온갖 정보가 수집되는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트릭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통적 추리소설과의 차이를 생각하며 읽으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로맨스 요소가 좀 있어서 남성 독자보다는 여성 독자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일본과 한국 모두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존재한다. 작품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볼만 한데, 개인적으로 한국 버전을 추천한다

일본 버전은 뭔가 드라마를 영화로 늘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다

일본과 한국에서 연극으로도 개봉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2014년도에 개봉했다

소설, 영화, 연극 중 연극을 가장 재밌게 봤다

옆 자리에 앉았던 한 여성분이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처럼 꺽꺽 울지만 않았다면 나도 울 뻔했다

재개봉할지 모르겠다만, 재개봉한다면 관람을 추천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