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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의 영광을 이끈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4세의 이야기로, 우리는 흔히 필리포스를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저자는 필리포스란 인물을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가 아닌 필리포스란 인물 자체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책의 특징이라면 저자는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해석하며 여러 고대 문헌을 비교하고 진실성, 합리성을 검토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역사서 특유의 딱딱함이 배어나오지만 두 영웅의 일대기가 주는 호쾌함이 더해졌기에 정 못 씹을 정돈 아니다.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정복군주는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과 함께 눈 떼기 어려운 선망의 대상이다.
난 그들에게서 너무나 평범한 내 인생도 어쩌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희망을 투영하며 뭔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알렉산드로스의 행적을 담은 이미 죽어버린 활자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훑고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그를 이 시대로 부활시켜 우리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리더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러나 과거의 인물을 리더의 표본으로 삼아 연구하기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먼저,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용인되던 행위의 맥락이 현재와는 너무나 다르게 읽혀 정당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고,
그 인물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없기에 그를 농축해놓은 활자가 과장되거나 진실하지 않다면 그 인물이 가진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오염되어 있어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없는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덕목을 리더의 덕목으로 볼 것이냐에 관하여 사회 구성원 전체가 만장일치로 덕목을 합의할 수 없는 어려움이 늘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의 모습을 연구하다보면 분명 무언가 공통적으로 꼽을 만한 위대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게 내 가정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신화는 아버지 필리포스 4세가 공을 쌓으면 쌓을수록 알렉산드로스는 눈물을 흘리며 우울해했다는 일화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가 공적을 쌓을수록 자신이 세울 공은 적어지고 명예를 드높일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인데 얼마나 비범한 일화인가.......
물론 필리포스가 당대 최고의 국가권력급 활약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작한 페르시아 원정 덕에 알렉산드로스에게도 아버지를 뛰어넘어 이름을 떨칠 기회의 장이 마련되었다. 다리우스의 대군을 회전에서 무찌른 대가로 그가 얻은 고색창연한 고대의 대도시들과 왕국은 온갖 화려한 빛으로 가득했고 정복자의 귀는 즐거운 가락으로 가득 찼다.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들에게 기본 급료에 더해 업계 최고대우로 N년치 성과급을 지급해 관대함을 보여줬고(물론 자신은 훨씬 더 많이 가져갔지만 자기 몫의 정의를 중요시하는 당대 사회 분위기 상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부하들에게 아시아드림이란 강력한 동기를 제공함으로써 자기의 비전을 공유해 유대를 맺었을 뿐만 아니라 점령지들의 문화를 인정하면서 점령지의 불만을 최소화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번뜩이는 신속한 결정, 강력한 추진력으로 어려움을 해쳐나갔다.
리더에는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자기의 압도적 능력을 바탕으로 남들에게 억하고 입 벌리게 할 수밖에 없는, 하자고 하면 부하들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는 솔선수범형 능력있는 리더와 부하들의 능력을 간파하는 데 능하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최상의 효과를 거두는 리더가 있다고 하면 알렉산드로스는 단연 전자의 면모가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똑같은 왕조를 창건했다 하더라도 마이클 조던보단 알렉산드로스의 지배 범위가 훨씬 넓은 터 후자의 능력도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불상의 안타까운 요절로 인해 왕국을 유지하고 경영하는 리더십을 충분히 살펴볼 수 없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만으로도 충분하다.
알렉산드로스는 끝없는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계속 채우려 했고 실제로 자신의 욕망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인물로 위대한 인간의 표상이지만 위대한 정신에겐 인간의 필멸이란 너무나 큰 제약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매듭을 푼 자만이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일화에서 손으로 풀어헤치는 게 아니라 칼로 내려쳐 풀었다는 유명한 일화는 알렉산드로스를 잘 보여준다. 그 상황에서 가오는 살려야겠고.. 걍 못 풀 거 같으니 땡깡부리다 칼로 내려친 거 아녀? 란 의혹의 연기에 매캐해지지만 긍정적으로 보련다.
문제 해결 방식의 전환이자 발상의 전환, 더 나아가선 시대의 방식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능력, 즉 그의 통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인 것이다. 그래서 당대인들의 상식과 기준을 뛰어넘은 알렉산드로스의 시선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이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당시의 도시국가들은 직접 다스리는 영토의 확장과 시민의 증가를 꾀하기 보단 상대적 우세를 바탕으로 기존의 균형과 질서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했던 반면,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가 영토를 주고 사위로 삼고 왕으로 봉할테니 제발 그만해달라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더욱 먼 곳을 향해 있었다.
페르시아를 완전히 지배하고 세계의 끝까지 당도하는 것. 그것은 분명 당대의 기준을 뛰어넘는 더 넓고 깊은 시선이자 통찰이다.
항상 시대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는 것,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을 이룩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초월해 결국에는 이뤄내고야 마는 것. 통찰과 결국 성취를 이뤄내고야 마는 것이 바로 리더의 자질이 아닐까? 알렉산드로스의 사례가 보여준다.
과연 21세기의 리더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 애초 의도와는 달리 알렉산드로스에게서 발견한 위대한 통찰은 도리어 나의 범용함만 뼈저리게 느끼게 할 뿐이고 내 온몸엔 방금 바닷가를 거닌 듯한 찝찝함만이 감돈다. 하지만 카이사르처럼 이 무력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며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이야말로 위인의 역사를 읽는 진미다.
알렉산드로스 진짜 미친놈이던데 황금갑옷 입고 선두에 섰으나 매번 싸워 이긴…
어그로 복장으로 혼자 성벽넘고 난리부르스 떨다 죽을뻔한거 레전드 그래서 단명한 거 아닐까 싶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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