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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은 카프카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이다.
저번에 알아본 '역설적 역전'이 아이러니로 소설 전체를 공명시키는 앰프라면 '당황'은 그것의 케이블과도 같다.
카프카의 변신이야말로
이러한 '당황'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작품일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중략)"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하고 그는 생각했다.'
<변신>(박환덕 역) 첫 장 - 프란츠 카프카
우리는 여기서 카프카의 '당황'이 뭔지를 읽어낼 수 있다.
카프카에게 당황이란 '이질감'의 표현이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벌레가 되어 느끼는 '이질감'인 것이다.
좀 더 파고 들어가면
'내가 사회와 달라졌음을 실감하는 것'
즉 '자신에 대한 이질감'이 바로 당황인 것이다.
<소송>에서는 어떤가?
요제프 K는 자신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체포되지 않은 상태인 주위와 달라졌고,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사법체계 속으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이질감
즉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실감했을 때
비로소 카프카 문학의 주역들은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당황은 카프카 문학의 시작점으로써 톡톡한 성과를 보여준다.
독자 또한 이러한 당황을 겪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불확실하고 기이한 세계의 일면에 대한 궁금증으로 소설을 읽어가는 독자들은 알 수록 더 모르게 되는, 허우적댈수록 더 빠져드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책 속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점이 카프카의 소설이 가진 마력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황은 카프카 소설의 주역들이 겪는 스스로에 대한 이질감의 표현이며, 같이 당황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된 독자를 그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그러나 <성>의 K(쓰기 불편하니 카로 쓰겠다)만큼은 그것에서 예외다.
먼저 카는 요제프 카나 그레고르 잠자와 같은 다소 수동적인 등장인물과 다르게 이러한 당황을 능청스럽게 넘기며 능동적으로 나아간다.(표면적으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거의 서술되지 않는다)
또한 카는 그 자신이 당황을 겪기보다 우리에게, 나아가 마을 사람들이 당황을 겪게 한다.
먼저 카의 등장과 토지 측량사라는 그의 신원부터 우리에게 당황을 안겨준다.
작중 어디에도 카가 마을에 의해 받았을 토지 측량 요청서나 임명서가 등장하지 않으며
토지 측량사는 독일어로 떠돌이와 유사한 철자를 가지고 있기에 카는 어쩌면 토지 측량사라는 신원을 그저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카는 슈바르처가 전화를 걸어 토지 측량사는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자신이 맞고 쫓겨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카가 정말 토지 측량사가 맞다면 그런 생각을 할 이유도 없고, 증거를 들이대면서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수 둘, 예레미아스랑... 한명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간 조수들은 그들을 카의 예전부터 있던 조수라고 하며 그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카는 다소 놀란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의 조수란것으로 입장을 바꾼다.
후반부에 밝혀지듯 조수들은 갈라터라는 성의 서기였나 비서였나가 카에게 가라고 명해 온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에도 카는 우리를 당황시킨다.
참고로 이때 전화로 성의 관리에게 전화를 거는데
이때 자신의 신분을 자신의 옛날 조수라고 속여서 거는 것도 앞서 말했던 토지 측량사가 거짓말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연유로
<성>의 카는 기존의 카프카 주역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걸 끊임없이 인식하지만, 그때그때 자신이 새로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처신하며 마을 사람들 내에 급속도로 끼어든다.
이러한 특성은 이름에서 어느정도 암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마치 베케트 삼부작에서
말론이 죽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된 것처럼
요제프 카는 소송 절차 끝에 죽고
카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이제 성과 마을로 치환된 소송에 녹아들며 오히려 더욱 강하게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주역인 카는 마치 성의 남자가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기이한 힘을 가진 것처럼(소르티니와 아말리아 파트) 프리다를 끌어들이며
(이 또한 독자가 당황할 수 있는 포인트이다)
성의 관리가 수많은 하인들을 거느린 것처럼
조수들을 거느리고
클람에게 사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편지마저 받음으로써
또 하나의 '성'으로 탄생한다.
(중간에 클람이 보낸 한 편지에서 토지 측량을 전혀 하지 않음에도 잘 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오는데,
이는 어쩌면 사적인 편지에 걸맞게,
카라는 성을 세우기 위한 토지 측량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걸수도 있다)
그러나 카라는 성은 여러 한계를 지닌다.
(이 글에선 그 중 하나만 다루겠다)
첫째로 실체가 없는 진짜 성과는 다르게
카라는 성은 실체, 즉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덮숙히 쌓인 눈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우연히 자신의 문제를 풀어줄 비서와 만남에도 불구하고 잠에 들어버리며
(브로트의 말에 따르면)미처 쓰이지 못한 마지막 장에서 성에 출입하는 것을 허가받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체는 망가지며 죽어버린다
이렇듯 나약한 신체는
실체없는 권력 앞에서 산산이 조각난다.
K란 또 하나의 '성'이며
자신의 세상을 구축해나가지만
신체적 한계로 믿음으로 구체화된 '성'에
패배하게 된다.
이는 카프카가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며 느낀, 이질감이라는 것은 대체 뭘까? 그리고 왜 그걸 극복하기란 그토록 힘든 것인가? 하는 고민의 답이다.
그 원인은 첫째로 너무나도 나약한 한 인간의 신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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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아직 틀이 확실히 잡힌 건 아니지만 프리다를 중심으로 여주인, 기자, 한스, 면장, 페피, 바르나바스 가족 등등 개별 인물로 뻗어나갈 것 같네요. <성>만 분석할 것 같습니다 - dc App
잘 읽어썽요! - dc App
저번에 공간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번에 몸에 대해서도 그렇고 '헤테로토피아'라는 책 한번 읽어보셈. 분량도 길지 않음. 논문이랑 인터뷰 묶어놓은 건데 첫번째인 '헤테로토피아'랑 두번째인 '유토피아적 몸'이 네 글이랑 상당히 잘 맞는 부분이 있음. 같이 읽으면 저 좋은 분석이 될듯.
ㄱㅅㄱㅅ 읽어보겠음 - dc App
근데 원래 카프카가 포모 시초로 평가받는 문인이라 비슷할 수밖에 없을듯 - dc App
네 저번 글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의미에서 말한거임. 둘이 뭔차인지는 지면이 부족해서 설명 못함
현대철학 상세하게는 잘 몰라서, 포스트 구조주의 관련한 개론서라던가 있을까요 - dc App
솔직히 어떻게 추천해야할지 모르겠음. 나는 포모라는 게 약간 실체없는 허수아비처럼 느껴지거든. 그리고 그냥 철학사조 하나 붙여서 이렇다하는 것도 좀 안 와닿음. 막 실존주의 예술 이러는더. 그냥 구체적인 철학자 한명 붙이는 게 나음. 나는 헤테로토피아의 저자인 미셰 푸코적인 의미에서 포스트구조주의란 말을 쓴거임. 그런 의미에서 '동일성과 차이'라는 아트앤 스터디에서 하는 푸코 미학 인강이 있는데 이걸 추천함. 근데 5만원 쯤해서 비싸갖고 추천하기 좀 그렇긴함. 그리고 어려움. 철학에 밑바탕이 없으면 걍 내가하는 말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셈
그냥 푸코를 나중에 좀 파봐야겠음 하여간 ㄱㅅ - dc App
아냐 문학 좋아하는 거 같은데 들뢰즈를 파봐. 들뢰즈는 잘 모르지만 그게 나을듯 거임. 좀 더 전통적인 철학자거든. 푸코는 사회학자에 가까움
들뢰즈는 이미 도전하려고 했고 니체 책들 읽을 예정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