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작 혼모노 해설은 자본주의 통치성이 강제하는 맹목성 이야기로 읽을 수 있지. 그래서 중요한 건 혼모노에 나오는 신령(새 신아기에게 빼앗긴)이 그 맹목성을 말하기에 적절한 상징이냐 아니냐인데...
중요한 건 소설의 요소를 축자적으로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거야.
신령은 나누거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고유한, 그래서 경쟁이 필요한 자원이기도 하지만(표면적인 영역) 그 특성으로서만 인해 '나눌 수 없는,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쟁을 통해서만 취득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무엇'의 상징이자 그러한 세계의 구심점으로 기능할 수 있지(상징계의 영역).
평론가의 역할은 표면적인 차원에서의 앞뒤가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밑으로 내려가서, 상징물들의 포메이션을 파악하고 그게 종합적으로 어떤 구조를 그리는지 말하는 데에 있지. 이 요소를 표면적으로만 읽어도 되는지, 혹은 어떠한 관념의 상징/대유로 읽어야 할지 결정하고 그 전체의 상을 정합적으로 정렬하는(align) 작업인 건데...
그걸 자본주의 통치성 비판에 부역하는 상징물로(그리고 세대 간 자본 이전에 대한 관념으로) 읽는 건 (소설의 전반적인 구성을 감안할 때) 무난한 해석으로 보임. 좌파 우파 이런 이념을 떠나서...
P.s
혼모노 소설 안 읽었다고 말한 이유는 대강 읽고(읽었다고 말하기 애매한 수준으로) 기존 지면 단평들 위주로 파악해 놔서 그럼.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님...
아마 제대로 읽으면 나는 젊작 해설이랑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할 것 같긴 한데... 사실 그 점에서 이 글도 큰 의미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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