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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실체가 없다.
그러나 권력은 관계 속에서 실존하며,
인간은 관계성의 동물인 까닭에
한 사람의 운명, 한 가족의 운명, 한 마을의 운명, 심지어 한 국가의 운명마저도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야 만다.
이토록 파괴적인 권력은 카프카의 문학에서 '기다림'으로 형상화된다.
혹자는 기다림이 왜 권력의 구체화된 효과인지 궁금할 것이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난 기다림이라는 일상어를 카프카 문학에서 통용될 수 있는 의미로 다시 정의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기다림은 권력 관계에서 성립된다.
직장 상사가 결재해주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기다림은 주종 관계와 같은 상하 관계, 한쪽이 다른 쪽에게 권력을 갖는 경우에 성립된다.
두번째로 기다림은 일방적이다
세번째로 기다림은 보편적이다.
시위 현장에 각자의 신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듯이
기다림은 정말 보편적인 행위이다.
네번째로 기다림은 극심한 피로를 동반한다
사내는 법 앞에서 기다리다 죽어버린다
모아보면
카프카의 기다림은 권력 관계 속에서 탄생하며,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의 응답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끝나는 일방적인 행위이자,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행위이고, 극심한 피로를 동반하는 행위이다.
기다림의 예시는 카프카 문학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가족들이 찾길 바라며 하염없이 갇혀 기다리는 것이나
<소송>에서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요제프 카나
<유형지에서>에서 죄인이 형의 집행이 끝나기까지 누워 기다려야 하는 것이나
<법 앞에서>에서 사내가 죽치고 기다리는 것도 있다
이제 기다림 얘기는 잠시 멈추고
저번 글 마지막 맥락으로 돌아오자.
기억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자면
카는 하나의 성으로 몸이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어
실체없이 동작하는 성과의 싸움에서 지게 된다.
그러나 '신체'가 카의 유일한 허점이 아니며
그것과 연관된 맥락에서 카가 성으로 성립가능했던 이유도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카의 두번째 허점은 카가 기다림을, 성의 압제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프리다와의 서사가 이러한 카의 약점을 열어젖히는데
먼저 프리다의 성격을 알아보자.
프리다는 기다림을 정말 싫어하는 인물이다.
먼저 프리다는 클람을 엿볼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이는 클람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종속되었던,
여주인의 행보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여주인은 클람과의 짧은 관계를 계속 추억하며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도 그 이야기를 허구한날 하는, 기다림에 종속된 인물이다.
그러한 여주인이 만약 클람과 계속 있었다면, 엿볼 수 있는 구멍을 만들었을까?
그녀는 클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를 끊임없이 기다리기만 했을 것이다.
이는 프리다가 기다림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방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는 등, 능동적으로 특히 빠르게 움직이며, 자아를 펼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 글에서 카도 그러했다는 점을 기억할 거라 생각한다)
카는 프리다에게 초면에 사랑한다고 하는 인물이니 프리다는 거기서 자신과 닮은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며, 토지 측량사라는 자신과 같이 애매하면서도 독특한 신분에 끌려, 성격대로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뜨겁던 둘의 사이가 소홀해지기 시작한 건
카가 사실 자신이 그렇게나 종속되길 꺼렸던
클람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에게 고백했다는 걸 여주인에게 듣고 난 다음부터이다.
그래서 프리다는 성을 놔두고 다른 세상으로 가자고 카를 계속 설득하려 하지만
이미 기다림에 종속된, 관계에 종속된, 어쩌면 중독된 카는 끊임없이 성을 목표로 하고
클람과 만나기 위해 마차에서 죽치고 기다리거나, 어머니가 성에서 왔다는 한스와 열렬히 대화해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카가 프리다는 잊고 바르나바스 가족과 오랜 시간 대화하고 나서 프리다는 예레미아스에게 향하며 약혼은 끝이 난다.
중요해서 몇 가지 덧붙이자면
프리다가 바르나바스 가족을 그토록 싫어하는 까닭도 이러한 그녀의 성격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먼저 올가는 가족의 몰락 이후 2년동안 기다리며 계속 정보를 모으며 성을 알아내기 위해, 성의 권력을 인정하고 종속되어있는 인물이다.
바르나바스의 아버지도 아말리아가 한 일의 잘못을 사과하겠다고 관리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탄원을 하겠다고 하는 인물이다.
바르나바스도 가족의 기대에 힘입어 성 안에 위치한 일종의 대기실에서 일이 주어지기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이러한 가족을 뒷받침하는 아말리아 또한 그저 모든 일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성에 대한 기다림만으로 존재하는 바르나바스의 가족을 프리다는 혐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주인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도 그들을 혐오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말리아가 성에게 잘못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프리다는 기다림에 종속되지 않는 인물이고, 카는 처음에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결국 관계는 깨졌다.
그러나 아직 더 할 얘기가 남았다.
페피에 대한 이야기인데,
원래 브뤼켄호프의 하녀였고, 프리다가 카와 같이 떠나버리자 프리다의 자리를 차지한다.
페피는 며칠도 안되어 프리다가 카와의 관계를 끝내고 다시 브뤼켄호프에 돌아오자, 자신의 프리다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는다.(쓰여있는 부분 기준 소설의 마지막 파트이다)
먼저 프리다의 위치에 대한 분석부터,
오히려 카와 나가서 돌아옴으로써 그녀의 자리가 공고해졌다고 하고,
이는 다 프리다의 계략이라고 하며,
그 외에도 각종 분석을 늘어놓는다.
장황하고 복잡한 해설에 우리는 올가가 하인을 통해서 얻은 성에 대한 지식을 말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리다가 하나의 성으로 군림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국 이 작품엔 세개의 성이 위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다시 되돌아보면
클람이 카를 찾듯이
클람은 프리다를 찾고
카가 갑작스럽게 도착한 것처럼
프리다도 갑작스럽게 떠나는 등
여러모로 비슷한 지점들이 보인다.
진짜 성, 카의 성, 프리다의 성
이 소설은 이렇게 세개의 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다의 성은 다른 성들과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 존재하는데
결국 예레미아스라는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점이다.(이 점도 되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인이 관리보다 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프리다는 사랑을 통해 진짜 성을 자기와 대등한 관계로 포섭한 것이 아닐까?)
진짜 성이 형체없는 권력의 성이라면
카의 성은 도전정신의 성이고
프리다의 성은 사랑, 혹은 에로스의 성인 것이다.
이는 결국 모두 지배의 욕구, 니체식으론 힘에의 의지가 발현되는 기본적인 양태이며
카프카는 이러한 거대한 상호작용 속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탐구했던 것이다.
- dc official App
성 분석은 아마 다음 글로 마무리 될 것 같고, 아마 먼저 기존 분석을 정리하면서 카프카의 착상은 어떻게 나왔을지 생각해보는 정도로 끝맺을까 합니다. 각기 다른 성으로 존재하시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댓글(설령 안읽고 대충 디시콘을 달더라도)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 dc App
잘 읽었어요.
성 읽으면서 프리다 머임 하면서 읽었는데 이런해석이 ㄷ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자아가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으로 이전 글과 엮었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