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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가가 동물이 서술자로 나오는 소설을 한 두번 쓴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갑자기 동물로 변하기도 하고, 무언가 인간성을 가진 동물이 등장하여 기나긴 서술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변신]은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과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인 그레고르는 돌연 동물성을 가지게 되면서 인간성을 서서히 상실해 나가지만, 나름의 해방감 또한 맛보게 되며, 최후의 최후의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곤 한다.

[굴]에선 정체불명의 굴을 파는 동물이 서술자로 등장한다. 이 동물은 상당한 지능을 갖추고 있는 듯하나, 신체만은 어쩔 수 없이 동물의 그것이라 굴을 파는 데에 앞발과 이마를 사용해야 하는 그런 존재다. 이 동물은 자신이 파는 굴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에 시달리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꽤 명료한 이성과 본능을 지니고 있다.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에서는 쥐와 인간의 어중간한 혼합 종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이 수수께끼의 '쥐의 종족'들은 무언가 쥐에서 유래한 듯한 생리적인 특성들을 갖추고 있는 듯 하면서도, 정신세계는 인간의 그것과 꽤 유사하다. 이 쥐의 종족들은 어느순간부터 예술을 향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 하나, 어디까지나 문화적인, 경제적인 이유에서만 그럴 뿐이다.

[튀기(잡종)]에서는... 여러 동물이 마구잡이로 섞어진 기이한 동물이 등장한다. 외견상으로 봤을 때 절반은 고양이이고 절반은 새끼 양인 이 동물은 마치 개처럼 행동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고 인간과 소통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어느 개의 연구]라는 소설의 서술자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지 장애를 앓고 있는 철학자-과학자 들개'이다.

도대체가 이런 글을 맨정신으로 쓸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평범한 개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보통 고역이 아닐 텐데, 이 소설의 서술자는 (어디까지나 개의 입장에서)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데다가, 심각한 인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완전히 가로막힌 상태의... 그런 개다.

소설을 죽 읽어나가다 보면 독자는 한 가지 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건 바로 이 '학자 개'가 기본적으로 주변에 있는 '인간'이란 존재를 인지하지를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 개는 인간의 어깨에 업혀진 상태의 소형견을 '날으는 개'라고 인지하고 자빠졌으며, 인간이 주는 먹이를 '공중에서 나선을 그리며 낙하해선 자신의 주둥이에 유도되어 들어오는 음식'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 전체가 이러한 개의 철학적인 자기성찰과, 주변 환경에 대한 과학적인 방법 시도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물론 독자는 이러한 시도들이 완전히 무의미한 짓이란 걸 알고 있다. 이 '학자'는 인지 장애 상태에 빠져 있는 데다가...... 그냥 개니까.

난해한 소설을 많이 써낸 작가지만, 이 작품에선 거의 광기까지 느껴진다.


그 외에도, 구성 면에서 살짝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전반부는 자기성찰과 탐구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후반부는 누군가와의 대화로 장면이 이루어져 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카프카 버전인데 광기 몇 숟가락 첨가한 느낌.


그리고 '음악과 동물'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한 것 같다.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음악을 이해할줄 아는 자신이 벌레일리가 없지 않느냐" 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으며, [요제피네]에서는 아예 그러한 주제 자체가 소설 전체를 구성한다. 카프카는 쥐의 종족 중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이해할 줄 아는 요제피네에게 자기 자신을 상당부분 투영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개의 연구]의 주인공은 음악이란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음악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임을 다짐하며 소설이 끝나지만, 물론 그 연구가 잘 될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