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줄곧 달렸다. 


몸서리쳐지는 추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내 가절한 바람이었다. 


다음 마을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도 달리는 것은 필요했다. 


다행히 눈은 밤사이에 얼고 다져져 전날처럼 무릎까지 빠지지는 않았다. 


그런 길을 한동안 달리자 차츰 추위로 굳어 있던 몸이 풀리고 허연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추위가 어느 정도 가시자 이번에는 못 견디게 배가 고파왔다.


위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죄어오는 배고픔이었다. 


지난 사흘 동안 술로 끼니를 게을리 해온 것이 문득 후회스럽게 떠올랐다. 


견디다 못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헉헉거리며 눈 한덩이를 뭉쳐 씹어 먹었다. 


잠시 동안의 짜르르한 자극뿐 그것은 오히려 내가 애써 벗어난 추위를 일깨우고 말았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위기를 느낀 내 육체가 짜낼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속도를 더했다. 


길가의 가로수가 질주하는 차창에서 내다볼 때처럼 퍼뜩퍼뜩 내 곁을 스쳐갔다.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 걸음은 차차 느려지고 발길은 끌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새벽에 내가 영원처럼 달렸던 길은 실제로는 오 리도 못 되었다. 


추위와 배고픔이 차차 사라졌다. 


대신 간간 의식이 흐려오면서 알지 못할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두꺼운 눈이 푸근한 솜이불처럼 나를 유혹했다. 


나는 몇 번이고 그대로 누워 영원히 잠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길도 잘 분간되지 않았다. 보이느니 망망한 눈바다였다. 


나는 오직 본능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내 귓가에 갑자기 누군가의 고함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어이, 어이, 그 쪽은 길이 아니야. 이쪽으로 와.'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느 새 도로를 벗어나 논바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쪽이야, 이쪽'


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희미한 시력을 모아 소리 나는 쪽을 살폈다. 


첫눈에 가물거리는 모닥불이 들어오고 이어 지난해 원두막으로 썼던 것 같은 움막,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른어른 사람의 형체가 비쳤다. 


마지막 힘을 짜내 그리로 달려갔다. 


뜻밖에도 거기에는 칼갈이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이런 날씨에 무리했군'




그가 때고 있던 수숫대로 자리를 마련해 주며 삭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허물어지듯 주자앉으며 모닥불을 감싸 안았다. 


'조심해, 머리칼이 그을잖나.'


이번에는 조금 억양이 든 목소리로 그가 나를 부축하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전혀 내 의식에 닿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격렬하게 되살아나는 한기로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듯 모닥불의 열기를 받아들였다. 


'다리를 끌어들여. 옷이 타.'


그가 이제는 완연하게 감정이 든 목소리로 말하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겨 방금 붙은 불을 비벼 껐다. 


'우선 무얼 좀 먹어야겠군'


내 자세가 안정되자 그는 지고 다니던 그 상자에서 그을음 낀 냄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모닥불 곁에 간단한 화덕을 만들더니 눈을 꼭꼭 눌러 담은 냄비를 얹고 불을 지폈다. 


몇 번인가 눈을 더 떠 넣어 냄비에 물이 반쯤 차자 이번에는 예의 그 상자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내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그 라면 냄비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비운 후였다. 


그동안 그는 묵묵히 그런 나를 보고만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제야 약간 무안해진 나는 때늦은 인사를 했다. 


'라면 값은 내야 해'


다시 삭막하게 돌아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나는 황급히 주머니를 털어 남은 오백 원짜리 몇 장을 있는 대로 내밀었다. 


'이것도 너무 많아'


그는 그중 한 장을 집더니 다시 자기 주머니를 뒤져 백원짜리 동전 네 개를 거슬러 주었다. 


어찌 보면 좀스럽게 느껴질 셈을 하고 있는 것인데도 그런 그의 동작에는 어딘가 내가 거역할 수 없는 위엄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그래 뭣 때문에 첫새벽에 이 눈 속을 떠났는가.'


뜨거운 것을 급히 먹느라고 익어버린 입천장의 살 껍질을 뜯어내고 있는 내게 그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나는 한동안 당황했다. 


내가 바다로 가는 이유를 이 칼갈이 사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왠지 모르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솔직하고 간단하게 내가 향해 가고 있는 곳과 그 목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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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취식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라면 냄비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비운 후>라는 아주 간결한 단 하나의 문장 뿐인데도 


그 이전까지의 추위와 배고픔, 흐려져가는 의식, 그 와중에 우연히 나타난 사람과 불의 온기 묘사 같은 것들,


돈을 내라는 말에 아무 망설임 없이 라면값으로는 지나치게 과한,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꺼내서 건네는 모습이나


국물에 입천장이 데었다는 묘사 등등이



저 라면을 내 기억 속에서 천상의 음식으로 남게 해주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