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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까지 해서
<성>에 드러나는 세가지 성인
도전의 성, 사랑의 성, 권력의 성을 알아봤다.
그러나 사실 이 세개의 성이 왜
같은 이름으로, 같은 성으로 묶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다.
이 글의 목적은 먼저 위의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다.
성의 성립 요건이란 무엇인가?
첫번째로 바깥과의 역설적 역전, 정확히 말하면 허깨비라는 것이다.
(마을과 성의 역설적 역전 = 성은 허깨비)
먼저 카의 성, 도전의 성은
그 자체로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론 도전을 해야만 하는 구조 속에서 동작하는 것으로 도전 자체가 도전하지 않는 상태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프리다의 성, 사랑의 성은
주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포장되지만,
페피와 카가 말하듯 과거의 기억 혹은 무의식적 전략 등 수많은 주위 요소에 의해 산출되는 허깨비라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 그 불가해성, 난해성이다.
이는 별 말할 것도 없이 세 성 모두가 해당된다.
권력의 성은 그 자체로 일들이 불가해하고 수수께끼이고
도전은 누가 뭐라 하든 간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병적인 의지고
사랑은 변덕스럽고 오묘한 감정이며, 또한 병적이다.
세번째로 공허하다는 것이다.
권력, 도전, 사랑 모두 공허하다.
이 작품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전혀 없다(혹은 미래가 행복하지 않아보임)는 것만 봐도 자연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성들은 카프카 자신의 삶과 깊은 연관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공무원으로서 늘 느끼며 살았던 권력과 종교의 허무함에서 형상화된, 실체없는 권력의 성
그가 소설가로서 세계에 도전했던 모습이 형상화된, 끊임없는 도전의 성
그와 함께했던 연인들과 그가 느꼈던 감정들이 형상화된, 변덕스러운 사랑의 성까지
이런 성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카프카라는 제 4의 성이 탄생한다.
결국 <성>이란 책은 나와 세계, 카프카와 카프카가 맞이한 세계, 즉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소멸시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허무는 소설인 것이다.
각자 자신 안에서 살지만 동시에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이 모순을 카프카는 낱낱이 파헤쳐 놓은 것이다.
또한 소설이란 형식적 특성도 이러한 부분과 맞아떨어지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외부의 텍스트, 작가의 텍스트를 맞이하는,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하지만
동시에 텍스트 자체는 우리 내부에서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프카의 예술적 세계는
마치 임마뉘엘 레비나스가 나치의 활동 중 유대인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사회 구조를 확대시킴으로써 하나의 보편적 명제를 만들어낸 것처럼
고립된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마주하게 되는 외부의 권력들을 확대시켜 하나의 보편적 명제를 만들어낸 것과 같다.
정리하자.
신적인 요소와 관료체제의 불합리성, 허무성을 풍자하는 권력의 성과
도전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끊임없이 관철하는 도전의 성과
사랑이라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감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랑의 성
이 세개의 성이 존재하는 <성>은
'카프카'의 인생으로 치환되며, 제 4의 성을 낳는다.
<성> 해석 시리즈 완결과 <전.카.시>)
사실 첫 글을 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글이 나올줄 몰랐다.
그럼에도 글을 쓸때는 초집중 상태로 술술 써내려갔고, 내 해석과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조금씩 생각날 때마다, 마치 카프카가 내 안에 들어와서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카.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성>의 분석은 사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이렇게 미완결된 상태로 끝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직접 읽어보면서 내 해석을 적용하면서 읽어보았으면 좋겠는 것도 있고, 솔직히 반박될 만한 부분도 존재하는 것 같아 무서워서이다.
카프카의 소설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꼭 카프카같은 대문호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많은 걸 놓친다.
정확히는 놓칠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쓰는 시간은 우리가 읽는 시간의 최소 몇 배는 되고, 집필 시간도 그런데 그걸 구상하는 시간은 대체 얼마나 들겠는가?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소설을 전부 이해한다는 건,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작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발견될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대문호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프카를 다시 볼 수 없다.
이는 정말 자명한 사실이다.
그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경험이 매력적이기에, 세상에 유일한 것이기에, 그를 좋아하게 되고 소설에 빠져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전은 어렵다고, 왜 사서 고생하냐고 말할 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어렵고, 이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매력적이니까 읽는다고 말이다.
다음은 <성>이 아니라 아마도 단편 소설 혹은 <소송>에 대해서 심층적인 분석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성>을 맨 처음으로 한것이 좀 아쉽기도 한데, 다른 소설들이 여럿 차용되고 뭉쳐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명작은 결말을 알고 봐도 재밌지 않은가?
앞으로의 여정에 많은 응원 부탁드리며 마치겠다.
[시리즈] <성>의 분석 : 전지적 카프카 시점
· 1. 역설적 역전과 <성> : 전지적 카프카 시점 · 2. 당황과 K라는 성 : 전지적 카프카 시점
· 3. 기다림과 프리다 : 전지적 카프카 시점
· 4. 제 4의 성 : 전지적 카프카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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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시리즈 아주 잘 읽고 있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