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지빠귀는 특이한 새다.

수컷과 암컷이 짝을 짓고 새끼를 낳으면 둘이 함께 공동 육아를 한다.

이 뿐만 아니다.

수컷이 암컷보다 육아에 대한 열정이 더 깊어서, 새끼들에 대해 더 많은 헌신을 보인다.

대부분의 수컷 새는 암컷 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휑하니 사라진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는 매우 고무적인 점이다.


또한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고 나서도(이소;離巢) 지빠귀는 새끼들이 완전히 성숙될 때까지 양육을 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대다수의 지빠귀들은 형제애가 매우 깊다는 점이다.

약한 동생을 챙겨주는 형이나 누나 지빠귀의 사례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러한 지빠귀를 발견하게 되는 행운을 맛보길 바란다.

나 프란시스 역시 지빠귀의 형제애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지빠귀가 상당히 인간과 비슷한 면모를 지녔다는 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지빠귀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매우 깊고 형제애까지도 갖춘 동물이다. 그들은 심지어 다른 종의 동물들과도 우정을 맺는다.

하지만 인간적 면모를 지녔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고뇌를 겪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신의 아름다운 피조계를 탐구하며 십년가까이 자연 가까이의 은수처에서 지내왔지만 자연은 무서운 곳이다. 자연은 하느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인간사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치열한 경쟁관계와 서열관계가 맞물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내가 만난 한 개똥지빠귀 벗이 있다. 그는 나의 형제이며, 내가 그를 형제로 여기는 것처럼 그 역시 나를 형제로 여긴다.


그의 생은 하나의 파란만장한 서사시와 같다.

그의 생은 잘난척하는 도미니코회의 교수 사제들이 철학적 논제로 삼아볼 만 한 수사학 교재용 소재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의 입장에서

그가 되어 한편의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그의 이름은 제노이다.

물론 내가 붙인 이름이다.

이제 그는 나의 생활을 은수생활에서 공동수도생활로 바꿔버린 장본조(鳥)이기도 하다.

그는 다름아닌 제노 수사이다.


A.D. 1307년 12월 3일

예언자 스바니야 대축일 날

베른 교외의 숲 속에서


졸작자이자 은수자인 프란시스


<먹구름>

"제노, 숨거라!"


"아빠?"


"숨어얏....!!!?"


그 때가 바로 간당간당하게 유지되었던 둥지의 평화가 깨진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부모가 삽시간에 인간 사냥꾼의 손아귀에서 죽어간 그 순간을 나 늙은 새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 잡혀서 죽고마는 것 빼고는.


그보다 더 옛날에, 우리와는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피리새 헤르만이 족제비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아주 어린 시절에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때 봤던 족제비의 눈빛도 잊히지 않지만,

난 인간들이 나의 부모님에게 저지른 짓거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우선 그들은 나의 부모님을 죽이기 위해 부모님을 탄탄한 거미줄같은 것으로 생포한 뒤, 부모님의 창자를 혐오스런 작대기로 끄집어내고 깃털까지 모조리 앞발을 이용해 벗겨냈다. 그 뒤 불꽃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리더니 나의 부모를 태워서 먹었다.


그들의 그런 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의 나로서는 알지 못했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알 수 없는 공포였고 그 공포는 내 작은 심장 깊숙이서부터 올라온 것이었다.


그 때 나의 동생들은 모두 둥지 속에서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든 장면을 목격한 것은 내가 유일했다.

형제들 중 날 수 있는 것은 내가 또한 유일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모두 둥지 반대편쪽 나무 밑에서 그런 악랄한 짓거리들을 말없이 행했고

나는 그들이 얼른 다른 데로 사라지길 바라면서 더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 날 해가 지고 나는 둥지로 돌아왔다.

만일 그때 재빠르게 둥지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까마귀나 뱀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귀한 막내 동생 카를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엄마 아빠 언제와? 형 나 지렁이 먹고 싶어!"


여동생 미리암은

"난 산딸기" 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이들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날 그들이 본 것과 내가 본 것은 달랐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였을까? 다른 지빠귀들이었으면 형제들을 보살피거나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먹이를 구하기 바빴을텐데.


하루종일 울부짖느라 지친 형제들은 조용히 잠을 청할 뿐.


그날... 그리고 카를이 죽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동생의 죽음이었기에 나는 가슴이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물론 이 숲에서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사실 우리 형제는 미리암, 카를, 한스 그리고 나 제노 이렇게 4형제였지만

실제론 밑에 2명이 더 있었고 내 위로 형이었던 요한 형까지 7명이었다.

밑에 2명은 내 기억에 먹이 경쟁에서 밀려 굶어 죽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의 죽음은 불가피했다.

그들은 너무 약했고 어차피 일찍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한 형은 나보다 먼저 독립해 나갔다. 아마 그 사건이 있기 3주 전쯤에 내가 아직 둥지에 있었을 때 독립해서 그가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의 여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자연은 다시 말하지만 거침 없는 곳이다. 약자는 패배하고 승자는 승리한다.)


카를이 죽고 나서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본능과 감정에 북받쳐서

이 모든 상황들을 잊고 싶은 마음과 나 하나만큼은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나는 바로 둥지를 나섰다. 비로소 나는 독립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모도 없고 이소도 채 못한 동생들을 보살피느냐고 나의 목숨을 바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 때가 나 늙은 새가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다.

독립하고 나서의 이야기들은 차차 하겠지만

며칠 뒤 둥지에 돌아와서 내가 본 것은 미리암과 한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몇 조각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었다면 더 나았을 것을!

나는 그날 그들의 뼈를 조각조각 모아놓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때는 밤이라 올빼미나 뱀이 활동하는 시기였다.

더이상 소리를 내선 안 되 겠다 마음먹고 둥지를 다시 떠났을 때

가슴 한 켠에 미리암과 한스 그리고 카를이 외치는 것 같았다.

"이 뱀같은 새야! 너때문에 우리가 죽었구나!"


<슬픈 홀로서기>

여기서부터는 나 늙은 새가 이미 앞에서 밝혔던 둥지를 떠나 둥지로 돌아온 며칠간의 독립생활에 대해 밝히겠다.


처음 독립했을 때에는 단순히 나무를 건너 나무로, 또다시 다른 나무로 건너가는 일만을 반복하였다.

나는 그때 오로지 그 비극의 장소가 되버린 나의 본향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떠나 버리는데 열중했다.


하지만 나는데도 아직 익숙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빽빽한 숲 속을 헤멘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짓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아버지와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인 다람쥐 힐데가르트 아주머니의 거처에 먼저 들렀다.


"아주머니 계세요?"


"그래, 아니 넌 제노 아니니? 부모님 소식은 들었단다. 너 혼자 온거니?"


그 때 내가 한 말은 장관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저라도 살아야죠. 둥지에 있다간 모두다 죽을지도 몰라요."


얘기를 마치고 내게 들은 생각은 어떻게 아주머니가 부모님의 죽음을 알게됐는가 였다.

내가 꼬치꼬치 캐물을려 하자

힐데가르트 아줌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뭐 참새 프란츠가 알려주더구나. 왜 피리새 헤르만 다음에 너희 옆 나무로 이주한 새말이다."


눈꼽만큼도 슬퍼하거나 동요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그 암컷 다람쥐는 그런 일에 슬퍼한다는 것을 한심한 패배와 두려움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죽음도 나에게 그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기에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다람쥐 아주머니에게 우리 부모님의 죽음은 천적에 종종 함께 맞서던 '간헐적 협력자'의 죽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부모님의 죽음은 큰 손해가 아니었다.

반면에 나에게 부모님의 죽음은 나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이 모든 것에서 나는 내가 사는 이 자연이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힐데가르트 아주머니는 이후 만나게 된 동물들에 비하면 상당히 선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가 떠나기 전에 이런 말도 해주었다.

"잘 들어라, 제노. 네가 이왕 독립을 했다면 생각보다 숲속 생활이 즐겁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하지만 너희 부모님처럼 인간들에게 당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단다. 다시는 인간들을 마주치지도 말고 만일 마주치거든 하늘 높이 날아서 도망가거라. 알겠지?"


그러고는 산딸기 반 알을 내 앞에 던져 두고는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to be continued...